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 탕탕탕, 뚝딱뚝딱….
모니터 앞에서 한창 일에 몰두하고 있던 터라 집안에서 낯선 소리가 났지만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그 소리의 정체는 무엇인지 마음을 두지 않았다. 급한 일을 끝내놓고서야 그제껏 계속되는 소리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망치질(?) 소리라니.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건 남편과 나, 그리고 강아지뿐이다. 그렇다면 소리의 범인은 아마도 남편일 터. 나는 서재에서 일어나 천천히 소리의 근원지인 안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안방 화장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열린 그 화장실 안에서 세면대 하단 커버를 분리해서 들고 있는 남편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뭐 하는 거야?”
아침까지도 세면대는 멀쩡했다. 내가 세면대의 어떤 부품을 갈아달라고 남편에게 말한 일도 없다. (심지어 남편은 ‘마이너스의 손’이므로 못하나 박고, 나사 하나 돌리는 것도 사달을 내는 수준이라 시키지 못한다,) 그렇다면 도기로 된 세면대 하단 커버를 어정쩡하게 들고 있는 남편이 내게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건,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고쳤구만!
“물이 잘 안 내려가길래 여기 내려가는 마개를 좀 세게 눌렀더니 들어가서 안 나와. 그래서 안에서 밀어낼 수 있나 보려고….”
그렇다. 마개에 힘을 주어 밀어 넣고는 안 나오니 세면대 하단의 파이프를 빼보려고 했던 모양이다. 도기로 된 세면대는 물이 담기는 볼의 아래쪽 파이프를 감추는 커버가 분리된 구조였다. 파이프를 분리해서 어찌 밀어 올려볼 수 있을까 했던 모양이지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생 못질은커녕 실리콘을 새로 쏘고, 샤워기를 통째로 바꿔놓아도 모르는 사람이 난데없이 세면대를 분해해 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아니, 물이 잘 안 내려가면 하수구 청소제를 부어보든가 할 일이지 다짜고짜 왜 마개에다 힘을 써. 그리고 그게 아래 파이프를 빼는 게 뭐 욕조 마개 빼는 거처럼 쉬운 줄 알아?”
목소리가 이미 곱게 나갈 리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참아, 참아야 하느니라….’ 하는 내적 다독임이지만 이미 내 얼굴에도 짜증이 한껏 묻어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동시에 내 머릿속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설비기사를 부른다. (돈이 제법 나오겠군.)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본다. (민폐인가)
화부터 좀 내볼까 (참자, 참아)
“일단 관리사무소에 문의해 봐. 봐주실 수 있으면 다행이고, 만약 담당업무가 아니라고 하시면 설비기사 찾아봐야지.”
최대한 감정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하고 돌아서려는데 어째 남편의 표정이 이상했다. 나름대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건만 여전히 난감한 표정이다. ‘뭐지? 물어내란 것도 아니고, 어찌 됐거나 고쳐내란 것도 아닌데... 왜?’
의문은 곧이어 풀렸다.
“나... 관리사무소 전화번호 모르는데….”
아…. 그렇다. 내가 우리 인턴이 어떤 사람인지 잠깐 잊고 있었네. 우리 인턴은 관리사무소 전화번호를 모르는 사람이다. 관리사무소 전화번호를 모르면 들고 있는 핸드폰으로 검색하면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 이런 사람이 우리 인턴이었지. 나는 쌍팔년도에 남편을 처음 만나 여태까지 살아온 그 내공을 애써 끌어올려 대답했다.
“...네이버에 검색해 봐.”
다행스럽게도 그날의 해프닝은 관리사무소 기사님이 오셔서 해결해 주셨으므로 설비업체를 찾아보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뿐 아니라 비록 남편에게 가자미눈을 흘기는 뒤끝은 남겨두었지만, 나의 화도 거기까지였으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굉장히 홀가분한 얼굴이 되어 들락날락하던 남편은 난데없이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뭐래?” 하며 받아 든 꽃바구니에 매달린 리본에는 <축! 결혼기념일>이라고 쓰여있었다. 그렇다. 오늘은 우리 부부의 결혼 33주년 기념일이었다.
나는 그만 웃음이 터졌다. 연애한 기간을 빼고도 33년이나 살았지만 남편은 여전히 마이너스의 손이고, 일을 하나 시키려면 ‘앓느니 죽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념일에 꽃바구니 사 들고 오는 건 안 시켜도 할 줄 안다. 아니다. 사실은 이것도 나의 ‘교육’의 결과이긴 하다. 십 년쯤 전에 나는 말했었다. 앞으로 내 생일이나 기념일엔 꼭 꽃을 사와.
생각해 보니 시키면 하는 사람이다. 비록 시키면 딱 시키는 것만 해서 문제이긴 하지만, 안 시킨 것까지 한다고 사달을 내는 것보다야 그편이 낫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는데 이것도 지난 33년의 내공이 쌓인 덕일까. 생각해 보면 내가 남편을 가르친 게 아니라 남편이 나를 가르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헷갈린다.
퇴근한 딸이 와서 꽃바구니를 보고 기념일인데 오늘 뭘 했느냐 묻자, 남편이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오늘 하루 종일 사고 치고 엄마한테 혼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