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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May 11. 2021

십여 년만에 받은 남편의 꽃선물

일곱 송이를 주워오다

시어머니 이야기는 끝이 없고, 그는 꽃을 주웠다


어제 오후에 나는 시어머니를 인터뷰하러 갔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게 딱 6개월 전이었다. 그때 맨 먼저 써보고 싶었던 게 시어머니 이야기였다. 제목을 '좌절불가 긍정녀, 홍여사'로 지어놓고 글을 쓰다가 서랍 속에 처박아 둔 게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녀의 긍정 스피릿은 어디까지'라는 제목이 작가 서랍의 맨 밑에 있다. 


휴직한 지도 6개월이 됐고, 후반 6개월은 이제 뭔가 제대로 된 것들을 시도해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게 된다. 그래서 어버이날에 시어머니와 식사를 하며 살아오신 이야기 듣겠다고 약속을 잡았다. 


내가 겉으로 보아왔던 시어머니 모습은 너무 표피에 불과한 것이기에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어릴 때 이야기부터 젊은 시절 고생담(책 두 권은 써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다)까지 천천히 듣기 시작할 참이었다. 첫 이야기 꽃은 예상처럼 두서가 없었지만, 좋았다. 말씀하시면서도 체계가 안 잡히시는지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한다"라고 하시면서도 이야기는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일단 세 시간만 들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금방 간다. 자고 가라고 하신다. 


"다음에 애아빠하고 같이 와서 자면서 들을게요."

"안된다. 애들 아비한테는 내가 이런 얘기한다고 말하면 안 된다."


이러신다. 아들한테 못할 말을 며느리한테 숨김없이 주시는 시어머니이고 보면, 우리는 짝짜꿍이 잘 맞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라고 볼 수 있다. 합가 해서 살았던 기간이 길어지며 알게 모르게 금이 갔던 기간이 없었다면  우리 고부는 정말 찰떡궁합이었을지도 몰랐다. 다시 분가를 한 뒤 시간이 지났고, 마음의 거리가 다시 조금씩 좁혀졌다. 이제 시어머니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면서 얘기를 듣고 싶어 질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시어머니 인생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1주일에 1회로 잡았는데, 계획을 수정한다. 시간 날 때마다 들어야겠다. 그래서 "내일 다시 올게요"하고 약속을 또 잡고 일어섰다.


집에 도착하니 7시가 조금 넘었다. 남편은 퇴근한 것 같은데 없는 걸 보니, 오늘도 숲으로 내달렸을 것이다. 시간만 되면 하루에 두 번씩 그는 숲으로 간다. 숲을 더 좋아하는 건 나인 것 같은데, 숲을 더 자주 찾는 사람은 그다.


앉아서 잠시 쉬고 있으려니 남편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주방으로 들어서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뭘 꺼낸다. 꽃이다. 꽃을 숲에서 주워왔다.


'이거 나한테 주는 꽃 선물인 거 맞나?'

어버이날에 꽃 한 송이 받지 못한 나는 꽃이 고프다. 그가 그걸 알았는가 보다. 




때죽나무 꽃 보다 스노벨이 잘 어울려


꽃은 일곱 송이였다. 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여린 화이트 플라워, 스노벨(snow bell)이다.

스노벨은 눈처럼 희게 종처럼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려 있다. 때죽나무 꽃이다. 


때죽나무 꽃이 숲에 한창 많이 피었다. 만발한 수준이다. 

작은 스노 벨이 조르르 연달아 나무에 한가득 매달려 있다. 그래서 자꾸 사진을 찍고 싶어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던 꽃이다.



꽃이 많다 보니 바닥에 떨어진 꽃도 많다. 동백꽃처럼 지지도 않은 꽃이 꽃 채로 뚝뚝 떨어져 있다.


때죽나무 꽃이 솔잎 위에, 숲길 위에, 연못 위에 떨어져 있다. 꽃이 떨어진 바로 위를 보면 때죽나무에 꽃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지난해 태종대에서 스노벨을 주워다가 낮은 유리그릇에 물을 담고 띄워놓고 잠시 즐겼다.

남편은 이게 생각난 게다.

그래서 꽃을 몇 개 주워왔는데 나는 꽃 선물이라고 아주 부풀어 있다. 

꽃을 세보니 일곱 송이다. 유리로 된 작은 접시에 물을 담고 꽃을 물에 띄운다.

 





흰종 같은 꽃, 레몬 향기, 매끄런 줄기 


이사 오기 전 동네에서 자주 다니던 숲은 해발 204미터였다. 나지막한 산은 우리 수준에 안성맞춤이었다.


그 숲은 편백나무 숲을 인공으로 조성해서 삼림욕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거기에 나무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도록 2층짜리 데크를 만들어놓고 나무를 아래에서 위에서 모두 즐길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 숲에 다니며 우리가 새로 알게 된 두 가지 나무가 있었으니 그게 때죽나무와 사방오리나무였다. 물론 나무이름표 덕분이다. 트레킹하며 두 나무를 찾아보니 숲 속에 이 나무들이 정말 많았다. 


사방오리나무는 나무의 피부가 무척 두껍고 거칠다. 나무가 크고 투박하면서도 가지도 대부분 아랫부분부터 사방으로 뻗어있다. 수피가 대략난감 수준으로 각질이 일어난 것처럼 보여서 겨울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키가 큰 교목으로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 산사태를 막는 사방공사(砂防工事)를 위한 조림용 나무로 많이 심었다.


사방오리나무는 나무껍질이 거칠고 툭 건드리면 떨어질 듯 일어나 있다. 나무 모양이 둥치부터 갈라지기도 하고 아래부분에서 벌어지는 등 수형이 반듯하지는 않다. 


사방오리나무 전체 모양(왼쪽)과 초록색으로 매달린 수꽃



사방오리나무와 비교하면 때죽나무는 피부가 비교적 매끄러워 거의 피부미인 수준이다. 잎이 하나도 없는 겨울에도 어떤 나무인지 금방 식별이 가능하다. 


사방오리나무(왼쪽)와 때죽나무. 수피만 봐도 금방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나무껍질이 차이가 난다. 어린 때죽나무는 갈라짐이 거의 없고 더 매끄러운 수피를 지녔다



때죽나무는 스노벨이라는 아름다운 꽃과 향기, 매끈한 피부 등을 자랑한다. 키가 8m이상 자라는 키큰나무를 이르는 교목 중에서는 크지 않은 소교목이다. 10미터정도까지 자란다. 


수형은 줄기가 똑바로 크지 않고 약간씩 눕거나 꺾이면서 성장해 모양이 제각각이다. 숲에서 나무들은 어떤 환경이든 햇빛을 찾아서 크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조경용으로 심은 때죽나무와 숲의 때죽나무는 수형이 매우 다르다.




맨 위 왼쪽 때죽나무는 조경용 나무로 수형이 예쁘다. 하지만 숲에 있는 때죽나무들은 햇빛을 찾아 휘고 꺾여 모양이 제각각이다.


봄숲 속에서 때죽나무를 발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길을 보는 것이다. 종처럼 매달린 꽃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작은 흰꽃이 여러 개 떨어져 있는 곳 바로 위를 보면 때죽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때죽나무 잎이 풍성히 자라 있고 잎 아래쪽에 꽃이 있기 때문에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니치기 쉽다.


종처럼 매달린 때죽나무 꽃과 꽃자리에 맺은 열매

고운 꽃과 앙증맞은 열매를 자랑하는 이 나무에 때죽나무라는 이름은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어떻게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아보니 여러가지 설이 있다. 


우선 줄기가 검은색이어서 때가 낀 줄기 같은 '때 줄기 나무'에서 나왔다고 한다. 

열매와 관련해 여러가지 설이 있다. 녹회색의 반질반질한 열매가 스님들이 떼로 몰려있는 것이 '떼중나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열매를 물에 불려 빨래를 하면 '때가 죽 빠진다'고 해서 붙였다는 설, 가루를 내서 물에 풀면 독성 때문에 물고기가 '떼로 죽어서 떠오른다'고 해서 붙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때죽나무의 호시절 5월


요즘 한창 흰색 종꽃을 자랑하는 때죽나무 옆을 지나면 레몬향 같은 상큼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때죽나무의 학명(Styrax japonicus)에서 'Styrax'는 '안식향이 나온다'는 뜻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가 때죽나무를 가장 즐길 수 있는 때이다. 

흰색 종 같은 스노벨을 나무에다 잔뜩 매달고 있는 이 때만이라도, 나무이름 보다는 꽃이름으로 불러보면 어떨까. 스노벨은 나무에 조롱조롱 매달려 있고,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있다.


바닥의 스노벨 몇 개 정도 주머니에 넣어와도 좋을 일이다. 

누군가를 설레게 할 수도 있다.



식물백과-때죽나무


두산백과-때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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