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영 May 04. 2024

반복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수만 가지의 언어로도 형용할 수 없을 테다. 타인에게는 스물네 시간일 뿐인 시간이 나에게는 억겁의 속죄로 켜켜이 쌓여간다. 어느 화려한 봄날에 흩뿌려진 꽃잎들이, 어떤 시간에는 그저 아름다워 보이다가도 또 어떤 시간에는 지저분하게 뒤엉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움이라는 파도가 내게 올 때, 나는 온전히 그 파도를 맞으며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어쩌면 파도가 쓸려나간 간조 때가 되면 숨 막힐 것 같던 시간들도 한 시름 덜게 될지도 몰랐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금세 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그리움을 참지 못해 당신에게 달려갔던 날, 당신은 원망 섞인 목소리로 나를 밀치며 말했다. 왜 다시 왔느냐고, 다시 또 같은 시간을 반복해야 하지 않느냐고. 언제부턴가 우리는 함께 누리는 행복보다, 함께 있어서 괴로운 시간만을 손꼽으며 지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그저 괴로운 순간만 있지는 않았는데, 왜 우리는 늘 행복한 순간에도 괴로운 지옥에 영혼을 내던졌던 걸까.

 사랑에 대해서는 당신도 나도 아는 바가 없었다. 단지 우리는,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속단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대신 지겹게 미워하고 또 갈망했다. 대체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 건지도 알지 못했다. ⎯ 우리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 서로가 서로에게 답하지 못할 물음만을 반복하며, 서로의 어리석은 점에 대해서만 지적했다. 사실은 모두가 엉성하고, 엉망진창으로 망가져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몰라 헤매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점차 빛을 잃었다. 빛이 바래진 관계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심경이 참으로 참담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것도 두려웠다. 빛이 바래진 관계라도 좋았던 걸까. 우리는 악착같이 서로에게 붙어있고 싶으면서도, 또는 손을 놓고 싶기도 했다. 이 가슴 아프도록 지겨운 이별을 얼마나 더 맞이해야 할지 알지 못해서, 지겹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사랑을 주고 또 미워했다.

 참다못해 터져 나온 감정이 흘러넘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졌을 때 겨우 한마디를 뱉었다. 그리움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내뱉지 못했던 지난날의 뜨거운 감정들에 대하여. 말로 풀자면 한도 끝도 없을 말을, 단 한마디에 담아내려니 힘에 부치는, 그러나 더 많은 말을 남길 수도 없는 짧은 시간에 나는 당신 영혼의 옷자락을 붙잡듯 감정 짙게 배인 고백을 뱉었다.

 때로 사랑은 말 한마디로 쥐락펴락 할 수도 있었지만, 그 말 한마디 때문에 모든 걸 잃기도 했다. 어쩌면 수년을 걸쳐 당신에게 걸었을 내 인생의 일부분이, 재건될 수도 있고 또는 무너질 수도 있는, 말 한마디에 최종 결별의 여부가 걸려 있었다. 이대로 괴롭게 사랑을 이어가거나, 또다시 수년을 외로운 폭풍 속에 버려지거나. 누구도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그렇게 엉망진창 망가져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들어 가는 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