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떨리는데….” 합격자 발표를 하루 앞둔 밤에 남편은 괜히 집안을 서성거리며 혼자 중얼중얼했다. “밥 먹고 시험공부만 했는데 설마 떨어지겠어?” 놀리느라 웃음기가 잔뜩 든 내 말에도 웃기는커녕 자못 심각한 표정이었다.
지난 7월에 퇴사하고 남편이 선택한 건 자격증 취득이었다. ‘산업안전기사’, 그리고 ‘산업안전 산업기사’ 이 두 가지 자격증을 같이 준비하겠다고 했다. 나는 입에도 붙지 않는, 그 말이 그 말 같은 그 두 자격증이 정확히 어떤 곳에 쓰이는지 여태 알지 못한다. 그저 자격증 이름과 요즘 기사에 많이 나오는 ‘안전’에 관한 자격증이거니 한다. 남편은 그 두 가지 자격증을 함께 준비하며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그 시험의 결과 발표가 바로 12월 24일에 있었다.
당일 오전 9시가 돼야 알 수 있다며 안절부절못하더니 갑자기 환한 얼굴로 들어와선 “합격!”이라고 뿌듯해했다. 두 가지 자격증을 모두 다 붙었다며 표정이 밝았다.
“애썼어.” 칭찬하다가 슬쩍 놀리고 싶은 마음에 “아니, 밥 먹고 공부만 했는데 떨어지면 그게 이상한 거 아냐?” 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거 대충 막 붙여주는 시험인가, 설마? ” 하며 약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합격증 두 개를 가족 단톡방에 턱 하니 올리고 자랑하는 남편의 얼굴엔 성취감과 뿌듯함이 하나가득이었다.
퇴직 후엔 많은 선택지가 있다. 누구는 미뤄두었던 긴 여행을 떠나고, 또 누구는 배우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배우며 취미활동을 한다. 또 누구는 그래도 역시 경제활동이 최고라며 소소한 일거리라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뿐인가. 내가 아는 지인 하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사는 자유를 누려보겠다고 말 그대로 무위도식의 삶을 만끽하기도 한다.
그 어떤 형태이든 퇴직 이후의 삶은 자기 자신이 선택한다. 젊은 시절 의무와 책임으로 할 수 없었던 그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물론 퇴직 이후에도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나는 남편이 퇴직 후에 어학을 배우거나 하는 취미생활을 선택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어느 정도 일본어를 할 줄 알지만, 제대로 회화를 좀 더 배워봐도 좋겠다고 이야기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남편이 선택한 건 자격증 취득이었다.
물론 그 자격증 취득의 목표가 재취업인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누구는 외국어를 배우고, 또 다른 누구는 그림이나 악기를 배우는 것처럼 남편이 선택한 취미가 바로 자격증 취득이었던 거다.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나 역시 하던 일을 멈춘 이후엔 다양한 취미생활을 해보았다. 그런데 그 결과, 나는 어떤 결과물이 있는 취미생활이 적성에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 이를테면 막연히 악기를 연습하는 것보다는 그림을 그리며 한 작품씩 완성하는 것이 더 좋았다. 매일 반복되는 운동을 하는 것보다는 책 한 권을 정해 끝까지 완독하는 것이 더 뿌듯했다.
아마 남편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제 다음 목표는 뭐야?”
한껏 합격을 축하해준 이후에 궁금해진 내가 물었을 때 남편은 “산업안전 지도사!”라고 말했다.
이름도 헷갈리는 ‘산업안전 산업기사 ’ ‘산업안전기사’의 위 단계가 바로 그 ‘산업안전지도사’라고 했다. 사실 나는 아직도 그 명칭이 헷갈리지만 이미 새로운 목표가 있다는 남편에겐 짐짓 이해한 척 대답했다.
“말하자면 ‘안전’ 자격 3종 세트군.”
굉장히 고무된 얼굴로 남편은 이미 다음 단계인 산업안전지도사의 수험 준비에 돌입했다. 고시 공부하듯 쏟아붓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본다. 그리고 뜬금없이 한마디를 날려서 나를 포복절도하게 했다.
“공부하는 게 진짜 재밌어!”
소싯적의 대입에 여러 번 낙방하며 시부모님 속을 썩인 걸 아는데 돌아가신 어르신들이 들으시면 뭐라고 하시려나.
나는 ‘공부엔 때가 없다’라는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고 생각해 왔다. 무엇이든 그렇지만 공부 역시 해야 할 때를 놓치면 쉽지 않은 법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며 그 목표를 공부로 잡는 남편을 보면 반은 맞는 이유는 이것이로구나 싶다. 농담으로 “써먹지도 못할 자격증을 뭐 하러 따겠다고….” 하며 놀리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내듯, 남편 역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는 것이다.
젊은 날과 달리 그 어떤 의무와 책임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성취와 만족을 위해 공부를 한다는 건 역시 꽤 괜찮은 일이다. 아직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인생은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