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1학년 때는 주로 필수과목을 수강하는데, 고등학교 전 과정의 과학 과목을 1년 동안 완성한다. 물리의 경우 입학 전 과제로 고등학교 물리 1, 2를 공부하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일반물리학 교재로 수업을 받았다. 수학은 미적분학과 확률 및 통계를 제외한 고등학교 전 과정을 끝냈다. 미적분학은 AP과목으로, 확률 및 통계는 별도 과목으로 2학년 때 다뤘다.
1학년 인문 과목은 필수과목임에도 비교적 수업 구성의 자유도가 높은 편이었다. 수업의 80% 정도가 발표와 토론 등으로 구성되었다. 학생이 수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학생이 가만히 앉아서 강의를 듣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오히려 영재학교의 핵심인 수과학 과목보다도 적극적인 수업 참여가 요구되는 과목들이었다. 정해진 교과서가 없는 과목도 많았으며, 교과서가 있다 하더라도 일반 교과서가 아닌 자체 교재나 인문학 도서를 사용했다.
2학년부터는 수강신청을 통해 원하는 과목을 선택적으로 수강한다. 필수과목을 들으며 반별로 수업하는 시간이 많던 1학년과는 달리, 이때부터는 학년과 반에 무관하게 섞여 각 과목별 분반이 배정된다. 정원과 수업시간이 정해져 있는 대학의 수강신청과는 다르게, 수강 정원과 정해진 수업시간이 없어 모든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수강할 수 있다. 수강신청 기간이 되면 재미 삼아 6학기까지의 시간표를 미리 짜 보곤 하는데, 그 시간표를 캡처해 두었다 실제 그 학기의 수강신청과 비교해 보기도 한다. 듣고 싶은 과목이 많아 졸업학점을 훌쩍 넘도록 설계한 1학년 때의 패기와는 다르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느슨해지는 시간표를 보는 것은 소소한 재미다.
많은 학생들이 수학 AP는 모두 수강하고 과학 AP(일반물리학, 일반화학, 일반생명과학) 중 두 과목을 골라 수강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때 수강하는 과목과 연관된 학과에 지원한다. 가끔 특별한 관심 분야가 없어 성적을 잘 주는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런 학생들이 대학 원서를 쓸 때 '물리 AP를 안 들었으니까 공대는 못 가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고등학교 과학을 모두 배워 충분히 대학 공부를 할 수 있음에도, 특정 AP 과목을 수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민하는 상황이 조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동기들 중에도 그런 친구들이 몇 있었지만, 대학 진학을 걸고 모험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AP과목 외에도 다양한 선택과목이 있다. 주로 해석역학, 유기화학, 미분방정식 등 AP보다 심화된 내용을 다루는 과목들이다. AP 수강 이후 자신의 관심 분야를 깊게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이 선택하며, 일부 학교를 제외하면 AP와 달리 대학에서 학점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화 과목 외에 융합 과목도 있으며, 과학예술영재학교(세종, 인천)의 경우 창의융합교과를 따로 운영해 일정 학점 이상을 이수하도록 한다.
영재학교의 교과 교육과정은 크게 '고등학교 교육과정+인문학 기본 소양+대학 기초 교육(AP)+심화과목+융합과목'으로 구성된다. 연구 과목 제외 140~160학점, 연구 과목을 포함한다면 180학점의 과목을 이수해야만 졸업을 향한 관문 하나를 통과할 수 있다. 고등학교 전 과정 및 대학 수준의 과목들을 한 학기 평균 30학점씩 수강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교과 외 활동을 추가하면 학업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재학교 하나만을 바라보며 공부하고 있을 초등학생, 중학생들에게 고한다. "여러분은 공부하기 위해 공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