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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특수교사 정서인 쌤 Apr 08. 2023

요플레와 왕관

선이는 매일 1교시를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면 우유를 가지러 보건실로 간다. 가끔 우유 대신 초콜릿우유가 있을 때도 있고 요플레가 있을 때도 있다. 4월 첫 주 금요일 귀여운 선이가 보건실로 갔는데 보건실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선이 담임이시지요? 선이가 자꾸 선생님 드린다고 하면서 요플레를 가지고 갔어요. 잘 설득해서 하나는 보건실로 보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선이가 교실 문을 열고 요플레를 들고 들어오면서 숟가락 하나와 요플레를 나에게 건네주면서 먹으라고 눈으로 말했다. 

나는 먼저 선이의 마음을 읽어주면서 칭찬해 주었다.

“선이가 선생님을 생각해서 나에게 갖다주고 싶어 하는 마음은 정말 고마워. 그런데 이건 학생들만 먹을 수 있어. 선생님들 거는 없어. 이건 다시 보건실로 갖다 놓아야 해”

수어로 설명을 해 주었더니 수어로 "알았다"라고 표현하고는 교실 문을 나섰다.     

선이는 혼자 공부하는 그것보다 2학년 언니가 와서 함께 수업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날도 3교시에 즐거운 생활(미술) 수업이 있었다. 왕관을 만들기로 했기에 먼저 은미에게 왕관을 주었다. 그리고 여러 왕관을 꺼내어 그중 하나를 선이에게 선택하게 했더니 왕관이 세로로 긴 모양 하나를 골랐다. 순간 옆에 있던 은미가 자기도 선이가 갖고 있는 왕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순간 난감했다. 두 어린이 모두 하나의 왕관을 두고 서로 똑같은 것을 갖고 싶다고 했다. 

“이건 하나밖에 없어. 어떡하지 선이도 은미도 모두 이것을 원하니 어떡하면 좋아? 어떻게 할까?”

나는 말없이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둘 다 마음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언니인 운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네가 언니이니까 양보하면 안 될까? 이거 꼭 갖고 싶어?”

갖고 싶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절대 양보하지 않을 거 같았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식은땀이 다 났다. 똑같은 것을 준비하지 않은 내가 밉기까지 했다. 몇 년 전의 내 모습이었다면 

“할 수 없다. 둘 다 못하겠네. 다른 거 해야겠다”라고 말하면서 아마 왕관이 아닌 다른 것으로 수업을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교직 경력 만 35년이 넘은 내가 이 상황을 과거처럼 대처하기엔 내가 허락되지 않았다. 조금 더 시간을 가지면서 기다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인 선이가 옆에 있는 언니에게

"언니 원하는 거 가져"라고 몸짓으로 표현했다. 자기는 다른 거 하겠다고 했다. 

“선이야, 이거 해도 괜찮아?”

괜찮다고 하면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표정을 보니 선이가 언니에게 좋은 마음으로 양보했음을 알 수 있었다. 갖고 싶었던 왕관을 동생의 양보로 받은 은미는 왕관 위에 네임펜과 유성 매직으로 보석을 예쁘게 그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던 선이가 언니에게 자기 왕관에 보석을 똑같이 그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선이가 저한테 보석을 그려달라고 해요."

"그래? 네가 예쁘게 그려줄래?"

"알았어요"

"선이야, 무슨 색깔로 그려줄까?"

선이는 보라색으로 그려달라고 했다. 은미는 평소에는 선이가 자기를 똑같이 따라 하는 거 싫다고 했다. 그러던 은미가 기분 좋게 동생 왕관에 보석을 예쁘게 그려주었다. 그 모습이 참 예뻤다. 은미는 아마 동생이 자기에게 왕관을 양보해 준 것이 고마웠나보다! 선이는 자기 왕관에 보석을 예쁘게 그려준 언니가 고마운지 언니의 어깨를 한 손으로 다독여주었다. 언니인 은미도 동생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의 얼굴엔 어느새 미소의 꽃이 피어 있었다. 만약에 내가 강제로 언니인 은미에게 양보를 강요하고 그 수업을 진행했더라면 이런 아름다운 모습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모습은 커녕 어린아이에게 상처만 주었을 거다. 순간순간 지혜가 참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 해가 지나면 다시는 주어지지 않는 수업이라 생각하니 아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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