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어제저녁 어머니와 통화하던 중 갑자기 "오랜만에 '상위 1% 카페'에 들어가 봤다"는 말씀을 하셨다. '상위 1% 카페'는 특목고 입시나 교육 관련 정보가 오가는, 말하자면 '수만휘'나 '이공별'의 초중학교 버전 커뮤니티다. 나도 영재학교 입시를 전후로 이런저런 정보를 얻기 위해 카페에 들락거렸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때도 가끔 구경했던 기억이 있는데, 뭔가 흔적을 남기는 것 같아 커뮤니티에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그것도 고등학교 때 이 카페에 글을 하나 썼다.
영재학교에서 하나둘 2차 합격자가 발표되면서, 앞으로 이 도전을 이어가야 할 친구들과 새로운 길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할 친구들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같은 길을 걸어왔던 친구들인데 말이죠. 영재학교에서 1년 반을 보내면서, 입학 전형이 진행될 때가 되면 저도 덩달아 긴장되곤 합니다. 그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온 사람이기에, 후배들의 간절함과 긴장, 두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왔던 길을 열심히 걸어오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할 후배들을 위해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먼저, 2차 시험에 합격하신 후배님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영재학교 입학의 가장 큰 고비를 넘었고, 이제 마지막 관문만을 눈앞에 두고 있겠지요. 합격이 손에 잡힐 듯하니 설레고, 여기까지 와서 떨어지면 어떡하나 마음 한켠에서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 겁니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대한민국의 수많은 중학생들 중에서도 가장 우수하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꿈꿔왔던 영재학교까지, 단 하나의 문턱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번에도 잘 해낼 거예요.
그리고 2차 시험에서 아쉽게 탈락하신 후배님들, 절대 주눅 들지 마세요. 그 시험장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입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오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을 겁니다. 그 경험들이 여러분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큰 자산이 되어줄 것입니다. 물론, 영재학교 하나만을 바라보며 바친 시간과 노력에 마음이 아프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상처가 아물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층 더 성장한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을 떨어뜨린 입학사정관들이 후회할 만큼, 보란 듯이 잘해내세요.
세상에 옳은 선택이란 없습니다. 결과가 좋았다면 선택 역시 옳은 선택이 되고, 그렇지 못하다면 잘못된 선택이 될 뿐입니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했든, 그 결정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이 될 수 있도록, 자신만의 길 위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길 기원합니다. 힘든 길을 선택해 지금까지 너무도 고생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힘냅시다!
5년 전에 쓴 이 글을 갑자기 꺼내 본 것은 어머니와의 통화가 저편에 밀어 둔 기억을 되살린 까닭도 있지만, 간만에 이때의 감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사흘 전이었던 일요일, 전국 영재학교가 동시에 2차 시험을 치렀다. 내 동생 역시 그곳에 있었다. 시험이 끝난 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피곤과 후련함이 한데 뒤섞인 그 목소리에 7년 전 내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한나절을 쏟아낸 시험장의 풍경, 합격자 발표 날 잔뜩 긴장해 수업 내내 딴생각을 했던 기억, 합격을 확인하던 순간 흘렸던 기쁨의 눈물까지. 인생에서 고등학교 입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이때는 내 삶의 전부였다.
입시를 치른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러했듯 이들의 간절함을 알기에 진심을 담아 다시 한번 오래된 편지를 띄운다.
후배들에게, 그리고 내 동생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