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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일을 벌이고 싶을 때, 주의할 점

by 김희영


일을 좋아하는 워커홀릭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본 느낌일 테다. 일 하기 싫은 게으른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일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거릴 때가 있다. 보통 나는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 그런 느낌이 드는데, 이는 내가 슬럼프를 완전히 이겨냈다는 착각을 들게 만든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은둔형 외톨이나 히키코모리의 습성을 가진 사람들이 본인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일상이 습관화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1차원적인 쾌락에 젖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먹고 싶은 음식을 먹거나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단편적인 쾌락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일을 사랑하던 내가 처음 슬럼프를 겪었을 때, 처음 느낀 두려움도 '단편적인 쾌락에 적응해버리면 어떡하지?'였다. 일과 잠시 멀어져,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하다 보면 다시는 일을 좋아하던 때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열정이 죽은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최근 일생일대의 가장 큰 슬럼프를 경험했다. 극심한 우울증이 동반해, 거의 칩거 수준의 생활을 했다.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고, 그토록 좋아하던 일도 다시 찾지 않게 되었다. 그때 기분을 빌려 써보자면, 마치 '기분에 잠겨 죽을 것'같았다. 밤이면, 삶과 멀어지는 무서운 생각들을 했다. 어떻게 하면 고귀하게 죽을 수 있을지, 심각하게 앉아 고민하기도 했다. 심각한 우울증이 왔을 때, 나는 오히려 미래의 나의 태도에 대해서는 안일하게 생각했다. 지금 당장도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각에 몰두해있는데, 어찌 미래의 게으름에 대해 논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어떻게 우울감을 이겨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예전의 열정적인 내 모습을 완전히 되찾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제 나는 예전의 열정적인 모습으로 영영 되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예전과 비교했을 때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음악도, 성향도, 성격도, 취향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일하는 것을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 일을 하더라도 책임감이 생겼다. 일을 많이 떠안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완벽하게 일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전과 달리 조금 더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있을 바에야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우울감과 슬럼프에 빠져 있었을 때는, 이제 나에게 책과 사람은 무의미했다. 책을 읽는 것이 유쾌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을 만나도 즐겁지 않았다. 언제나 책과 사람은 나에게 긍정적이고 뜨거운 에너지를 주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일까. 벅찬 일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와 나의 온몸을 옥죌 때, 나는 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부단 애를 썼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서부터 멀어져야만 했다. 어떻게 휴식을 취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집에 틀어박혀 주야장천 영상들만 들여다보았다. 좋아하는 콘텐츠나 프로그램도 없었고, 예능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던 나는 아주 오래된 예능을 몇십 번씩 반복해서 보기도 했다. 그마저도 즐겁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영상만 봤는지 모르겠다. 몇 달은 지났을 테다. 계속 한 가지 것만 반복하다 보니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영상 보는 것도 지겨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돈을 쓰는 것도 재밌지가 않고, 영화나 영상을 봐도 지루하기만 했다. 이제 뭐하지?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나는 다시 잊었던 '일'을 떠올렸다.


휴식도 질릴 수가 있다니.

하지만 이것이 슬럼프의 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일을 사랑해서 일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이제 휴식 자체가 나에게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일을 무리해서 하게 된다면 슬럼프는 언제나 찾아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나에게 슬럼프는 내 인생과 함께 하는 존재가 되었다. 우울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늘 파란색의 감정들을 경계해야만 했다.


열정이 죽어 없어지거나
게을러진 게 아니야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 거지
이제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운 거야

20대의 나는 일을 많이 한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다이어리에 빼곡히 차오른 일정을 보면서, 나는 누구보다 알차게 산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주 미련한 일이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많은 일들을 소화하려고 하면서, 결국 제풀이 꺾이고 지쳤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가 벌린 일을 수습하느라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지금은 아주 작은 일을 하더라도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한 가지 일을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일이 끝나면 줄을 그어 성취감을 느꼈다. 희열은 이런 데서 오는 것이었다. 꼼꼼하게 보고 내 마음에 들게 처리했다는 마음. 하나의 일을 끝냄으로써 얻는 쾌감, 말 그대로의 '성취감'. 그러니 일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일 하나를 하더라도 내 마음에 들게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


갑자기 무작정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들뜨지 않는 방법은 바로 일을 무작정 많이 받지 않는 것이다. 우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어떤 일부터 해야 할지 정리하기 시작한다. 나는 언제나 지독한 슬럼프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결국 시작의 첫 단추는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란 없고, 자신이 '신'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신도 아니고, 완벽한 인간도 아니니, 한꺼번에 많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없다고. 욕심을 버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선택과 집중. 일을 시작하기 직전의 마음가짐에 심어둬야 할 마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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