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기록해 온 삶, 세상에 미끄러져 나온 나의 단행본들에 대하여
어떤 변화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한 살 먹기 싫어 떡국 담은 그릇을 밀어내는 아이처럼, 지나간 시절과 맞닥뜨릴 내일 사이에서 개탄스러워했다. 나는 무엇이 그토록 싫어 도망치고 후회했을까? 그리고 지금은 왜, 과거에 연연하며 다가올 내일을 또 피하려 드는 걸까. 이제 이런 것들에 무던해질 법도 하건만, 돌이켜보면 나는 실패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벼랑 끝에 매달려있지 않으려고, 죽을힘으로 오늘을 버텨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의 생활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직장과 사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사업이라고 하면 거창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지금 이렇게 글 한 조각, 한 조각 씩 엮어 책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버거워하느냐고? 7년을 출판에 몸 담가 있어 보니, 깨달은 게 있다. 결국 책도 팔려야하는 상품이라는 것을. 책은 출판하면 '끝'이 아니라, 또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시작'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미지의 영역일 수도 있고, 또는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수도 있는 것의 차이는 단순히 '경험'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버겁지 않으냐'라고 물었지만, 그건 그들이 이 경험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물론 모든 일의 시작은 낯설고 어색하다. 그래서 어떤 도전에는 거듭된 실수와 어긋날 선택으로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값졌느냐고 묻는다면, 그날의 실패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있다고 답하련다.
끊임없이 기록해 온 삶, 세상에 미끄러져 나온 나의 단행본들.
나는 오늘날의 나를 대견하게 생각한다. 물론 완벽하게 잘 살아낸 인생은 아니다. 앞으로도 내가 겪어 나가야 할 인생의 수많은 산이 있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서 '삶'이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더러 겪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었다. 나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세상에 또 있었던 것이다.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도전을 했고, 그런 꿈을 꿨고, 또 그만큼 큰 상실감도 느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젊은 날 꿈 많았던 순간이 있었다면, 지금부터 이 말을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타인의 시선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꿈은, 내가 단순히 무언가를 기획하고 사람들을 만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직업은, 그 직업이 가지는 화려함이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다. 현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카메라를 들고 쫓아 다니는 모습에 불과했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PD가 무척이나 되고 싶었다.
그때 당시 이십 대 중반이었던 나는, 힘겹게 이어가던 방송작가 생활을 청산하고 어느 병원 홍보팀에 들어갔다. 그곳은 지역에서 알아주는, 꽤나 큰 강소기업이었다. 나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혼자 해결해서 꿈을 이루고 싶었다. 마침내 방송국 합격 목걸이를 손에 쥐고, 부모님 앞에 자랑스럽게 내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야근은 기본 22시까지, 주말에 툭하면 불러내어 서울출장을 다녔다. 나는 퇴근 이후에 공부를 하다가도, 병원 원장님께 전화가 걸려오면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출근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을 그만두지 못했다. 주변 어른들과 선배들이 "그 정도 직장이면 정규직이고, 퇴직까지도 보장되잖아?" 라며 나를 뜯어말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마음이 확고했다면, 방송국 시험에 붙을 수 있다는 확실한 희망만 있었다면 나는 그 병원을 박차고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 나는, 계속되는 낙방에 나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이직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의 체력을 탓했다. 내가 체력이 없어서 공부를 못했고, 아파서 골골거렸고, 의지가 약해서 떨어진 거라고. 그렇게 나를 끊임없이 증오하며 3년을 버텼다.
그 병원을 그만두던 날, 나는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언론인의 꿈도 접었다. 그때였다. 나의 첫 책이 이 세상 밖으로 미끄러져 나오게 된 순간이. 나는 지독히도 나를 미워하고, 원망했던 순간들을 일기에 적어왔다. 그 일기는, 언론인이 되겠단 꿈과 미련을 접기 위한 수단으로 출판되었다. 당시 내가 병원에서 사보 만드는 일을 독학을 해왔던지라, 지역 인쇄소 사장님과 이것저것 해보며 만들어진 책이었다. 그리고 그 책을 만든 지가 벌써 7년 째에 접어들었다.
이후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며 권고사직을 당하고, 책을 싸들고 전국의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나는 무너져가는 나의 순간들을 적었다.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지난 연애 기억에 대한 순간들도 적었다. 모든 것은 활자로 남아 책에 박혀 있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인생을 한 번 더 꾹 눌러 담은 일.
《그 순간 최선을 다했던 사람은 나였다》와 《단념하듯 무심하게》를 펴낼 때만 해도, 기록에 대해 큰 중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원래 인생이란 저마다 자신의 삶이 특별했다 말할 것이므로. 나 또한,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가 공감으로 닿을 것이라곤 생각했지만, 어쨌든 독자분들에게 나의 이야기란 그저 "타인의 삶"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책을 펴낸다는 것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 모른 채 '그저 기록하면 좋을 일'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최근 나는 《그리움의 경계선》이라는 에세이를 펴내면서부터 이 '기록'이라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20대의 나는, 잔잔하고 처절한 흐름의 연주곡들 들으면 어떤 극한의 상황에 대해 상상하며 금세 글을 쓸 수 있었다. 마치 내가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내 심적인 상황을 극한으로 치닫게 만들고, 그 기분을 글로 썼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그렇게 글을 쓰지 못하게 됐다. 그런, 감정에 휘말리는 상황이라는 걸 도무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소설을 쓸 때도, 장면에 대한 묘사만이 있을 뿐, 감정을 느끼는 것은 오롯이 독자에게 남기게끔 글을 쓰게 되었다. 오히려 작품을 쓰는 데 있어서는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소설을 쓸 때의 고질병이 바로 '너무 감정적'이라는 것이 이유였으니까.
그러나 이것이 왜 내가 '기록'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된 계기가 되었느냐면, 바로 '이제 더는 그 감정을 떠올릴 수 없게 되어서'다. 그때 그 시절의 감정과 생각과 순간들은, 그 시절이 지나면 기억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냥 단순히, 아련한 추억처럼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고 없고의 개념이 아니다. 세대차이라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20대 그 순간에는 죽을 것 같이 힘들었는데, 30대가 되고 나면 '그때 그 일은 할만했어'라고 생각해지게 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무뎌져서, 그때의 힘든 경험이 내 인생에 잔잔히 깔린다는 건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때의 그 생생한 감정과 기분은, 사진처럼 남지 않기 때문에 흐려지고 만다. 내가 점점 연애 감정에 대해 무뎌져가듯 말이다.
반드시 이 세상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하루에 있었던 나의 일상들, 혹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느꼈던 것들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사진과 영상은 현재의 내 모습을 찍어 시각으로 남길 수 있지만,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글만 한 것도 없다. 투박하게 쓴 글이라도 좋다. 표현력은 자주 쓰다 보면 늘어날 것이다. 대단하고 멋진 글을 쓸 필요도 없다. 현재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하면 글로 잘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연습이 좋겠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그렇게 일기가 쌓여간다면, 내 인생을 꾹꾹 눌러 담아 알차게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 테다. 마음 한편에 공허한 기분은, 나의 소중한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채워질 테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wuWrcas8QJ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