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書鎭)

by 남쪽맑은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과 연결된 사물도 좋아한다. 그중 책갈피가 일반적이다. 종이 책갈피뿐만 아니라 헝겊이나 뜨개질, 또는 금속이나 다양한 재질로 만든 책갈피를 보면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명함이나 쪽지, 전시회 엽서나 카페 로고가 찍힌 티슈 등등 책갈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지천이지만, 어떤 책갈피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된다. 선물 받은 책갈피를 사용하다 보면, 책을 읽다가 호감 가는 문장에서 익숙한 책갈피를 만지작 거리며 천천히 음미하곤 한다. 이처럼, 흔하디 흔한 책갈피가 흔하지 않은 물건이 되는 것은 책이 품고 있는 아우라와 연결된다.

나에게 특별한 책갈피뿐만 아니라 서진이 있다. 서진은 어느 종교 단체의 삼십 년이 된 기념품이다. 땅속 광물의 한 종류인 호박처럼, 사방에서 광복 50주년 기념 문구가 보이도록 투명하고 손바닥 크기의 정사각형 물건이다. 정신과 육체,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신앙의 깊이를 강조하는 물건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이유는 사실, 신앙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유품이기에 소장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던 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삶의 우여곡절을 잘 다듬으며 갖고 있던 사물을 곁에 두는 것도 비슷한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용한 사물에 깃들어 있는 고상한 정신을 공유한다는 특별함 같은 것. 그러다 보니 신에 대한, 타인에 대한, 자신에 대한 믿음은 마음이 아니라 사물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영화「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서 주인공 줄리엣은 작가다. 줄리엣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집에서 가지고 나온 유일한 물건이 있는데, 반원형 투명 유리 속에 발레리나가 보이는 서진이다. 줄리엣이 타자기를 작동할 때마다 팔과 다리를 적당한 각도로 펼친 발레리나는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 타자기 속도에 따라 발레리나의 움직임은 빨라지다 느려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발레리나는 글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되기를 서원하는 무희 같다. 서진은 책을 볼 때 책장이나 종이가 날리지 않도록 눌러주는 역할이지만, 영화에서는 글을 쓰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생명체처럼 보인다. 사물이 지닌 가치에 생명이 움트는 순간이다. 흙으로 만든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숨을 쉬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도둑처럼 찾아오는 사랑과 도둑처럼 도망가는 이별. 영화 등장인물 중, 상실과 분노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상실과 분노를 견뎌내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책이 주는 의미는 깊다. 영국 건지섬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점령당하면서 독일군에게 식량을 빼앗긴다. 독일군은 돼지를 빼앗아 가면서 감자를 심으라고 명령한다. 어느 날, 그들은 몰래 숨겨두었던 돼지 한 마리로 파티한다. 감자 껍질로 만든 파이와 집에서 만든 술로 상실의 두려움과 분노의 불안을 잠재우며 소통한다.

파티를 마무리하고 좋은 기분으로 각자 집에 돌아가던 길에 독일군을 만난다.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건지 감자껍질파이’ 독서 모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임기응변으로 대처한다. 아슬아슬한 위기를 모면하면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탄생한다. 생존하기 위해 북클럽을 시작하지만, 독일군을 지속적으로 속이기 위해서 북클럽은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북클럽은 일상이 된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처럼 상실과 분노는 어떤 이론에서만 생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거부하는 이론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난독증에 걸린 것처럼, 이로운 이론은 읽을 수가 없어서 오는 상실과 분노도 아니다. 조금씩 낡아가는 이론은 새로운 시각에 의해 버려지기도 하지만, 누렇게 바래가는 과정에서 상실과 분노를 희석한다. 뭉텅이로 도려낼 수 없는 이론도 있기 때문이다. 답변을 기다리지 않는 질문이 있는 것처럼, 상실과 분노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원심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돌고 도는 세상 이치와 다를 것이 없다는 이론에 도달하게 되면, 몇백 개의 유익한 이론도 별 소용이 없다. 상실을 납작하게 눌러주는 그 무엇이, 분노를 부드럽게 눌러주는 그 무엇이 그리 대단한 이론에서 생성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작가 줄리엣은 건지섬에 갈 때도 서진을 가지고 간다. 서진은 책을 읽을 때 필요한 물건이지만, 줄리엣에게는 글을 쓸 때도 필요하다. 누군가가 읽을 책을 만들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이 글이기 때문이다. 글을 써야 책이 만들어지고 책을 읽어야 글을 쓸 수 있는 명백한 이론에서 줄리엣에게 꼭 필요한 물건 중 하나가 서진이다. 이 단순한 이론으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책이 세상에 나온다.

글을 쓸 때, 책의 인용 문구가 필요하거나 밑줄 친 문장을 읽고 또 읽기 위해 서진이 필요하다. 다른 책으로 한쪽 페이지를 누르기도 하고, 커피잔을 올려놓기도 하고, 무게를 느낄 만한 물건을 찾아 사용하기도 하지만, 서진만 한 것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과 믿음은 어떤 물건보다 묵직하다. 마치, 손때 묻는 책이 주는 조용하고 깊은 사유 같은.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유품은 종교적 의미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상실과 분노를 적당히 눌러주는 다정한 손길 같다. 더구나 물컹물컹하고 딱딱하고 거칠거칠하고 끈적끈적한 생각을 알맞게 만들어 준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있을 때, 문과 벽 틈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옅은 바람이 빗금 같은 틈으로 들어오는 시간은 성스러운 생각이 무엇인지를 상상하게 한다. 바늘구멍으로 세찬 바람이 불어오듯이, 작은 틈을 통해 벌어지는 상상은 거침없다. 머릿속으로 낱말을 고르고 문장을 만들고 문단을 형성하는 순간이다. 그러다가 너무 싱겁게 문이 벌컥 열리는 순간, 성스러움은 사라지지만, 꼬리를 감추려는 상상력이 한동안 남아 있어 문장 만들기를 그만둘 수 없다. 환한 빛이 온전히 공간을 비출 때도 상상력은 얼마 동안 작동한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 가르랑거리다가 사라진다.

문장은 상실과 분노를 배경으로 탄생한다. 상실과 분노는 사랑과 믿음 이면에 있는 마음이다. 이처럼 문장은 매일 숨 쉬는 것처럼 태어난다. 숨이 상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인 것처럼, 숨을 쉬는 동안은 살아 있는 것이니,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말은 실제로 존재할 수 없다. 문장은 몸으로 쓰지만, 생각을 쓰는 것이기에 햇빛과 공기를 느끼다 보면, 상실과 분노는 잦아든다. 그러다 사랑과 믿음에 대한 풀썩거리는 빛을 만나게 된다.

말이나 행동을 통해 마음을 안다. 말이나 행동을 통해 상처를 입는다. 상처는 아픈 흔적이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인데, 그 상처를 보고 만져 주고 보듬어 주는 것이 소통이다. 책을 잘 읽기 위해 책갈피나 서진이 필요한 것처럼, 삶을 잘 살기 위해 사소하지만 특별히 필요한 것이 있다. 그 무엇이 무엇을 잘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무엇과 연결하고 소통하기 위한 것이리라. 소통을 위해 차고 넘치는 사물이나 행위는 모두 훌륭하다. 그것이 책일 수 있고 감자껍질파이일 수 있고 위스키일 수 있다. 작가 줄리엣에게 서진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일상을 지탱하는데 온몸과 마음을 끌어모아야 하는 현실이지만,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 상실이 불안을 부추기지만, 일상을 지그시 눌러주고 일상이 날아가지 않도록 글을 쓰는 줄리엣 마음을 알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수선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