의무이자 권리인 것

by 전명원

지난 7월말 은퇴한 남편에게 나는 “이제 우리집이라는 새 직장의 인턴이 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게 우리집 인턴이 된 남편은 생각보다 적응도 잘하고 있으며,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달라진 하루를 꽤 알차게 보내고 있는 중이다. 여러모로 다행스런 일이다.


퇴직을 한 남편은 일생 직장을 다니며 급여에서 꼬박꼬박 고용보험을 납부했다. 그덕에 퇴직 후에도 9개월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내심 반가웠다. 일생 세금을 냈으니 이제 그 혜택을 보는 것이냐며 우리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날로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일생 나라에 세금을 냈으니 이제는 낸 세금을 좀 돌려받아도 괜찮은 나이 아니겠어?”

혹시라도 남편이 의기소침할까봐 짐짓 명랑하게 우스개소리를 했는데, 사실 내 말은 본심이기도 했다. 내심 그게 맞지, 했다. 젊어서부터 성실하게 일하며 세금을 꼬박꼬박 냈으니 이제쯤은 혜택을 좀 받아도 되는 것 아닐까 싶은 것이다. 물론 회사에서 지급되는 급여에 딸린 세금이 아닐뿐, 지금도 세금고지서라면 참으로 다양한 이름을 달고 집으로 끊임없이 날아오고 있는지라 여전히 세금과 거리두기하는건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퇴사를 하고 처음 고용노동부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가던 날, 남편은 괜히 긴장한 표정이었다. 퇴사전 다른 일로 고용노동부에 갔을 때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온 많은 사람을 봤던 기억을 떠올리는 듯 했다. 남의 일이라고, 먼 훗날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순간을 직접 맞이하는데서 오는 소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누구는 실업급여신청이 까다롭다, 누구는 엄청 꼼꼼하게 서류를 본다 이런 저런 말을 듣기도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일생 자영업을 해왔던 나에게 고용보험이나 실업급여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니 나로선 남편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다만, 내가 걱정한건 남편의 마음이었다. 이제 나이가 들고, 퇴사를 하고나니 실업급여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로 행여나 상실감을 느낄지도 모를 남편의 마음 말이다. 그렇게 걱정을 해서인지 괜히 어깨도 축 쳐진 것 같고, 가뜩이나 작은 목소리가 더 작아진듯도 해서 마음이 쓰였다.


처음 실업급여의 신청일이 되었을 때 , 우리 모두 경험해본 일이 아니니 절차가 오래걸리려나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돌아온 남편이 헛웃음을 지었다. 나역시 첫마디가 “벌써 끝났어?” 였다.

알고보니 만 60세 이상이어서인지 절차랄 것이 없이 너무 간단했다는 것이다. 우리 둘다 웃음이 터졌는데 한차례 웃음이 지나가고 나자 어쩐지 씁쓸하기도 했다. 우리가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하는 맘이었달까.

하긴 만 60세 이상이면 있던 직장에서도 모두 퇴직할 나이니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해진 실업인정일에 출석할 필요도 없이 온라인으로 신청이 가능했고 4회차에만 한번 출석했다. 그뿐만 아니라 구직활동을 증명하는 절차대신 취업특강만 동영상으로 들어도 된다고 했다. 처음엔 ‘실업인정일’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우리였지만, 이제 그 실업인정일이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날이로구나, 하는 정도로는 익숙해졌다. 첫 1회차와 지난 4회차를 출석했고, 나머지 회차는 다시 온라인으로 신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남편의 실업급여수급은 내년 5월로 끝난다. 그리고 나면 새해부터 국민연금수급자가 되는 남편은 7월이 생일이므로 곧 다시 국민연금을 받게 된다. 처음 퇴직할 때 이런 연금시기를 감안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연금이 연결된다.

퇴직을 하고나서 받는 실업급여나 국민연금으로만 살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미리 퇴직을 대비해 이런 저런 대비를 하고 살있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딸하나뿐이어서 교육비 지출이나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달리 있지 않다. 살림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 이처럼 미리 계획을 세워 살았지만, 그래도 막상 퇴직하고 나니 불과 9개월이지만 매달 입금되는 실업급여가 은근 반갑기도 하다.


문득 세금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내지 않는 세금이라면 근로소득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우리는 참 여러 가지 세금을 내고 산다. 생각해보면 세금을 내는건 국민의 의무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많은 혜택도 이제는 유용하게 누려야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퇴직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지, 주민들에게 마련된 편의 시설같은 것들은 공짜로 주어진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설치되고, 유지 보수되는 것들이다. 그러니 좀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유용하게 이용하는것도 마찬가지고 우리의 당연한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