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내 어린시절의 따뜻함의 기억

by jmy

우리 언니는 얼굴이 아주 예쁘다.

어릴때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러가면 사람들이 언니를 쳐다보고, 나를 쳐다보고,

"얘, 너 아주 예쁘구나" 칭찬했다. 물론 언니에게. 옆에 서있는 나는 뭐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멀뚱.

왜 예쁜 사람에게는 굳이 말을 해서 그것을 알리려는 걸까? 그래서 줄곧, 나는 못생긴 사람임을 언니를 통해

의식하며 자랐다. 나는 예쁘다는 말도 못 들으니 공부나 해야겠군, 한건 아닌데 그런셈이 되어버렸다. 나는 공부를 곧잘 했고, 언니는 좀 덜 했으니까. 공부로 어떻게든 내 칭찬의 목마름을 해소하려했는지도 모르겠다.


언니는 예뻤지만 성격이 좀 지랄맞다.

아주 찬바람이 쌩쌩 부는 정도가 아니라 말 붙힌 사람이 본전도 못 찾게 쏘아붙이는 선수다. 나는 대충 왜인지 짐작을 한다. 우리는 별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지 못했다. 우리는 둘이서 밥을 먹고 잠든적이 아주 많다.

나의 어린시절에 언니는 엄마고, 아빠고, 모든 것이었다. 동생이라는 이유로 언니에게 기대어 사랑을 요구했을 것이고, 투정을 부렸을 것이고, 마음놓고 잤을 것이다. 하지만 네살밖에 많지 않은 언니는 나를 챙기느라 자신이 국민학생인 것도, 아직 사춘기도 아닌데 밥을 해야하는 것도, 어른도 없는 집에서 잠자고 일어나야 하는 것도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언니는 안으로 꼭꼭 모든 감정을 숨기고 닫아놓고 입마저 닫아놓고 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아마 여섯살 쯤이라고 생각되는 어느날 밤의 기억이 있다.

앞뒤전후가 모두 생생하지 않지만, 그 장면이 너무나 생생하고 또렷해서 나는 그 기억이 내 어딘가에 새겨져있는 것 같다. 언니의 등에 업혀 춥고 캄캄한 밤길을 걸어서 집으로 간 날이다. 엄마 아빠의 가게를 나와 시장 앞에서 나는 더 못 걷겠다고 징징댔다. 언니는 등을 돌려 나를 업어주었다. 바람을 향해 언니의 등에 업혀 집으로 간 밤. 집에 돌아갔는지, 그날 잤는지 (분명 잤겠지) 더이상의 기억이 없이, 단지 그 밤의 기억이 너무 진하다. 판화를 배우고 첫 작품으로, 나는 그 밤의 기억을 그렸다. 나무에 그려서 파내고 종이에 찍어내며...내 기억에 새겨진 그 밤을 다시 떠올렸다. 어린 언니의 사랑을 생각하고 감동했다. 어떤 말로도 언니에게 고맙다고 할 수 없는, 내 인생에 언니가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다시 깨달으며 그 판화를 언니에게 선물했다. 외롭고, 어둡고, 슬픈 시간을 함께 공유한 두 자매의 어린시절, 하지만 나는 수혜자였을 뿐이다.

IMG_2123.JPG 언니에게

언니에게 미안하다.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만큼 예쁜 얼굴을 가진 언니에게도 이제는 주름이 지고 흰머리가 났다. 우아하고 긴 머리는 잘라지고 짧은 컷트만 고집한다. 한번도 어린시절 내가 얼마나 언니에게 기대고 있었는지, 그래서 나는 얼마나 언니에게 고마운지, 말한 적이 없다. 나때문에 언니가 너무 힘들고 고단했을 것이다. 쨍알대는 사춘기 시절엔, 언니에게 행주로 맞은 적도 있다. 그래도 쉬지않고 덤비고 이기려고 들었던 나, 아, 언니에게 정말 미안하다. 나이들수록 이해할 수 없는 언니의 행동에 언니를 미워하고 짜증냈던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니, 나때문에 다 꾹꾹 누르고 살았던 시기의 울분이 그때 터져나왔던 것 같다. 누구나 인생의 한 시기에는 그 울분과 탈선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언니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 시절, 언니에게 많이 미안하다.


이제 언니도 나도 늙어간다.

더이상 예쁜 것에 주눅 들거나 삐지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제 예쁜 것은 돈으로 대충 수습하는 나이들이니,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기도 한다. 일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언니는 여전히 빠릿빠릿하고 부지런하고 날씬하다. 아직도 화장을 좀 하면 눈에 띄게 이쁘고, 웃으면 더 이쁜 얼굴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지나며 얼굴이 좀 안되지기도 했지만, 언니는 예쁘게 늙어간다. 나도 그렇게 늙어가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서 언니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보물이다. 우리 둘이 그 어두운 어린시절을 통과해 나온 것은, 전적으로 언니의 공이다. 언젠가, 다 늙은 우리 둘이서 걱정 없이 돌길이 깔린 유럽 어딘가를 걸었으면 좋겠다. 언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한가지 선물로, 함께 유럽여행을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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