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국지의 진짜 정체

by 전명원


“그런걸…. 뭐 하러….”

게국지를 먹으러 간다는 나의 카톡에 친구가 보내온 답이다. 말줄임표 점 세 개안에 들어있는 친구의 말이 어떤 것일지 짐작이 가서 웃음이 났다. 언젠가 서산이 고향인 그 친구에게 게국지라는 음식을 물었을 때 자신은 그것을 아주 싫어한다며 도리질을 쳤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친구는 ‘게국지’라는 명칭에서 자칫 꽃게를 연상하기 쉽지만 실제로 게국지엔 꽃게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며, 담근 김치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김장하고 남은 절인 배춧잎들을 게장 국물에 다시 염장했다가 끓여 먹는 음식이라고 했다. 당연히 짜고, 쿰쿰한 냄새도 난다며 손을 내저었다.

지방마다 독특한 음식이 있다. 이를테면 전주의 비빔밥, 부산의 동래파전이나 언양 불고기처럼 어떤 음식엔 그 지방의 이름이 붙어 유명해진다. 친구의 말대로 ‘게국지’란 충청남도 서산의 향토 음식인데, 나 역시 이 게국지를 알게 된 건 오래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디서 들었느냐며 친구가 신기해했을 정도.

서산이 본가인 친구는 게국지를 극혐한다고 했지만, 외지인인 나는 호기심에 그 게국지를 먹어보겠노라 벼르다가 서산에 수선화를 보러 가는 여행길에 드디어 맛볼 기회가 생겼다. 향토 음식인 만큼 오래된 노포에서 그 게국지를 먹어보고 싶어 찾아낸 곳이 바로 <진국집>이었다.


근처의 동부시장을 들렀다가 가는 길이었으므로 시장의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천천히 걸어갔다. 지도를 따라 길을 확인하며 식당을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기 딱 좋은 골목 안쪽에 식당이 있었다. 색이 바래 글자를 읽기도 힘든 오래된 간판, 사람 두셋이 걸으면 꽉 찰 정도로 좁은 골목 안쪽에, 화장실 문인지 식당 문인지조차 구분 안 되는 작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미 홀에는 테이블마다 모두 선객이 있고,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그제야 진국집이 여러 매체에 소개된 장면이며, 해마다 받은 여러 개의 블루리본, 그리고 게국지라는 것이 어떤 음식인지에 대한 안내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안내문은 삐뚤삐뚤한 손 글씨로 써둔 <게국지엔 꽃게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절인 배추를 끓인 향토 음식입니다> 라는 것이어서 웃음을 자아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게국지를 꽃게탕으로 오인하고 오길래 저렇게 진심을 담아 써두셨을까 싶어서였다. 내부를 둘러보니 이곳저곳 방송을 탔음에도 오래된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는 분위기도 손 글씨만큼이나 정겨웠다.


게국지 백반을 시키고 기다리는데 사장님이 오셔선 외지인임을 눈치채셨는지 “처음 먹어보는 건 아니죠?” 하시는데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처음이라는 말에 사장님의 ‘게국지 일타강의’가 시작되었다.

이름과 달리 절대 꽃게탕이 아니며, 떨어진 게 다리나 갯벌의 박하지 등으로 담근 젓갈 국물로 간을 하고, 김장 김치가 아니라 김장하며 다듬고 남은 절인 배춧잎 등을 넣어 끓이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요즘 어딘가에선 진짜 꽃게를 넣어 꽃게탕으로 끓이며 게국지라고 하지만 진짜 게국지는 이것!”이라고 말하는 사장님의 얼굴엔 결연한 자부심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생전 처음 맛본 게국지는 친구의 “내 고향 음식이지만 극혐”이라는 말을 생각하며 살짝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여행 온 외지인이 주게 마련인 후한 점수도 한몫했을 터다. 하지만 아무래도 서산 게국지가 전주비빔밥이나 부산 동래파전이 되기는 힘들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그만큼 호불호가 강한 맛이었다. 김치 지짐도, 묵은지 찌개도 아닌 애매하고 묘한 영역에 있는 맛이었달까.

전체적으로는 함께 나온 나물도 훌륭했고, 들깨 우거지 찌개와 애호박 젓국찌개까지 포함하면 12,000원짜리 백반 하나에 찌개가 무려 세 개나 나오는 셈이다. 거기에 계란찜까지 상에 오른다. 이래저래 가성비 좋은 식당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체인점은 어쩐지 피하게 된다. 그 지방을 여행하니,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을 먹고 싶은 것이다. 이미 배달 음식과 택배 주문이 넘쳐나는 시대에 어쩌면 그것은 지방의 경쟁력일지도 모른다.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짜 그곳의 음식. 게국지를 먹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서산을 떠올릴 때면 수선화도, 개심사도 떠올리겠지만 역시 나는 ‘게국지’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친구에게 짧은 카톡 하나를 보내줘야겠다. “게국지, 그거 생각보다는 괜찮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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