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오래 좋아하는 마음

by 전명원


‘볼꾸’ 팝업이 열린다고, 그나마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지난밤, 우연한 인터넷 서핑 중에 알아낸 정보는 그랬다. 그렇다면, ‘예쁜 쓰레기’앞에서 단호해지지 못하는 나라면 당연히 가봐야 한다. ‘볼꾸’를 하러 가야 한다는 말에 남편의 얼굴은 ‘이 무슨 외계어인가’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볼꾸’라고 볼펜 꾸미기의 줄임말이야. ”

설명하자면 길다. ‘볼꾸’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우리 인턴에게는 이게 한계다. 알록달록한 구슬이며 캐릭터 액세서리들을 요리조리 끼워가며 내 맘에 맞는, 세상에 하나뿐인 내 것을 만드는 그 기쁨을 설명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만드는 값보다 훨씬 싸고 간단하게, 심지어 더 퀄리티 좋은 것으로 살 수도 있지만 굳이 소꿉놀이하듯 나만의 것을 만드는 즐거움을 설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도착한 매장엔 생각보다 파츠가 정말 다양했다. 볼펜 외에도 빗, 거울을 꾸밀 수도 있으나 나는 볼펜에 올인하기로 했다. 반짝반짝하고 알록달록한 작은 파츠들을 둘러보다가 한곳에 눈이 꽂혔다. 아니? 우사기?

그렇다. 나는 ‘우사기’라는 이름의 노란 토끼 캐릭터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하지만 헬로키티, 스누피처럼 아직 유명하지 않다 보니 우사기는 드문 편인데 그만 작은 바구니에 소복하게 담긴 노란 파츠들을 보는 순간 내적 환호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모든 꾸미기의 중심은 이 노란 우사기가 된다. 우사기에 어울리는 볼펜 몸통부터 구슬들을 다시 고르기 시작했다.


한참 그렇게 볼꾸에 미쳐서 다양한 파츠들을 이래저래 끼워가며 몰두하고 있는 내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저거 너무 이쁘다. 나도 하고 싶어. “

아이 엄마는 잠시 아이와 함께 파츠를 성의 없이 뒤적거리더니 근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쓸데없는 소비는 안 돼요!"
그 소리에 그만 뜨끔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쓸데없다니. 대체 그 기준을 누가 정하는 거야!’ 하면서 꿍얼꿍얼했다. 결국 나는 파츠 바구니들을 다 뒤지다시피 하면서 맘에 드는 나만의 ‘볼꾸’를 완성했다.


생각해 보면 나의 ‘쓸데없는 것’ 그러니까 속칭 ‘예쁜 쓰레기’ 사랑은 아주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학교 앞 문구점은 예쁜 것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아이가 가진 돈으로 살만한 것들이라 봐야 연필 한 자루이거나 작은 지우개 따위였다. 나는 받은 용돈을 군것질에 쓰는 대신 종종 지우개며 소소한 캐릭터 소품을 사곤 했다.

어느 날 분홍 토끼 그림이 그려진 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지우개 몇 개를 사 들고 가서 엄마에게 혼났다. 이렇게 작은 지우개를 무엇에 쓰느냐고, 금방 굴러다니다 잃어버릴 게 뻔한데 큰 것을 사지 그랬느냐고 했다. 겉으로는 아무 말 못 했지만, 속으로는 냉큼 말대답을 했다. '큰 것은 이쁘지 않은걸, 마이멜로디 그림이 없잖아….'.


어른이 된 지금도 소소하고 예쁜 것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마이멜로디를 지나 헬로키티, 스누피뿐 아니라 둘리며, 마시마로, 뽀로로도 좋았다. 어렸을 땐 주로 캐릭터가 그려진 인형을 탐냈다면 어른이 된 지금은 키링, 머그, 문구류 같은 것에 눈길을 빼앗긴다. 나름 ‘실용성을 생각한 것’이라고 우기지만, 엄마가 보셨더라면 또 혀를 끌끌 찼을 '하나 소용도 없는' 물건들이다. 그저 ‘예쁜 쓰레기’다.


한 친구는 며칠 전 손주를 봤다고 했다. 그 친구뿐 아니라 이제 가끔 들려오는 친구들의 할머니 등극 소식은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쁜 쓰레기가 좋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오래 예쁜 쓰레기를 좋아하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이다. ‘볼꾸’ 팝업스토어를 찾아가서 어린이와 젊은 엄마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파츠들을 뒤적이며 신나는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가 꿈이다.

더 이상 염색 따위는 하지 않는 백발이 된 어느 날에도 나는 새로 나온 캐릭터 굿즈샵을 찾아다니는 이상하고 엉뚱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쓸데없는 소비는 하지 않는 ’ 현명한 어른은 못될지라도 좋아하는 것을 오래 좋아하는, 감성만큼은 늙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이다.


탁구공만 한 털 뭉치에 구슬링, 그리고 노란 우사기로 완성한 ‘볼꾸’를 마치고 나니 그제야 어딘가에 세워둔 남편이 생각났다. 돌아보니 매장 한쪽 구석에 선 채로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좀 짠하기도 해서 그만 웃음이 터졌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를 더 흐르더라도 남편이 ‘볼꾸’에 동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여전히 예쁜 쓰레기를 따라다니는 철없는 짓은 멈추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러니 앞으로의 어느날에도 우리는 지금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저, 좋아하는 것을 오래 좋아하면서 사는 것을 꿈꿀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취향이 흐르는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