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에 아름다움을 놓다

느리게 걷는 마음: 3부 감각을 확장하는 일

by 선율

하루를 살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없이 반복되는 선택과 결정, 사람들과의 조율,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지쳐간다. 그런 하루의 끝에 남는 감정은 종종 고단함, 혹은 이유 모를 불안이다. 하지만 이 고단한 하루에 ‘아름다움’을 하나 놓는다면 어떨까. 그것이 하나의 작은 그릇이라 해도, 한 곡의 노래, 한 송이 꽃이라 해도 말이다. 아름다움은 삶의 모든 무게를 덜어내지는 못하지만, 그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하는 힘은 있다.


아침을 열며 따뜻한 빛이 스며든 창가에 작은 꽃병 하나를 놓아본다. 어제 시장에서 우연히 산 노란 프리지아는 아직 싱그럽고, 그 존재만으로도 공간이 환해진다. 책상 위에 올려진 도자기 그릇은 반질반질 윤이 나고, 반찬 하나 담겨 있을 뿐인데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다르게 느껴진다. 식사를 하며 듣는 음악 한 곡, 오래전에 좋아했던 클래식 재즈의 리듬이 흐르는 사이, 나는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잠시 놓여난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이 사소한 아름다움들이 오늘 하루를 다르게 만든다는 것을.


퇴근길에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노을의 색, 가게 유리창 너머에 진열된 앤틱 찻잔, 편의점에서 고른 알록달록한 캔디 포장지마저도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을 볼 수 있는 나의 ‘눈’과 그것에 잠시 머물 수 있는 ‘마음’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보는 연습을 통해 일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 예술가가 아닌 우리도, 감각적인 안목이 없어도, 마음만 있다면 충분하다.


하루의 마무리도 그렇다. 흔히 우리는 불안과 걱정을 잠자리까지 끌고 간다. 내일의 일, 풀리지 않은 문제들, 마무리 못한 대화들. 하지만 그 자리에 아름다움을 대신 놓을 수 있다면. 좋아하는 향의 디퓨저를 켜고, 촉감 좋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고, 차분한 책 한 권의 문장을 읽는 밤. 스르르 감기는 눈꺼풀 아래, 마음은 서서히 충만함으로 채워진다. 그렇게 하루는 비워지기보다, 풍요롭게 마무리된다.


결국, 우리가 놓는 아름다움은 사물이 아니라 태도일지도 모른다. 조급하지 않으려는 마음, 일상의 작고도 섬세한 것에 귀 기울이는 자세, 나 자신에게 온기를 건네려는 시도. 삶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우리가 평범한 하루에 무엇을 놓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아름다움을 놓을 줄 아는 사람의 하루는 고요하고, 충만하며, 그 자체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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