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그들

by 남쪽맑은물

갤러리 문은 굳게 잠겨있다. 야심 차게 개인 갤러리를 열었던 젊은 부부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물론 전시회를 알리는 플랑카드나 안내문, 그 어떤 문구도 없다. 혹시 문을 닫은 것일까. 아이와 함께 서울로 떠난 것일까.

제주 저지리에 현대미술관이 생기면서 예술인들로 형성한 전시관과 건축물들 중 제주에 터를 잡은 갤러리 주인을 만났었다. 소장한 작품을 전시하고자 장소가 공간이 되는 과정을 준비한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울렁울렁했다. 현실적으로 결단하기에 주저하는 부분에서 용기를 낸 이야기는 감동이었다. 예를 들면, 자본이나 아이 교육 그리고 텃새 같은 마을 사람과의 관계와 생활비 등.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내는 사람의 오솔길 같은 생각 여정에서 호박을 마차로 바꾸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생각했다. 삶은 온갖 것이 넘쳐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법 같은 순간이 있는 것이라고. 모든 자산에 해당하는 열정을 톡톡 털어 만든 공간에서 그들의 삶을 느꼈다. 복잡한 서울을 떠나 제주도에서 아이를 키우려는 그들의 미래는 매우 단정했다. 그런데 닫혀있는 갤러리 문 옆, 쌓여 있는 우편물들이 매우 쓸쓸한 상상을 하게 한다.

제주도에 가면 자주 가는 곳이 현대미술관이다. 갈 때마다 달라진 거리 풍경에 눈이 바쁘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그렇지 않다. 한산한 분위기가 자연스럽지 않다. 아직 질서를 찾지 못한 정적이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하긴 2월에 누가 그리 제주도 여행을 하겠는가. 그렇다 해도 너무 조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진부한 것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변절한 사랑, 가차 없는 배반, 쓸모의 가치에 의해 버려지는 신념, 명성 뒤에 숨어 있는 음모, 미소가 될 수 없는 침묵, 취향을 내세운 변덕, 꼬리가 잘린 희망, 평온함으로 포장된 무기력.

현대미술관 주변에 있는 음식점은 메뉴와 간판이 바뀌었으며 파스타 집 상호와 주인도 달라졌다. 장사가 안 되었나, 만약 그렇다면 손해는 얼마나 보았을까, 괜찮을까. 괜한 걱정일지도 모를 걱정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얼빠진 모습으로 바보처럼 길을 걷는다. 왠지 허망한 거리를 걷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 기억을 형성한 시간이 사라졌다는 망상 같은 것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마치 공기가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이곳에서 숨 쉬는 것들이 모두 사라진 풍경이다. 그 장소에 그 사람들이 없다는 것, 꼭 특별한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붕괴한 느낌이란 이런 것일까. 기억하고 있는 영상이 너무 빠르게 그것도 감쪽 같이 사라진다는 현실이, 가끔은 기억이 무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라는 것은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의 합집합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몸과 마음이 움직여 경험했던 장소나 사람의 기억은 생동감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여행이다. 다녀왔던 여행지를 생각하면 그 장소의 느낌과 그 장소에서 함께한 사람에 대한 기억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또렷하다. 오히려 개인사에 얽힌 과거보다 생생하다. 다녀왔던 곳을 다시 가게 되는 경우, 여정이 시시한 것이 아니라 더욱 마음이 들뜨곤 한다. 그 이유는 장소와 사람에 대한 기억에 의한 생각 세포들이 날벌레처럼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층층으로 이루어진 기억 이미지가 사라진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이유들이 각양각색이겠지만 여행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매우 적극적인 행위다. 이런 적극적인 생각과 행동이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소극적이거나 관심이 없거나 기억조차 밍근한 일이 지천이다. 그러나 나약한 생각이나 볼품없는 마음이 기운 없는 발걸음을 내딛게 한다. 불안한 마음이나 자유롭지 못한 발걸음이어도 걷다 보면 길바닥에 오묘한 마음과 몸을 풀어놓는다. 어쩌면 삶의 면밀한 부분을 관찰하기에 부족한 것을 알고 떠나지만, 부족하다는 마음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갖게 되는 것이 여행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된다. 신 앞에서도 별 수가 없을 때 떠난다는 어떤 이의 말은 의미가 있다. 서둘러 걷는 나의 일상에서 나의 부재를 느끼거나, 저항할 수 없는 무기 같은 현실 앞에서 초조해하는 나를 만났을 때, 사실, 신은 졸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관계의 깊고 넓은 어떤 의식도 없이 그 한 번의 만남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잠깐이라는 그 시간에 나누는 이야기가 오히려 삶을 편안하게 하는 말이 되고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이건 그냥 좋은 말이 되어 마음에 자리한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여도 지루하지 않고 반면에 새로운 이야기는 귀를 즐겁게 한다. 그 이야기에 살을 붙여 소설 같은 이야기를 상상하는 일은 신의 영역을 벗어난다. 오히려 신화보다 개연성이 있으니 말이다.

다녀왔던 여행지를 다시 갈 때 설레는 마음이 있다. 지난번 이야기에 이어질지 모르는 이야기가 기대되고 그 이야기 속에서 어쩌면 즐거움을 찾으려는 약간의 기대는 씨 뿌리고 거두는 수확만큼 어렵지 않다.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지난번에 눈을 마주쳤던 마음을 들추어내는 일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익명성을 근간으로 하는 이야기의 흐름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간다. 특별할 것도 없는 묽은 이야기가 그리 편할 수가 없다. 유속의 불안을 느끼지 않는 강물 같은 이야기가 종종 그리워 허청허청 길을 떠난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에세이며 그림이며 삶의 철학이며 예술이라는 생각이지만, 빨리 지나가는 광고판처럼 형체 모를 인연이 그리울 때도 허정거리는 걸음으로 길을 떠난다.


다음에 이곳에 온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혹시 갤러리가 문을 열려 있을까. 그곳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까. 아이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부부의 푸슬푸슬한 웃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길 위의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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