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언어에 귀를 기울일 때

느리게 걷는 마음: 2부 내면의 계절을 돌보다

by 선율

물리적인 통증보다 더 섬세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의 아픔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 더 치명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아 더 오래 남는다. 마음이 지치고 정신이 흐릿해질 때, 나는 내가 나를 온전히 돌볼 수 있는 사람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감정은 흐르고 또 스며든다. 마치 비가 내리듯, 조용히, 그러나 깊이. 누군가의 말 한마디, 관계 속 억압의 무게, 끝나지 않는 책임의 감정들. 그렇게 삶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을 때,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회복을 시도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떠나고, 책을 읽으며 위안을 찾았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은 일시적인 위안이었다. 잠깐 멈춰선 숨, 잠깐 머문 햇살처럼 지나갔다.


그러다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체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땀방울과 숨 가쁜 호흡을 지나면서, 나는 내 마음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유산소 운동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고, 근육 운동으로 몸이 조여들고 풀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내 안에 쌓였던 불편한 감정들이 하나둘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마음에 고여 있던 먼지가 바람에 쓸려가듯. 스트레칭으로 굳은 몸을 천천히 풀어낼 때는, 숨이 다시 고르게 흐르고 내 안의 긴장도 함께 녹아내렸다. 그 순간에는 '버틴다'는 말보다 '살아 있다'는 말이 더 가까이 느껴졌다.


몸은 안다.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내가 왜 우울한지, 내가 왜 자주 분노하는지, 내가 왜 사소한 일에 예민한지를 몸은 알고 있다. 몸은 때때로 통증으로, 때때로 무력감으로, 혹은 이유 없는 피로감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그 언어를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움직임의 언어로. 무거운 아령을 들어 올릴 때마다, 멈췄던 나의 용기들이 다시 살아난다. 뛰는 숨 사이로 주저앉았던 내 정신이 다시 일어난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운동을 일상의 흐름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근육을 쓰며 몸의 힘을 깨우고, 유산소 운동으로 나의 호흡을 정돈하고, 스트레칭으로 굳은 근육과 생각을 천천히 풀어낸다. 이 모든 행위는 단지 몸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을 정돈하고, 내 정신을 지키는 방식이다. 몸을 돌보는 일은 곧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일이다. 내 몸이 건강해야 내 감정도 숨 쉴 수 있고, 내 마음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믿는다.


몸의 언어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지금 너는 행복하니? 무거운 어깨는 그 질문의 표현이고, 굳은 턱은 참고 있는 슬픔이다. 그 물음에 답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먼저 그 언어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나의 여린 영혼을 지켜내기 위해, 나는 내 몸의 말을 더 섬세하게 들어야 한다. 몸은 진심을 감춘 적이 없다. 그것은 언제나 정직하게, 내 안의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운동은 그저 체형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의 리듬을 바꾸고, 감정의 주파수를 다시 조율하는 일이다. 삶의 억압과 구속 속에서 숨이 막힐 때, 몸을 움직이며 다시 호흡을 찾는다. 그렇게 운동을 통해 나는 다시 나를 기억하고, 다시 나를 지키는 사람이 된다. 내 마음과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 그것은 내 몸이 먼저 나를 사랑해준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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