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Jun 09. 2020

영재학교에서 배운 것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기

우스갯소리로 떠도는 '서울대 3대 바보' 중에는 '고등학교 때 전교 1등 했던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영재학교도 비슷하다.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던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인 만큼, 전교 1등이 한둘이 아니다. 영재학교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전교 1등'들이 함께 공부하고, 어쩔 수 없이 그 학생들 사이에서 성적이 나누어진다.


많은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좌절감을 느낀다. 당연하게도 1등을 해 오던 중학교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 나와 보니 나보다 뛰어난 친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높은 성적과 칭찬이 당연했던 학생들은 점점 낮아진 성적에 익숙해진다. 시험에서 100점을 맞지 못하면 실망했던 학생들이 평균을 넘는 점수를 받았는지에 집중하게 된다.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닫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다. 더군다나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푸는 쉼터가 되어줄 집도, 다독여줄 가족도 곁에 없다.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갓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몇 달을 혼자 끙끙대다 보면, 점점 곁에 있는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친구들과 생활하며 여러 활동들을 함께하다 보면, '이 친구는 수학을 잘하는구나', '이 친구는 실험 설계를 잘하는구나'하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는다. 수학, 물리, 화학과 같은 수과학이든, 인문 과목이든, 글쓰기든, 발표든,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하는 영재학교에서는 모두 쓰일 데가 있다. 쏟아지는 과제와 대회, 시험을 소화해내려면 각자 잘하는 것을 파악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영재학교에서의 진짜 배움은 내가 모든 일을 잘할 필요는 없다는 것과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 늘 우등생이었던 아이들이 자신보다 뛰어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중학생 때까지와 달리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족함을 다른 친구가 메꾸어줄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그전까지는 '나는 완벽해야 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음을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내가 모르는 것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선생님, 친구에게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기 위해 논의한다. 무엇이든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용기 내어 첫 질문을 한 뒤에는 질문하는 것이 조금씩 쉽고 익숙해진다. 질문이 익숙해지면 자연스레 배움의 깊이도 깊어진다.

 

영재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수과학에 대한 지식과 융합적 사고력, 연구역량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영재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좁은 세상에서 늘 최고였던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배운다. 그래서 영재학교 학생들에게 학교는 학업의 장이자 생활공간임과 동시에, 삶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재학교의 교육과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