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엄마가 예뻐한다고 맘 놓고 있으면 안 돼. 엄마는 말이야, 악덕 사장이야. 너랑 나랑 우리 인턴끼리 뭉쳐야한다구.”
남편은 침대 위에 방만한 자세로 누운 강아지 루비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하고 있었다. 들으라는 듯 슬쩍 나를 보며 웃음을 참는 얼굴로.
그 말을 들은 나는 짐짓 사장스러운 무게를 잡고 말했다.
“아니야,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우리 루비는 이미 정직원이야. 인턴이라니 뭔소리야?”
그 말에 개를 쓰다듬던 남편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그날 이후 남편은 가끔 강아지 루비를 보곤 “어이구, 정직원님 나오셨어요?” 하며 웃곤 한다. 나 역시도 “우리 루비도 정직원이 된 지 오래인데, 이래갖고 어느 천년에 인턴을 면하겠어. 분발해.” 하며 남편을 놀린다.
이처럼 뭔가 불만스러울 때면 “이러면 정직원 되는 건 좀 곤란해.” 라거나, 자꾸 이것저것 부탁하면서 “인턴은 원래 이런 거 하는 거지”라며 놀리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정직원으로 승격시키는 문제를 생각해 봐야겠다 싶은 일이 생겼다.
몇 해 전 나는 골절 수술로 무릎에 나사를 박아 넣었다. 이제 그 나사를 빼는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대단히 간병이 필요한 큰 수술은 아니지만 2박 3일간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첫날은 거동도 불편하지 않을 테고 다음 날 수술하고 나면 혹시 도움이 필요하려나 싶어 남편이 왔다 갔다 하고, 수술 당일만 같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입원수속을 밟으며 알게 된 사실, 간병 보호자는 예전처럼 맘대로 들락날락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코로나 시절처럼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드나들자면 매번 확인을 받아야 해 번거로울 듯했다. 간단하게 생각한 우리 계획은 처음부터 빗나간 것이다.
결국 남편은 2박 3일 내내 함께 있겠다고 했다. 그리고 수술 당일까지 갈 것도 없이 입원 첫날에 그것은 잘한 결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사만 빼면 된다고 너무 편하게 생각해서였을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병원에 입원하고 환자복을 갈아입는 순간, 그대로 환자가 되었다. 다음날 수술을 위해 미리부터 수액용 바늘을 팔에 꽂았고. 바늘이 꽂힌 팔을 움직이는 일은 부자연스러워졌다. 몇 번씩 혈압을 재고, 밤중에도 채혈하느라 간호사가 드나들었다.
수술을 위해서 보호자인 남편과 수술실 앞까지 함께 갔다. 그리고 수술이 잘 끝나고 나자, 그때부터 보호자인 남편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텀블러 열어줘. 화장실에 갈래.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끼니마다 식판을 옮겨주고 때맞춰 약봉지를 내미는 것도 남편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밤이면 좁고 딱딱한 보호자 의자를 길게 펴고 불편하게 구부리고 잠을 청했다.
“네 침대 부럽다.”
남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지만, 잠자리가 오죽이나 불편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해서 마음 한편은 짠했다.
2박 3일의 짧다면 짧은 입원 생활을 마치고 남편과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누군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 준다는 것. 그것은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 서류 위의 한 단어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집에 온 이후에도 남편은 전에 둘이 나눠서 하던 집안일을 도맡다시피 하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매번 수술 부위 냉찜질을 위해 아이스팩을 준비하고, 이틀에 한 번 근처 병원으로 드레싱을 하러 다니는 일에도 동행하며, 기사 노릇까지 대신하는 중이다.
생각해 보면 부부는 애정으로 만나 하나가 되는 관계이긴 하지만, 우리처럼 몇십 년을 함께 살다 보면 정이 남고, 의리로 연결되는 관계가 된다. 젊었을 때는 데이트를 하며 수줍게 끼던 팔짱이, 이제는 수술하고 절뚝이며 걷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의지하며 붙잡는 상황이 되었다. 핑크빛 미래를 나누던 대화는, 어느새 나이 듦과 노년에 대한 주제로 바뀌었다. 이만큼 살아보니 오랜 친구가 된 기분이다.
여전히 “이래갖고 언제 정직원이 되겠어?”라며 놀리고 있긴 하지만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남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있어 늘 정직원이다. 아니, 직원이 아니라 우리 ‘가정’이라는 사업체의 동업자다.
그러니 앞으로도 오래 우리는 사이좋은 동업자로 살아볼 예정이다. 수술이 아니더라도 더 늙어 다리에 힘이 빠지는 날이 오면, 서로가 서로의 팔짱을 끼고 걸어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