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장소에서의 나는, 언제나 미지근하다.
매일 반복되는 길, 같은 시간에 켜지는 불빛, 손에 익은 사물들 속에서
나는 어느 순간 나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에 잠긴다.
움직임도, 호흡도, 감정의 결도 똑같아서
마치 오래된 방 안에 고여 있는 공기처럼
내 마음도 조금씩 흐려지는 듯하다.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패턴이 나를 편하게 해 주지만,
그 편안함 속에서 나는 종종 지쳐 있었다.
그런데 낯선 도시의 공기에 발끝을 내디디는 순간,
나의 온도는 달라진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거리,
간판의 글씨조차 낯설고
바람이 스치는 방향조차 새롭게 느껴지는 곳에서
나는 마치 다시 숨을 배우는 사람처럼
내 안의 작은 불씨가 깜빡이며 살아난다.
조심스레 나를 보호하면서도
이 새로운 공간을 즐기려는 마음이
어둡던 마음의 창을 천천히 열어젖힌다.
익숙한 장소에서 나는 나를 잘 돌보지 못했다.
당연해진 것들 속에서 나 자신을 무심히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의 나는 다르다.
두려움마저도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되고,
그 두려움 속에서 나는 나를 더 사랑하려는 마음을 발견한다.
내가 나를 지키려 하고,
나의 호흡을 의식하며,
새로운 풍경 속에서 스스로를 깨우쳐 가는 나를
그제야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가 보다.
그곳에서만 나타나는 ‘다른 나’를
내가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익숙한 일상에서 잊고 살았던 나를
낯선 지도의 한쪽에서 다시 만나기 때문에.
그렇게 부드럽게 살아나는 나를
나는 그리워했고,
그래서 또다시 길 위로 나서는 것이다.
익숙함이 잠재워 버린 나의 온도를
낯섦이 다시 데워 주는 그 순간을
나는 오래도록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