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해를 건너

bye 2025

by 김희영


기나긴 항해였다. 어그러지기도 하고, 엎어지기도 하면서 몇 번의 고비를 넘겼는지 모른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몸집이 야윈 나를 집어삼킬 듯, 큰 입을 쩍 벌렸다. 이대론 살 수 없을 것 같아 목숨을 내어놓고 싶은 때도 있었다. 밤마다 울음을 삼키고, 눈물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여덟 해는 나에게 그랬다. 첫 출판을 일구고도 놓지 못했던 글에 대한 열망은, 멍청한 아집인지 단단한 뚝심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로 흘러갔다. 내 마음은 잎이 거의 다 떨어져 나간 성긴 나뭇가지처럼, 강한 바닷바람에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연약했다.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작가에 대한 꿈을, 나는 언제고 내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현실과 이상 앞에 흔들려, 어떤 걸 전제로 둬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온 세월이라고도 할까. 사람들은 내가 끈덕지게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늘 글쓰기를 게을리했다. 불량한 사랑으로 가스라이팅해온 나의 작품들에게 '나쁜 년'이란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현실과 세상에 눈 돌려 불친절한 사랑을 했으니까. 나에게 글이란 늘 그런 존재였다.

그래도 끝내 나는 꾸역꾸역 여덟 해를 넘겼다. 나의 글을 온전히 사랑하기까지 꼬박 8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불성실하게 굴었던 나의 글에게, 책에게, 출판에게, 이제는 나의 진심을 말할 차례다. 이듬해, 현실에서의 직장과 영원한 이별을 할 계획이라고.


나는 단 한 번도 나 자신에게 관대한 적이 없었다. 내가 한 결과물에 대해 채찍질만 가할 줄 알았던 나는, 내가 한 일에 대해 상냥하지 않았다. 더 열심히 해야지, 더 잘해야지, 이 정도론 어림도 없지. 그 가혹한 자기비판으로 멱살을 잡아 이끌어 온 덕에, 내 온몸과 영혼은 늘 만신창이었다. 가학을 견딜 수 없었던 어떤 시절엔, 우울감에 사로잡혀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 해일과 폭풍 같은 시간들을 견디고 나자, 마음은 어느새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그 안정 끝에 비로소 나는, 홀로 설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직장을 병행하며 작가라는 꿈울 꾸었고, 그 꿈은 서서히 주변 독자들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 작은 독립서점에서 강의를 시작하다, 이제는 어느덧 도서관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게 출판에 대해 묻는 사람이 생겨났고, 글쓰기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생겼다. 늘 나 자신에게 '부족한 사람'이라고 채찍질만 가했던 내가, 냉정한 사회에서 악착같이 견뎌야 한다며 아랫입술을 깨물던 내가,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능력을 꺼내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베풀기 위해서는, 늘 내 안에 뜨거운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야만 했다. 나 자신에게조차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어색했던 내가 마음이 가득 부풀어 오르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마침내, 2025년 12월에 이르러서야, 나 자신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쳤다. 돌이켜보니, 잘 산 인생이었구나. 나 허투루 살지 않았구나. 꿈을 놓지 않으려 그동안 참 애썼구나. 가슴에 뜨거운 덩어리가 턱밑까지 울컥 치솟았다.

후회하지 않은 인생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던 하루들이었다. 직장생활과 퇴근 이후의 삶을 병행하면서도, 졸음과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커피를 달고 살면서도, 한 번도 나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온몸이 부서져라 세상에 맞서 왔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직장과 꿈을 병행한 지 여덟 해, 그것은 8년이라는 시간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여덟 해(海)를 마주한 시절이기도 했다. 드넓은 바다에서 덩그러니 홀로 표류하던 수많은 시절들, 나의 불확실한 선택들, 그에 따른 두려움들, 불안들, 고독들. 어디로 튈지 모를 미래에 대한, 감정의 바다들에 집어삼켜지고 숨을 토해내며 바둥거렸던 8년의 시간.


내가 이렇게, 하얗게 부서지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살았구나.

이렇게 화려하게 부서지려고.

반짝이는 윤슬이 되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우려고.


언어로 헤아릴 수 없는 시절의 고통이 그렇게 흘렀다. 지난 시절, 살기 위해 버둥거렸던, 턱밑까지 차올라 여덟 해의 시간 동안 죽고 살기를 반복했던 시절의 나를 추모한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그 시절로 되돌아가도 그토록 열심히 세상과 싸울 자신이 없다고. 그 몇 마디를 뱉으며, 옛 시절에 죽어 없어진 수많은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고생했다고, 정말 잘 살았다고. 그 시절에 대한 영광과 찬사를 보낸다.

이제 나는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비로소 나를 사랑하며, 또 새로운 시절을 살아갈 나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다. 이제는 고통스럽게 날 버리지 않고, 애틋한 마음으로 사랑해주고 싶다. 사려 깊은 마음으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은근한 온도로, 평안한 사랑을 끝없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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