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출혈(內出血)의 계절

by 남쪽맑은물
식도와 내장 속으로/소리 없이 피 번지는/그윽한 內出血의 4월에//
우리는 다시 본다./어떻게 절망이 희망 속으로 행군해 가는가,/어떻게 슬픔의 이데올리기는 기쁨의 이데올로기와 쾌속으로 만나는가를.//

(최승자 「그날의 함성은 아직도 유효하다」 – 4·19에 부쳐)


신촌에 있던 책방이 Y동네로 이사 왔다는 Y의 이야기를 듣고 Y와 함께 그곳에 갔다. 오래된 건물임을 외벽이 말해준다. 조금씩 파이고 깎인 붉은 벽돌과 닳아서 낡은 문지방과 시간이 축척된 희끗희끗한 유리창. 이렇게 저렇게 치장하지 않은 건물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 책이 수북이 쌓여 있다. 계단에도 책들과 택배 물품이 가득하다. 예닐곱 계단을 내려가니 “나는 시절이야!”라고 외치듯 ‘글벗, 글로써 사귄 벗, 1979’ 간판이 반갑다.

1979년부터 지금까지 책방을 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 환한 눈으로 우리를 반기는 여자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터트리는데 그 소리가 봄날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중국에서 온 사람이라는데, 일부러 이 책방을 찾아왔다는 것. 그러나 그가 찾는 책이 없어서 아쉬워하며 인스타그램에 ‘글벗책방’을 소개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여자은 초면이 아닌 Y에게 말한다. 아직도 정리하는 중이라 책 구경하는 데에 조금 복잡할 거예요. 언제 이 많은 책을 정리할 수 있을지, 시간이 필요하네요. 그러게요.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많이 정리된듯해요. Y는 동의 비슷한 마음을 내비치며 대답한다.

어디선가 나타난 또 한 여자. 아마도 딸인 듯싶은 여자는 우리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손에 가득 담겨 있는 책이 놓일 자리를 찾아 책장 사이로 사라진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남자는 장갑 낀 손으로 책을 정리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같은 공간에서 들리는 말소리나 발걸음에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책에 대한 도저한 생각에 몰입하고 있는 행동으로 보인다. 아마도 부부와 딸이 아닐까, 추측하면서 오랫동안 가업으로 이어오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고.

지하 공간이 엄청 넓다. 건물 바닥 면적인 듯. 중앙 계단을 중심으로 양쪽 지하 공간이 모두 책방이다. 출입문으로 보이는 철문 위에 붙어 있는 플래카드 ‘세상의 모든 책에 길을 묻다’와 계산대 뒤에 걸려 있는 정사각형 인증패‘오래가게’가 이 서점이 지내온 시간을 말한다. 세상 이모저모를 구경한 모든 책은 이곳에 있을 것 같다. 세상이란 길을 잃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길을 잃었을 때 길을 물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고서와 추억이 서려 있는 책과 LP 레코드판 등속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그중에는 내가 버린 책이 있는 것 같고 누군가에 빌려 주고 돌려받지 못한 책도 있을 거로 생각하니 마치 내 시절을 만난 것 같다. 사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이 시원치 않아서 참았던 책이나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누군가가 선물로 준 책들 생각에 아련해진다. 헌책이 모여 글벗 인연이 된 이야기가 책 물결 속에서 찰랑이는 속삭임처럼 들린다.

나는 이 책방이 열린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4·19 혁명이 일어난 그즈음에 태어났고 학생들이 반부정, 반정부에 항쟁한 4·19 혁명을 역사 시간에 배웠다. 대통령은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정말 회오리 같은 12·12 군사반란으로 대통령이 죽었다. 대통령이 바뀐 다음에도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내 시퍼런 청춘은 식도와 내장 속으로 피 냄새가 퍼져갔다. 소리 없이 번지는 피는 제주로 흘렀다. 제주 4·3 사건으로 피바다가 된 문학으로 만났고 진상 규명과 추모와 사과는 피딱지가 되었다.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가던 아이들이 죽었다. 아물지 않은 피딱지가 떨어져 다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내가 태어난 4월 날씨가 어땠는지, 나는 모른다. 딸기를 먹을 수 있는 내 생일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화사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본래의 빛은 희미해졌다. 내가 태어난 4월의 햇살은 따뜻하다고 상상하지만, 내가 사는 4월 햇살은 축축하고 시들시들하다. 색색의 꽃이 예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오고 만개하는 벚꽃 구경으로 부산하지만, 4월의 망자(亡者)들이 꾸던 꿈은 시간에 더껑이로 엉겨 붙어있다. 망자들이 돌아앉아 있어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헤어진 망자들의 축축한 슬픔이 화사한 기쁨으로 피어날까. 슬픔과 기쁨의 이데올로기가 이어질까. 핏덩이로 내가 태어난 4월은 피가 돌고 돌며 흔들리다 내출혈이 일어나는 계절이다.

Y는 글벗책방이 Y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서 오래된 함성을 듣는 것 같다고 말한다. 마치 기억에서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나는 것 같은 신기함이랄까. 갑자기 잠이 쏟아지듯이 식욕이 몰려오는 것처럼 기억이 달려올 때,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역사나 자료를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 모여 있는 징표로 말이다. 세상을 믿지 못하는 사이에 믿을 수밖에 없는 기억이 머무는 기시감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푹 고아져 뿌연 기억만으로 자족하는 느낌을 이 책방에서 느낀다고.

그런데 나는 왜 이 오랜 책방에서 죽은 사람이 생각나는 것일까. 내 가족과 친지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과거의 인물, 예를 들면, 고구려 벽화의 시녀나 반구대 암각화의 어부까지. 마치 무덤에 앉아 세상의 모든 죽음에 대해 넋두리하는 마음이 왜 이곳에서 스멀스멀 생겨난 것일까. 오래된 콘크리트 벽을 가린 책장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얼룩이 망자의 눈물처럼 보였던 것은 무엇일까. 현재나 미래 혹은 내세에 대한 암호였을까. 오래된 책 속에서 암호를 해독할 만한 기척이라도 찾기를 원했던 것일까. 창문 하나 발견하기 어려운 지하 책방에서, 감옥과 같은 희망을 말하기 싫은 내 성정이 토악질한 것일까.

세상이 흘린 피에는 내가 흘린 피도 있다. 피 흘린 과거와 피 흘리는 현재가 삶을 이어간다. 절망이 희망으로 행군하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슬픔을 달랜다. 세상을 다시 보기 위해, 기쁨을 찾는다. 이 세상은 유흥지가 아니며 멋진 사진처럼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새를 동경한다고 새가 될 수 없듯이 희망을 동경한다고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의 끝을 향해 매번 시작하는 출발선은 핏빛으로 붉게 빛난다. 피 흘리며 외치는 일이 피를 흘렸어도 소용없음을, 불가능한 희망이라는 것을 허약하게 외친다.

내가 모르는 것들, 충분히 모르는 것들, 여전히 모르는 것들이 책방에 먼지처럼 오리무중 떠다닌다. 그러다 뒤뚱거리는 먼지를 따라가다 시선이 닿은 책. 최승자 시인의 『기억의 집』(문학과 지성사, 1981). 누렇고 얇은 책을 집어, 책 표지에 있는 먼지를 손바닥으로 닦는다. 귀퉁이가 조금 낡고 구겨진 시집을 펼쳐본다. 오래된 냄새가 기억을 불러온다. 이 책은 이제는 내 것이다. 세상 난간에서 서성이는 나에게 그윽하게 길을 알려 줄 것이다. 시집에 새겨진 시를 읽으면 퐁퐁 뿜어대는 내출혈쯤이야, 금방 멈출 것이다. 쾌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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