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영 Jul 30. 2024

불안정하고 나약한 나의 영혼에게


 올해는 몸도 마음도 가장 많이 아팠던 한 해가 아닌가 싶다. 잦은 몸살로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지난밤 또다시 고열이 오르자, 나는 이 지긋지긋한 병과 헤어지고 싶었다. 사람이 몸이 자주 아플수록, 정신은 어린아이가 놓쳐버린 풍선처럼 높은 하늘 위로 아득히 떠올랐다. 일을 좀 쉬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일을 쉴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를 털어놓으면서도 나는 그들에게 확실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내가 반드시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어쩌면 나 스스로도 찾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잠은 네다섯 시간 자면서도, 이른 새벽이면 운동으로 몸을 혹사하기 바빴다. 퇴근 후면 제2의 인생을 찾아가겠단, 나름 확고한 목표로 평일 업무시간이면 숨 쉴 틈 없이 일했다. 핸드폰을 보며 여유롭게 웃거나, 퇴근 후 사람들과 넉넉히 대화를 나눠본 적이 언젠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지쳐 쓰러질 법도 했다.

 열이 사십 도까지 치솟는데도, 나는 차마 연차를 쓰겠다는 말을 입밖에 꺼낼 수 없었다. 그깟 몸살 즈음이야,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약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았다. 오한이 들어 온몸이 떨리고, 입술이 말라 파르르 떨릴 때 즈음, 나는 겨우 반차를 썼다. 사흘간을 타이레놀을 먹으며 버텼던 터라, 몸은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었고, 나는 진료시간을 기다리며 소파에 쓰러졌다. 진료시간보다 20분 앞당겨, 간호사가 나의 접수를 받아주었다. 나의 멘탈은 그때야 부서졌다. 회사에서는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굴던 내가, 드디어 마침내, 이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는 눈물을 닦으며 접수를 했다. 열을 재던 간호사와 온도를 보던 의사는 놀라 다시금 열을 쟀다. 그들은 나에게 입원을 권유했다. 그러나 나는 다음날 출근이 걱정돼 입원도 하지 않고, 통원치료를 하기로 했다. 링거를 맞으며 겨우 버티며 집에 들어왔다. 온몸이 녹초가 되었다. 제때 약을 먹지 않으면 바로 열이 올랐다. 아주 지독한 몸살이었다.

 2024년 1월부터 7월까지, 나는 거의 로봇처럼 일했다.

 왜 이토록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나는 이것이 계약직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코로나시기 때부터 시작됐던 게 아닐까? 나는 코로나시기 때 난생처음 권고사직을 받았다. 정규직도 잘려나갈 수 있는 세상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능력' 뿐이었다. 이제 나에게 정규직이라는 말은 큰 메리트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계약을 거듭할수록 더 나은 인재가 되어야만 했고, 내가 가진 능력을 계약기간 내에 모두 보여줘야만 했다. 그리고 내가 발휘한 '능력'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결과물, 포트폴리오로 남겨두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나의 경력이 보장되고, 또 다른 곳에 도전해 볼 수 있을 테니까. 그와 동시에, 계약 연장이 되지 않더라도 수입이 보장될 수 있도록 자기계발도 해야만 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허투루 쓰이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항상 무언가를 했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었으므로, 늘 초조하고 조급해했다. 더 많이, 더 열심히, 더 멋진 성과를 내야만 했다. 회사에서도, 내 삶에서도, 그리고 건강에서조차. 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만 했다.

 그래서 내게 지긋지긋한 몸살이 또 한 번 찾아올 때마다 짜증부터 났다.

 '왜 나는 이토록 나약할까, 왜 이리 약해 빠져서 자주 아프기나 할까, 해야 할 것은 많은데, 난 쉴 수 없는데⋯⋯.'

 그러다 불쑥, 언론고시로 고심하던 20대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20대 때의 나도 지금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일 직장생활을 마치고 새벽 3시까지 공부에 몰두했다. 주말에도 오롯이 공부와 면접준비에만 몰두하며 지냈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았다. 나약한 나 자신을 탓하며, 미워하고, 짜증 내며, 울분을 토했다. 그래도 그땐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기분과 스트레스를 대화로 풀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보다 오롯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더 선호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더 깊은 생각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몸이 지치면, 그다음은 마음이 지쳤다. 돌이켜 보면 내가 지치는 순간들은 그랬다. 체력이 꺾여 결국 쓰러지게 되었을 때, 내가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을 때, 고열에 끙끙 앓으며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단지 내가 나약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했다. 그런 생각의 시발점은, 결국 자기혐오로 이어졌다. 난 내가 아플 때 나 자신을 증오했고, 채찍을 들어 더 가학적으로 나 자신을 학대했으며, 그렇게 깊은 우울감에 빠지는 사람이었다. 정말 심하게 몸이 아프고, 정말 깊은 생각에 빠지는 밤이면 나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힘들 거면 왜 살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진지하게 내가 죽은 뒤의 모습을 생각해보곤 했다. 유언도 미리 작성하고, 쓸데없는 기록들은 전부 삭제하고, 가장 예쁠 때 찍어놓은 사진 몇 장만 남겨두고. 언젠가 나는 준비된 죽음을 하리라. 죽음조차 완벽하게,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천천히 나를 가슴에 묻어갈 수 있도록.

 그런 걸 보면 나는 확실히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스스로 혹사시킬 순 없다. 나를 사랑했더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을 테다. 내가 이토록 일에 몰두하는 것도, 끝까지 자기계발을 고집하는 것도, 사람도 만나지 않고 혼자 있으려 하는 것도, 어쩌면 나의 독특한 성향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내가 너무나 나의 삶을 사랑해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렇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나 자신에게 되물어본다. 정말 원하는 대로 살고 있어? 글쎄, 확실히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오늘의 나는, 다가오지도 않는 미래의 내 삶을 위해,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좀 더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현재의 나를 숨 막히게 하고 있다.

 이 사실을, 나는 어쩌다 가끔 기억을 되찾은 사람처럼 깨달았다가, 아주 또 금방 망각해버리고 만다. 오늘,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또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태우는 사람이 될 테지. 그럼 또 언젠가 맞닥뜨리게 될 죽음을 떠올리며, 오늘 같은 생각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참, 한 편으론 다행이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자각하는 시간이 한 번씩은 있다는 점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나 자신을 사랑할 기회를 한 번이라도 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그동안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달려왔는지를, 이런 나약한 내가 어떤 정신으로 버티며 힘겹게 몸을 이끌고 왔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될 테니까. 미련해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싫고 짜증 나도 이게 내 모습이니까. 이런 나라도, 내가 안아줘야지.

 일주일가량 고열에 시달리고 나니, 목에 열꽃이 피었다. 나는 열꽃이 핀 목을 매만지며, 지난 일주일간의 몸살과 생각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항생제인지 졸음인지, 살짝 몽롱한 상태에서 이 일기를 쓴다. 심한 고열도 열이 내렸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열꽃 같은 후유증이 남아 얼마간은 가렵기도 하고, 울긋불긋한 것이 보기에 흉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런 흉터 같은 열꽃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게 마련이다. 오늘 밤의 여러 가지 깊은 사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를 증오하고, 미워했던, 고열 같은 시간들이 식으면, 가려운 열꽃이 피어날수도 있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어색하게 느껴지겠지만, 이 또한 잠잠해지는 열꽃처럼 서서히 사그라들지 않을까. 조급한 마음이 들려는 나에게, 이토록 불안정하고 나약한 나의 영혼에게, 그간 고생한 나 자신을 안아달라고 말해주어야겠다. 조금은 천천히 가도 된다고, 조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눈앞에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춰서 있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 모든 순간들이 다, 괜찮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