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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행복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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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Mar 08. 2021

'가끔 나쁜 남자'에게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

'가끔 쉬운 여자' 되기

가끔 '견고한 성'을 와장창 무너뜨리는 남자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저 남자

많다기보다는 가끔 있다. 예전보다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그것만도 칭찬해야 하나. '그렇지, 그래야 내가 살지.'


금요일 오후였다. 금요일이라 좀 일찍 퇴근한 남자는 몸이 안 좋다고 했다.

그 전날 밤, 또 그날 아침 여자가 준 타이레놀을 두 알씩 두 번 먹었더랬다.

살짝 감기 기운이 있나, 두통이 왔나 생각하며 약을 찾아주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남자에게 잘 왔냐는 인사를 하지 못하고  "지금 당신한테 줄 시간 없어요. 나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하고 말한 게 아마 씨앗이 되었을 수 있다. 퇴근할 때 열심히 자신을 반기지 않으면 화가 나는 증세를 가끔 보이기에 나름 재치 있게 아양 떨며 말한다고 했다. 다른 날보다 좀 더 일찍 왔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는 하고 있던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시작한 브런치 글을 쓰고 있었다.  


금요일에 일찍 퇴근하면 무조건 등산을 가야 한다는 게 룰이었다. 산을 끼고 살기 때문에 한 시간만 잡으면 동네 산을 휘 한 바퀴 돌고 올 수 있었다. 여자도 가려고 마음을 다 먹고 있었단 말이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매일 거의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산에 가는 게 남자와 여자의 루틴이었다.


5시부터 남자는 아파트 커뮤니티센터 락커 키를 받으러 관리사무소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했다. 

"알았어요. 아직 시간 있으니 갔다 올게요." 6시 퇴근 전에 가면 되니 서두르자.

여자는 쓰던 브런치 글을 마무리해야 했다. 근데 이게 5분, 10분 만에 후딱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두 번째 발행할 글을 쓰고 있었다. 글이란 게 쓰다 보면 자꾸 뭘 더 쓰게 되고 예전에 읽었던 책을 인용해야 되겠다 싶어 책장에서 책을 찾아오고, 그랬다.

 

"락커 키 오늘도 못하겠네." 심상찮은 목소리. 심사가 뒤틀린 소리다. 

어제도 그제도 커뮤니티센터 앞을 지나며 락커 키 가져오는 얘기를 했더랬다. 

그 전날, 또 깜빡했다. 브런치 시작하는 날이었기에.


남자의 뒤틀린 목소리에 브런치에 초집중 상태였던 여자가 즉각적으로 발끈했다. 

"왜 그래, 갔다 오면 될 거 아니야!" 

5시 20분쯤이었던 것 같다. "시간 아직 충분해."


결국 브런치를 마무리 못하고 책상에서 일어서 드레스룸으로 갔다. 파카를 걸치고 나오는데 남자가 거실에서 한마디 했다. 

"그게 누구 돈인데?"

그게 뭔 말인가 했다. 

그러니까 3월 2일부터 시작한 아파트 커뮤니티센터 사용료 5천 원, 라커 사용료 5천 원을 남자가 번 돈으로 냈는데 지금 4일째 가지도 않고, 라커 키도 안 받아온 것에 대한 응징이었다. 

뭣이 라고라!!!    



무급휴직 중인 여자는 '총 맞은' 가슴이 되었다


참 가당찮았다. 게다가 그 이용료는 여자 계좌에서 여자가 송금했다. 

그 뒤에 매우 빠르게 몇 마디가 오갔다. 

"당신이 휴직 중일 때 내가 그런 말 한 적 있냐?" 여자가 기가 막혀 한마디 했다.

"나는 돈을 벌었잖아!" 남자가 응수한다고 한 말이다. 참 대단타.

남자는 유급휴직 같은, 이름하여 안식년 비스무리한 걸 했더랬다. 60% 월급이 나왔다. 그걸 자진해서 했고 1년을 쉬었다.

"그건, 당신이 돈 번 게 아니지. 그냥 월급이 좀 나온 거지."

"너는 돈 나오냐?"

"알았다." 오버!


그때 여자는 이성을 잃어서 여자가 자기 계좌로 돈 보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저 인간 돈은 한 푼도 안 쓴다'는 생각에 바로 뛰쳐나갔다. 관리사무소로 갔다. 이번 달에 이용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환불해달라고 했다. 관리사무소 여직원은 뭘 확인한 뒤 휴대폰으로 문자가 날아가면 계좌번호를 찍어 보내고, 그 계좌로 송금해줄 거라고 했다.


꼭 20년 전이 바로 지금처럼 소환됐다. 너무 생생하다. 기억력이 어지간히 없는 여자인데도 그때 그 느낌이 그대로다. 

그러니까 남자는 20년 전에 여자한테 똑같은 총을 쏘았다. 

"집에서 놀면서!!!"



주말부부로 살면서 애 둘을 여기저기 맡기며 워킹맘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았다. 시댁에서 유아기를 책임졌고 두 돌이 막 지난 아들내미를 데리고 오기 위해 여자는 나서서 직장어린이집을 만들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큰애를 출퇴근하며 어린이집에 데리고 다녔다. 유치원에 들어가자(당시엔 종일반이 없었다) 친정에, 언니 집에 아이를 맡기며 근근이 독박 육아 중이었다. 남자는 주말에만 나타났다. 


그런 와중에 남자가 여자한테 "퇴직하자"라는 말을 했다. 그런 비스무리한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남자가 그런 제안을 해오자 여자는 쉽게 넘기지 못했다. 큰애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 시댁, 친정 모두 지쳐 나자빠져 있는 상태였다. 2001년에는 초1 급식도 안되었고 방과 후 수업 등의 방과 후 돌보미 서비스가 없었다. 초1 아들을 누군가 점심 먹이고, 오후를 케어해줄 수 있어야 했다. 시어머니한테 집에 오실 수 있으신지 요청했지만 거절하셨다. 애들 키우는 걸 할 만큼 하신 터라 서운함 같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여자는 경단녀가 되었다.


남자가 하자고 해서, 또 애 키우기 위해 남자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낯선 도시에 여자는 아이들과 함께 이사했다. 여자와 남자는 같은 과 캠퍼스 커플에,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더랬다. 스펙이 참 비슷했는데 이때부터 무척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여자가 무척 손해를 본 것 같긴 한데, 여자의 성격이 워낙 쿨해 놔서 여자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사표를 거침없이 던졌더란다. 그때 부장은 "나도 그만두려고 한다. 좀 더 있다가 나랑 같이 그만두자"면서 좀 잡았더란다. 그 부장은 두고두고 일을 그만두지 않고 그 회사 사장까지 되었더란 얘기도 있다.


하여튼 그렇게 경단녀한테 '집에서 논다'는 말로 총질을 해댄 남편이 있었다. 20년 전에

성질 급한 경단녀는 바로 그다음 날 삼성증권 직원을 불렀다. 

'그래, 내가 돈을 좀 벌어주마.' 

그때 자산도 많지 않았는데 오랜 고객이라 그런지 담당 직원이 있었다.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삼성 SDI와 LG유플러스 주식을 2천만 원어치 샀다. 종목을 어떻게 골랐는지 알면 기절초풍한다. 삼성SDI는 주가가 10만 원쯤 했기 때문이다. 계산하기 쉬워서. 유플러스는 직원이 고른 주식이었다. 그때부터 주식으로 고생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겠다.   

  

화가 난 상태에서 한 모든 의사결정은 뒷수습에 상당한 노력과 시일이 필요하다. 

 



한 이불에서 내외하며 이틀을 잤다


여자는 화가 많이 났다. 

살림하며 돈까지 버는 여자가 좀 쉬고 있는 그 틈을 타서 허점을 노리는 게 비겁한 남자이고 쩨쩨한 남자이며 결정적으로 '나쁜 남자'였다. 저 나쁜 남자를 어떻게 벌해야 할지와 어떻게 향후 인생을 보내야 할지 막막함에 한숨 쉬며, 여자는 서재에서 못다 한 브런치 두 번째 글을 마무리하고 발행 버튼을 눌렀다. ㅋㅋ


불금이라 저녁을 외식하기로 했었는데 애당초 외식 같은 건 물 건너갔다. 남자는 딸아이와 함께 라면을 끓였다. 딸아이가 라면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여자는 잠시 지체했다. 라면이 불면 안되었기에 아주 잠깐이었다. 그 순간을 못 참고 남자는 "엄마한테 갖다 드리도록 해라!" 뭘 이런 소릴 했다. 좋은 의도가 아닌 약간의 비아냥이 섞인 그런 소리였다. 여자가 냉큼 주방으로 가보니, 남자는 라면 그릇을 들고 거실로 내뺐다. '네가 보기 싫다'는 사인이었다. 덕분에 편하게 딸과 함께 라면을 먹었다. 라면에 떡, 어묵, 달걀 넣고 잘 끓였다. 라면이 맛있다.  

 

얼른 여자가 먼저 침대에 누웠다. 혹시 모를 '따로 잠자리'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디를 먼저 선점하느냐에 따라 며칠간 잠자리가 얼마나 편할지가 결정될 수 있다. 책을 보다 잠이 얼핏 들었는데, 남자가 불을 끄고 침대로 들어온 기척이 느껴졌다.


토요일도 한 번도 밥상에 같이 앉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다행히 딸아이가 생일을 맞아 친구를 만나러 갔고, 남자는 회사에 당직 때문에 가는 날이었던가 보다. 그날은 남자가 먼저 침대를 선점했다. 하는 수 없이 여자가 합류했다. 두 남녀는 한 이불에 누워 엄청 내외하며 이틀을 잤다. 피부가 닿을까 봐 조심했으며 조금이라도 먼저 스치면 패배를 인정한 걸로 비칠까 봐 수면의 와중에도 신경은 곤두섰다. 




가끔 이상해지니까 가끔만 쉬워지면 되는 건가  


여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기에 응징받아 마땅한 저 남자가 잘못을 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지가 화난 척한다. 참 도대체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족속이다. 


그날도 퇴근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사랑스러운 남자일 수가 없었다. 마음훈련에다가 행복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여자가 스스로 마음이 내는 데다가 남자도 퇴근하면 곧바로 두 팔 걷고 요리에 동참하고 우스갯소리도 곧잘 했다. 궁둥이 두드리며 등을 쓰담쓰담해줄 수 있을 정도의 자격이 있었다. 같이 숲에 다니고, 요리하고, 유머 장착 디너까지 부족할 거 별로 없었다. 


그런데 가끔 성질을 부리면 이상하다. 택도 아니게 잘못한 남자가 화를 낸다. 지가 잘못한 줄을 모른다. 나쁜 남자가 분명하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딸아이 생일에 용돈만 주고 그냥 보낸 게 미안해서 아침부터 요리를 했다. 황태로 미역국을 끓이고 압력솥에 밥하면서 달걀찜을 같이 만들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동그랑땡을 부쳤다. 토요일에 빵 등류로 하루를 버티고 밥을 못 먹은 가족 모두 밥이 고팠다. 


그러고서 식탁으로 남편을 불렀다. "밥 먹자!"


법륜스님의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좀 지혜롭게 살아라.  


용서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고민을 딱 끊었다.

가끔 이상한 '가끔 나쁜 남자'에게 나는 '가끔 쉬운 여자'로 대처한다.


이게 현재의 지혜다. 


행복훈련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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