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인테리어에 관하여 - 사노 요코 씨에게 감사하다

나만의 정돈된 세상이 된 카오스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장식하고  정결한 그릇을 고르는 건 많은 여자의 취미이다. 나는 그런 잡지를 즐겨 읽으면서도 지나치게 아름다운 사진에는 당혹감을 느끼곤 했다. 왠지 몸 둘  바를 모르겠고, 부끄러워진다. 하얀 원목 테이블에 자수가 놓인 테이블보라든지, 시트와 베개를 핑크 꽃무늬로  통일하는 짓은 못하겠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면 거리에 가득한 아름다움을 거역할 수 없게 되고, 아름다운 물건들을 손에 넣으면 마음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당~신의 과거는 알고  싶지 않~아." 그러면 숫처녀인 척 남자를 속인 기분이 든다.  

-사노 요코 [문제가 있습니다] '쿠페 빵과 <메콜즈>'  가운데  

                       

   




사노 요코 씨는 지나치게 장식된 인테리어에 대해 당혹감을 느낀다고 했다. 인테리어에 대한 그녀의 식견이 담긴 글을 읽었을 때 나는 '이런, 세상에!' 하며 격한 동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반드시, 그래 반드시! 그동안 어렴풋이 느끼기만 하고 실체를 알 수 없었던, 그 완벽하게 짜 맞춘 듯 일말의 흐트러짐 없이 먼지 하나 쌓이지 않은 편집숍이니 잡지에서 보아왔던 인테리어에 관한 내 생각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개념으로 정리해보자고 생각했다. 딱 사노 요코 씨처럼, 사노 요코 씨만큼, 아니 그 근처에라도 만큼. 

내가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솔직히 말해 내. 집. 이랄 게 생긴 뒤부터다. 그동안에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아예 쳐다도 보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맞다. 

나는 스물일곱에 결혼을 했다. 스물다섯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그때까지 모은 돈이 1200만 원가량 되었다. 당시 내 월급은 120만 원이었고, 그중 4-50만 원 씩을 꼬박꼬박 저금해 모은 돈이었다. 결혼할 때 나도 그랬지만 남편도 집안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서로가 개인적인 가정사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해서 안정을 찾고 싶었다( '결혼이 더 큰 문제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사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며 지금은 둘 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남편은 그때까지 모은 2000만 원으로 전셋집을 구했고, 나는 1200만 원으로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 절반과 혼수를 했다. 12년 전의 일이라고 해도 결혼식과 신혼여행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돈으로 혼수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테리어 따위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없는 돈으로 최대한 저렴하지만 결코 조잡하지 않은 물건을 고르는 능력은 그때부터 훈련이 된 듯하다. 
 
생활의 형편은 지금도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 물론  처음에 비하면 남편의 직장도 좋아지고 그로부터 얻는 수입도 늘긴 했지만 문제는 수입이 늘어나는 만큼 물가도 그에 비례해, 아니 그보다 더 올랐다는 데 있다. 게다가 아이까지 생겼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겨우 머리 하나 늘었을 뿐인데, 돈의 쓰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중간에 아버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3년 전, 은행과 손을 잡고 내 집을 마련했다. 결혼하고 딱 10년 만이다. 내. 집. 이라고는 하지만 말했듯 은행과 손을 잡았다. 은행이라는 녀석은 속된 말로 짤이 없는 녀석이고, 매달 우리 지갑에서 수입의 n분의 1을 가져간다. 원리금을 함께 가져간다고 해도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러니 인테리어는 지금도 나에게 사치스러운 것이다.   

사치스럽다고 해도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한 게, 내 것이 생기니까 어떻게든 꾸미고 싶더라는 것이다. 넓은 거실 에 맞춤식 책장도 짜 놓고 싶고, 아이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튼튼한 원목 책상에 안방에는 붙박이장도 하고 싶었다. 베란다는 또 어떤지. 두 뼘 정도 되는 베란다에 그동안 모은 화분을 놓아도 꽉 차는 마당에 새장까지 매달아 놓으면 얼마나 예쁠까 생각하며 거의 알람브라 궁전의 정원을 연상케 할 만한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중 나는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인테리어를 새로 하기는커녕 남편과 두 손 두 발 다 걷고 새로 이사 들어갈 집에 켜켜이 앉은 먼지를 닦고, 찌든 기름때를 쇠수세미로 문지르고, 마루와 부엌 바닥에 눌어붙은 생활의 때를 락스 묻은 솔로 박박 닦아냈다. 굳이 돈을 들인 것이 있다면 안방과 아이방의 장판과 도배뿐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였기 때문일까, 나의 쇼핑 중독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흔히 중독이라고 하면 그 행위가 구매로까지 이어지는 법인데, 다행히 나의 중독은 금전적인 출혈을 일으키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대신 시간에 출혈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지는 않으면서 병적일 만큼 사고 싶은 물건들에 집착하며 더 싸게 파는 곳,  싸게 내놓은 쇼핑몰을 찾아다니며 끝도 없는 눈팅을 했으니까.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너무 많이 둘러본 나머지 그 물건이 질려버리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건은 갖지도 못했으면서…. 결국 싸게 내놓은 쇼핑몰을 찾게 되더라도 그 물건을 사지는 않았다. 눈은 벌게지고, 새벽은 밝아오고, 일거리는 밀려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의 눈팅을 통해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인터넷 쇼핑몰로, 혹은 잘 차려진 가게에 들어가서 보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예쁘고 예쁜만큼 가격도 비싸다. 물건이 예쁘고 그래서 비싼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물건들이 어느 가게, 어느 쇼핑몰에서나 짜 맞춘 듯 비슷비슷하다는 것이고, 차려놓은 모양새도 그 종류도 생각만큼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다. 흔히 소호라고 불리는 소규모의 개인 쇼핑몰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마니아 샵에 들어가도 결국 어딘가에서 본 듯한 물건들이 특이한 무늬에 디자인을 가진 물건들보다 많았다. 게다가 약간만이라도 더 특이하려 치면 0 몇 개가 슬그머니 가격표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면 '정말? 이게? 음… 과연 이 값을 주고 살만한 물건일까?' 하고 이성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슬금슬금 발걸음을 돌린다. 이런 행동을 몇 번이고 하다 보면 방금 전까지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 왜 그럴까? 단순히 이성이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수년 동안 그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사노 요코 씨의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번개의 신 토르의 묵직한 망치에 뒤통수를 후려 맞은 것처럼 모든 것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당혹감이었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차림새. 맨질맨질한 원목 테이블에 깃털이 내려앉은 듯 하얗게 놓인 레이스 테이블 보. 핑크 꽃무늬 혹은 시원한 블루, 그린 계통의 무늬로 통일한 침구류. 먼지 쌓인 듯한 하드커버의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는 원목 책장. 자로 잰 듯 각종 오너먼트를 열 맞춰 진열해 놓은 장식장. 빛바램 마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가구들의 색깔. 그리고 하나에서 열까지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식기들…. 반찬 그릇 하나라도 다른 색깔이나 무늬로 샀다가는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글의 처음 시작에 인용해 놓은 사노 요코 씨의 이야기가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거리에 가득한 아름다움을 거역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당혹감 그 자체를 받아들였고, 일단 한번 당혹감을 느끼면 슬슬 질리는 감정이 마음속에 일기 시작했다. 그런 감정이 이는 이유가 정말로 단순히 질려서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살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대해 자격지심으로 방어기작이 작용해서인지 모르지만, 나는 몇 날이고 며칠이고 눈이 벌게져서 들여다봤던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를 접고, 그동안에 눈팅을 하느라 밀렸던 일거리들을 해결하고 집안을 말끔히 치우기 시작한다. 

사고 싶었던 가구가 있었다면 기존의 가구들을 다시 배치해보고, 찬장 안에 들어있는 그릇들을 솎아내고, 내가 사랑하는 책장의 책들을 정리한다. 먼지를 닦고, 이가 나간 것을 골라내 아이가 모아놓은 소박한 보물들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거나 연필통으로 대체하고, 다시 읽고 싶은 책과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책, 너무 많이 읽어서 이제 떠나보내도 될 책으로 구분해 책장의 먼지를 닦는다. 그러면 빈 곳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 빈 곳에 어떤 물건을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보통 이런 과정은 뭔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나 역시 바쁜 현대인이고, 엄마고 아내이기 때문에 거리에 넘쳐나는 물건들에 눈이 먼저 가게 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토록 장황하게 써놓았던 행동들을 반복하게 된다.

정말로 다행인 것은,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나는 당황하고 물러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응당 맨 처음 했어야 할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과정이 거기까지 진행되다 보면, 우리 집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물건들이 식구가 되어 있다. 그리고 보통 그런 물건들은 허울 좋은 기획전 혹은 노골적으로 재고를 팔아치우기 위해 가판대 위에 널브러 놓은 철 지난 물건들이거나, 남편과 오랜만의 거리 나들이에서 발견해낸 중고가구와 소품들이다. 우리 집 찬장에는 어느 하나 통일된 문양과 색깔의 그릇이 없다. 죄다 내가 좋아하는 풍으로 골라낸 합리적인 가격의 식기들 뿐이고, 대부분 그릇 도매상이나 인사동 혹은 인천의 중국인 거리에서 골라낸 일본풍이나 중국풍의 도기들이다. 그중 선물로 받은 고급스러운 그릇 세트도 나와 오랜 시간 함께 하다 보니 하나씩 모은 개성 강한 그릇들과 오묘하게 잘 어울린다.   

통일감이 전혀 없는 물건들 속에서 사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좋. 다. 
비록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일관성이 없고, 텔레비전 홈쇼핑이나 잘 차려놓은 편집숍에서 파는 세련된 디자인의 물건들은 아니더라도 나는 그 속에서 아늑함을 느끼고 익숙함을 입는다. 처음에는 당장이라도 살 것처럼 기세 좋게 쇼핑몰 창을 여러 개 띠워놓고 백화점이나 아웃렛 투어를 해도 결국에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오래도록 익숙한 카오스들이다. 나만의 정돈된 세상이 된 카오스들은 값으로는 따질 수 없는 온화한 상품이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