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있는 하루
오늘 뭐 먹지?
우리가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이자, 때론 가장 무거운 고민의 시작이다. 점심 무렵이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이 대화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복잡하게 꼬인다. 간단히 떡볶이를 먹자고 하면 칼로리가 걱정되고, 샐러드를 먹자니 배가 부르지 않을 것 같고, 고기를 먹자면 가격이 신경 쓰이고, 라면은 또 너무 대충인 것 같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늘 뭐 먹지”라는 질문 앞에서 망설이고, 때론 작은 갈등이 싹튼다. 친구끼리, 연인 사이에서, 가족끼리조차 말이다.
무엇을 먹을지는 결국 우리의 기분, 건강, 관계, 지갑 사정까지도 엮여 있는 문제다. 그렇기에 이 질문이 주는 부담은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이 고민의 무게를 조금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질문을 살짝 바꾸는 것이다. “오늘 뭐 먹지?”가 아니라 “오늘 뭐 살까?”로.
무엇을 먹을지를 생각하기보다, 무엇을 살지를 고민해보는 것.
오늘 마트에 간다면 어떤 식재료가 나를 끌까. 싱싱한 오이가 눈에 띈다면, 그 오이 하나로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식탁을 만들 수 있을까. 오이무침으로 상큼하게, 오이냉국으로 시원하게, 샐러드로 간단하게. 이렇게 식재료 하나가 여러 음식으로 변주될 수 있다면, 식사는 더 이상 선택의 부담이 아니라 가능성의 확장이다.
그날의 날씨, 기분, 입맛에 따라 오이가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오늘 꼭 먹고 싶은 음식을 고집하기보다, 오늘 손에 쥐어진 재료로 할 수 있는 것을 탐색하는 일. 그것은 마치 오늘 하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과 닮아 있다.
냉장고 속 식재료를 열어보는 일은 어쩌면 나의 하루를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브로콜리가 있다면 데쳐서 마늘소스를 얹어보거나, 토마토가 있다면 간단한 마리네이드로 상큼함을 더해도 좋겠다. 기준은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내가 지금 손에 쥔 식재료다. 요리를 잘 하지 않아도 괜찮다. 식재료를 대하는 태도만 바꾸어도 우리는 매일의 식탁에서 작지만 확실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오늘은 “뭐 먹지?” 하고 막막해지기보다, “뭐 살까?” 하고 마트의 채소 코너를 천천히 둘러보자.
나물 한 줌, 버섯 한 봉지, 바나나 한 송이. 그 작은 선택이 오늘 하루를 부드럽고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식재료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우리는 비로소 먹는다는 행위의 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건 단지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하루를 정성껏 살아내는 일이라는 것을.
식탁은 그렇게 시작된다.
조금은 다른 질문에서, 조금은 다른 마음가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