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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네리 Jul 21. 2024

인생의 루트 파인딩

남들따라 가본 클라이밍에서, 어느날 맞닥뜨리게 된 루트파인딩

데이터 정크 시대. 요즘을 일컫는 다양한 말들 중에 뇌리에 꽂혔던 단어. 우리는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콘텐츠 홍수 시대 속에서 우리를 무자비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밥을 먹을 때도, 양치를 할 때도, 잠시 화장실을 갈 때에도, 밤에 잠들기 전, 그리고 8시간 숙면 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도. 어쩌면 나의 분신으로 여길 수도 있는 그 스마트폰 세상 속에 우리의 눈과 귀를 모두 몰입시키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모두가 그 작은 세상 속에서 살지, 함께 존재한다는 느낌을 못 받은지도 꽤 오래되었다.

사람들은 취미도 트렌드를 따라 간다. 테니스, 골프, 농구, 클라이밍…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5-6년간을 필라테스만 내내 하고 살았는데. sns를 보니 다양한 운동에 시도를 하고 싶어졌다. 너무 많은 콘텐츠에 노출되다 보니, 사실은 이런 걸 하지 않으면 손해보는 기분도 더러 들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을 보면 ’재밌겠다‘ 라기보다, 반복노출 효과로 인해서 ’아 해야하는데‘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친구에게 연락했다.

“야 이번주 주말에 할 거 없음 클라이밍이나 갈래?”

벌써 14년지기가 된 친구와 매번 카페 가고 밥 먹고 하기보단 활동적인 취미를 함께 누리면 참 좋겠다, 싶었고 그 친구도 그 이야기에 금새 동의를 했다. 처음 해보는 초보자답게 우리는 ‘1일체험’이 아닌 ‘스타터(기초강습)‘ 수강권으로 끊었다.


도착하자마자 이용을 위한 서류에 설문과 같은 것들을 써내려갔다. 처음 보는 클라이밍의 웅장함에 놀라 나도 모르게 “헉” 하고 놀라니, 점원이 왜 그러냐고 여쭈우셨다. “아 생각보다 너무 압도적이어서…”라고 했더니 “클라이밍은 처음이세요? 실제로 해보면 괜찮으실 거에요.”라는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강습을 위해 모여있었다. 우리만 있으려나? 했는데 또 다른 남성 강습생 분도 계셨다. 친구들과 오신 듯 보였는데, 그들은 이미 여러 번 클라이밍을 경험해보았는지 꽤나 익숙해보였다. 아님 클라이밍 크루, 동호회모임인가 싶기도 했다.


강습이 시작됐고 강사님은 우리에게 ‘루트파인딩’이라는 용어부터 설명을 해주셨다. 클라이밍은 문제를 푸는 스포츠다. 나의 단계/레벨에 따라 홀더의 컬러가 다르고, 오로지 동일한 컬러만을 이용할 수 있다 보니 사전에 루트인딩을 먼저 설계하고 실전에 들어가는 스포츠였다. 인상깊은 단어에 꽂히면 그 말을 곱씹어 보는 버릇이 있는 나는, 그날 ‘루트파인딩’이라는 단어에 꽂히게 됐다.

사전에 내가 갈 길을 모색해보고 내가 생각한 루트에 맞게 몸을 맡겨 보는 것, 문제를 풀어 보는 것. 심신 릴렉스에 도움이 되는, 명상과 같은 도움을 주는 필라테스만 5-6년 해오던 나에게 클라이밍은 또 다른 색다른 매력으로 느껴졌다. 심신 릴렉스 보다는, 뭐랄까. 좀 더 뇌에 도파민이 도는 것 같은. 뇌에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스포츠처럼 느껴졌다. 몇 년간을 해오던 클라이밍 고수들은 로프를 매달지 않고서도 휙휙 이리저리 홀드를 잡고 타잔처럼 잘 옮겨다녔으며, 족히 1m도 넘어보이는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에 있어서도 나처럼 쫄지 않고 대범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에서 뒷걸음질 치며 걸어왔던 루트를 다시 되돌아가기 보다, 빠르게 떨어져 원점부터 시작하는 것이 명확하고 시원시원한 결단력처럼 보였다. 그렇게 떨어져도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그들이 꽤나 두려움이 없고 무서울 것 없는 무림의 고수처럼 느껴졌다.


20대를 벗어나, 30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더 이상 ‘청춘이니까‘라는 말에 때로 무모한 도전을 하던 나의 모습은 없어진지 오래였다. 대범함, 무모함. 나의 20대 초반은 그런 단어로 나를 비추어 보아도 무색하지 않다 싶은데, 지금의 나는 ’안정감’이라는 단어를 앞에 내세워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조용히 무탈하게만 가도 반은 간다 라는 생각을 가진, 회사에서 제발 내 이름 한 번 불리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어른이 되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변화는 나에게 무언가를 잃어야만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현실에 순응을 하면서부터일까? 자연스런 순리인 걸까? 40대가 되면 더 그럴까? 그래서 가끔 유튜브에서 보이는, 40대, 50대, 혹은 80대에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보면 나는 항상 스킵을 멈추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눈안에 담게 되었었다.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그들을 보며, 한 편으로는 그들을 보며 설레었다. 사실 안주하는 삶을 사는 건 편하다. 이 편함이라는 마음은 때로 돈 주고 얻을 수 없는 무언가의 복비같이 느껴졌다.


우연히 처음 접해본 클라이밍에서 ‘루트파인딩’이라는 단어를 맞닥뜨린 이후, 20대 초반의 ‘열정’, ‘무모함’, ‘설렘’이라는 단어에. 열광했던 그 시절의 나를 다시 한번 불러일으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생에 있어서도 루트파인딩이 중요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쩌면 나의 인생 모습이, 지금의 모습으로 10년, 20년 흐르는 게 아니라 다른 모양으로도 흐를 수 있겠다는 그런 막연한 새로운 바람이 생겨버렸던 것이다.

작은 홀드에 손을 올리고 나의 모든 체구, 무게를 의지하면서 다음 루트만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발을 힘껏 내딛던 모습이, 앞으로 내가 이 남은 인생 좀더 드라마틱하게 살고 싶다면 가져야 하는 태도, 자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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