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동안 한 서린 꽃 무더기를 피워내는 배롱나무 이야기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남쪽 바닷가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살고 있었어요.
혼기가 찰 무렵, 아가씨에게는 두 명의 구애자가 있었는데요,
그중 한 명은 아가씨도 열렬히 사모하는 뭍에 사는 사룡이었고
또 한 명은 만나기만 하면 피하고 싶어지는 바다의 이무기였어요.
이무기는 아가씨에게 참말로 소름 끼치고 귀찮은 존재였지요.
아가씨가 자길 그리 싫어하는 줄 알면 자존심 상해서 그만둘 법도 한데, 이무기는 아가씨를 뭍에 사는 사룡에게 절대로 양보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무기와 사룡은 급기야 결투로 아가씨를 쟁탈하기로 하고 뭍과 섬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다에서 싸우기로 했지요.
결투를 하기로 한 날, 사룡은 배에 타며 아가씨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배에 흰 깃발을 그대로 두리다. 하지만 싸움에서 진다면 깃발이 붉은색으로 변해 있을 것이오."
아가씨는 이제나 저제나 사모하는 사룡이 돌아오기만을 마음 졸이며 기다렸어요.
이윽고 먼바다에서 배 한 척이 보이자, 아가씨는 눈을 가늘게 뜨고 깃발의 색을 확인했어요.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햇볕에 가물가물 나부끼는 깃발이 붉은색이 아니겠어요?
붉은 깃발을 보고 절망에 빠진 아가씨는 그 자리에서 자결을 해버리고 말았답니다.
한편 그 시간 사룡은 배를 육지에 대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배에서 내렸어요. 그런데 함박웃음을 짓고 반겨줘야 할 여인이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사룡은 깃발을 보고서야 그 까닭을 알게 되었어요. 흰색으로 나부껴야 할 깃발이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으니까요. 이무기를 칼로 찔렀을 때 솟구친 피가 깃발을 붉게 적셨던 거예요.
허망하게 죽은 아가씨의 넋을 기리고자 사룡은 아가씨의 시신을 양지바른 언덕 위에 고이 묻어주었고 이듬해 봄, 아가씨의 무덤 위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무가 아름다운 꽃을 피운 채 자라 있었답니다. 시리도록 아픈 붉은 깃발을 원망이라도 하듯 붉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운 배롱나무였어요.
배롱나무에는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룡을 사모했던 남쪽 바닷가 마을 아가씨의 이야기와 매우 흡사한 이야기인데요, 다른 점이 있다면 아가씨가 이무기에게 제물로 바쳐져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는 거지요.
옛날 어느 어촌 마을에 목이 셋 달린 이무기가 살고 있었어요.
이무기는 해마다 처녀를 한 명씩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겠다고 했지요. 마을 사람들은 돌아가며 사랑하는 딸을 한 명씩 바쳤고 이무기를 없애줄 누군가가 나타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답니다.
어느 해에 또다시 처녀를 바칠 때가 다가오자, 힘세고 지략도 뛰어난 장사가 나타나 제물로 바쳐질 처녀 대신 자기가 처녀의 옷을 입고 제단에 앉아 이무기를 없애겠다고 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장사에게 처녀의 옷을 건네주었지요.
처녀의 옷을 입고 제단에 앉은 장사는 이무기가 나타나자 단칼에 이무기의 목 두 개를 베어냈어요. 제물로 바쳐질 뻔했던 처녀는 장사가 돌아오자 기뻐하며 말했지요.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는데 낭군님 덕분에 이렇게 살았습니다.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낭군님을 모시도록 허락해 주셔요."
하지만 힘센 장사는 처녀에게 이무기의 목이 아직 하나 남았다며 나머지 목까지 베고 돌아오면 자신의 색시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지요.
"내가 하나 남은 이무기의 목을 베는데 성공을 하면 흰 깃발을 달고 돌아올 것이오. 하지만 실패하면 붉은 깃발이 나부낄 것이니 그리 아시오."
장사는 그 말을 남겨두고 이무기가 숨어 살고 있는 바다로 배를 타고 떠났답니다.
처녀는 백일 동안 온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껏 기도했어요. 그리고 얼마 후, 멀리서 배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버선발을 한 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로 뛰어갔지요.
아니,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처녀의 기도가 부족했던 걸까요?
배에는 흰 깃발 대신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어요. 처녀는 붉은 깃발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자결을 하고 말았답니다. 장사는 이무기가 칼에 맞아 죽었을 때 피가 솟구쳐서 깃발을 붉게 물들인 걸 미처 보지 못했던 거예요.
이듬해 봄, 애처롭게 목숨을 잃은 처녀의 무덤에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무 한 그루가 붉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며 자라 있었어요. 바로 잡귀를 쫓는다는 그 유명한 백일홍 나무였답니다.
두 이야기가 비슷한 듯 미묘하게 다르기는 하지요? 앞서 소개한 이야기에서 혼기가 찬 규수는 두 신랑감 사이에서 갈등하다 목숨을 잃은 반면, 두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처녀는 자신을 살려준 장사 하나만을 바라보고 백일을 기도했다고 하니, 이야기의 결말은 비슷해도 어쩐지 두 번째 이야기에 마음이 더 끌립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신랑감을 떼어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 뭍에 사는 사룡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자기 때문에 사룡이 목숨을 잃었다는 생각에 상실감이 컸을 규수의 마음도 마음이겠지만,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백 년을 가약하고 그 마음으로 백일 동안 기도를 했을 처녀의 마음은 어땠을지 지금의 감성으로는 쉽게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연모했던 이를 잃었든, 귀한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사모의 정이 생겼으나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처녀처럼 잠시 잠깐 반짝하고 사라진 사랑을 잃었던,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 마음은 피만큼이나 붉은 꽃에 비유될 만큼 시리도록 아픈 것만은 분명한 것 같네요.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그 선명한 색을 내보이며 꿋꿋하게 서 있는 백일홍 나무를 보며 "얼마나 아팠으면 그리 붉은 꽃을 피웠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대나무처럼 줄기에 껍질이 없고 매끈하지만 속이 꽉 차 있는 배롱나무는 옛 선비들에게 '일편단심'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서원이나 사찰, 무덤 주변에 많이 심었다고 하지요. 선비들은 배롱나무 꽃이 백일 동안 피는 것을 보며 공부에 정진했고, 해마다 껍질을 벗어버리는 줄기를 보며 무욕의 정신을 새겼다고 합니다. 사육신 중 한 분인 성삼문은 백일홍 나무를 보며 이런 시 한 수를 읊었다 하지요.
작석일화쇠(昨夕一花衰) 지난 저녁 꽃 한 송이 지고
금조일화개(今朝一花開)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피어
상간일백일(相看一百日) 서로 일백 일을 바라보니
대이호함배(對爾好銜杯) 너를 대하여 좋이 한잔 하리라
한여름의 푸르름 속에서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워내는 배롱나무를 보며 외롭고 긴 학문으로의 길을 위안받 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성삼문이 배롱나무를 보며 기울였을 맑은술 한잔의 향기로움과 그 운치가 시대를 넘어 이 자리까지 전해지는 것 같아 문득 저도 술 한잔 기울이고 싶어 집니다.
배롱나무의 꽃말은 "부귀"와 "떠나간 벗을 그리워하다"입니다.
사대부 집안에서는 부귀를 얻기 위해 배롱나무를 많이 심었고, 정자 앞에는 백일 동안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를 심어 떠나간 벗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요. 절에서도 배롱나무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스님들은 살던 집이나 머물렀던 곳을 떠날 때 간다는 인사도 없이 바랑 하나 걸머지고 홀연히 떠났다고 해요. 남아있는 스님들은 이렇듯 말없이 떠나버린 벗을 생각 하며, 또는 뒤에 남겨두고 온 속세를 떠올리며 하염없이 배롱나무를 쳐다보며 명상에 잠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귀든, 학문으로의 정진이든,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기 위함 이든 배롱나무는 그 아름다운 자태 때문에 과히 여러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명상에 잠기게 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도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를 보며 그리움에 잠겼기에 이런 시를 지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당전일수자미화(堂前一樹紫薇花) 마루 앞에 한 그루 백일홍이 피었는데
적막유광사야가(寂寞幽光似野家) 쓸쓸하고 그윽한 빛 시골집과 흡사하다
반취반영연백일(半悴半榮延百日) 번갈아서 피고 지며 백일을 끌어가는데
백조잉유백채야(百條仍有百杈枒) 백 가닥의 가지마다 백 개 가지 또 뻗었네
또 조선 전기의 뛰어난 학자이자 명신인 신숙주는 불과 열흘을 피어있지 못하는 붉은 꽃을 세상의 부귀영화에 빗대며 백일 동안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의 고고함을 찬양하는 시를 짓기도 했습니다.
백일을 이어가는
어여쁜 꽃송이에
맑은 흥 피어올라
절로 피는 내 얼굴
세상의 영화란 게
열흘도 못 가나니
산중에서 너를 찾아
술잔이나 기울이리.
배롱나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여러 달 자료를 모으고 반려견들과 산책을 다니며 사진을 모았습니다. 아파트 화단의 배롱나무에게 너의 이야기도 써줄게 말하며 꽤 오랫동안 자료를 모았더랬지요. 그 와중에 지난 8월 초입 순천과 여수 일대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순천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순천시에서 계획적으로 식재한 것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순천시 도로변의 가로수가 전부 배롱나무였으니까요. 그때의 놀라움이란.
순천시는 어느 마을 어느 산천을 가나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배롱나무 군락이 꽤 크게 자리를 잡은 산도 있고, 자그마한 마을 초입을 지키기라도 하듯 줄기가 꽤나 굵은 배롱나무도 있습니다. 아쉬운 건 붉은 배롱나무 밖에 없었다는 건데 그 사실 때문에 순천시에서 계획적으로 식재한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온라인 이곳저곳을 뒤져보니 정말로 그렇더군요. 가족들과 하얀 배롱나무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워하며 여행을 다녔습니다. 아무래도 빨간색은 눈이 쉬이 지치곤 하니까요. 여행 2일 차에 들어서니 순천을 물들이고 있는 배롱나무가 시큰둥해진 이유기도 했습니다. 사방 천지가 배롱나무인 순천보다 우리 아파트 화단에 덩그마니 놓여있는 배롱나무가 더 아름답고 여행 마지막 날 들른 송광사의 배롱나무가 더 감동 깊었습니다. 한 서린 규수와 처녀의 넋이 지천을 떠돌아다니는 것보다 내 님을 기다리며 외로이 한 자리에 있는 것이 더 슬프고 아름다워 보여서기 때문일까요?
순천시는 아마도 처녀의 넋을 기리기 위함보다는 학문을 향한 선비의 한결같은 마음과 그리운 벗을 기다리는 이의 마음을 상징하기 위해 배롱나무를 심은 것이겠지요. 분명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송광사에서 만난 보기 드문 보랏빛 배롱나무 사진을 찍다가 그 뒤에 사람들의 소망을 쌓은 돌탑을 보며 살며시 미소 지어 봅니다. 빨간 배롱나무든 하얀 배롱나무든 보랏빛 귀한 배롱나무든, 배롱나무는 자기가 어떤 색을 띠든 상관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듯 어루만지고 명상에 잠겨 세상을 살아 나가게끔 도와주는구나. 한 서린 처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품은 채, 선비들에게 좋은 공부 친구가 되어주고 떠나간 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때로는 부귀영화를 바라는 이들의 마음을 붉은 꽃으로 달래주며 그렇게 그렇게 백일을 꽉꽉 채워 무더운 한여름을 보내는가 봅니다. 더위와 삶에 지친 중생들의 복잡한 마음을 백일 동안 어루만져 주는 배롱나무, 아파트 화단에 덩그마니 서있는 배롱나무가 더더욱 소중해집니다.
ⓒ아프리카와 고양이 글
ⓒ아프리카와 고양이 사진
사진 및 자료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위키백과, 제주일보, 엔케이엔 뉴스,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이명호의 야생화(http://skyspace.pe.kr/)
길손백하님의 블로그 글(https://blog.naver.com/ckcs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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