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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남 Feb 28. 2020

못다 한 프러포즈 III

내 아내

못다  프러포즈 


Scene #3

지루하고 모진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제대하게 되었다. 원주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여를 달려 반포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니 비로소 제대한 것이 실감 났다. 버스에서 내린 후 바삐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을 별 감정 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해방된 행복한 느낌을 잠시 누린 후에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 여자를 생각하며 얻는 행복감보다 더욱더 무겁게 어깨를 누르는 것은 책임감이라는 거대한 압박이었다.

 

나는 줄곧 그녀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날부터 어머니께서 해 주신 따뜻한 밥을 먹고 학교 도서관에 가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철이 들어서인지 집중도 잘되어 공부의 성과도 꽤 좋았다. 복학 후에도 꾸준히 공부만 한 덕에 나는 어느새 ‘공부 잘하는 복학생 형’이 되어 있었고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 돈이 생기니 그녀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주말에 함께 금은방에 가서 수많은 반지 중에 커다란 큐빅이 박힌 금반지를 골랐다. 먼 훗날 윤정이에게 들으니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어느 날 저녁 결혼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들어와서 무척 놀라셨다고 했다. 그리고 남자 친구가 장학금 받은 기념으로 사준 선물이라고 하자, 금은방 주인이 뭔가 오해를 했나 보다 하시며 그 반지 끼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때는 우리가 어려서 몰랐다. 그 반지의 디자인이 전형적인 결혼반지였다는 것을. 나의 부모님도 모르셨다. 내가 학교에서 장학금 받는 학생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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