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가 하는 말
2024 [똘배문학회] 원고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전 세계인 마음을 뒤흔든 우리 이야기를 쓴 「파친코」 작가, 이민진 글이다. 1910년부터 1987년에 걸쳐 일본에 살았던 평범한 한국인들의 강인한 이야기를 씨름하듯이 읽었다. 그 사이사이, 몽실언니가 생각났다. 한국전쟁을 통해 역사의 징표가 된 몽실언니도 역사가 버린 인물이지만, 상관없이 자기 삶을 살아냈다. 「몽실언니」 작가, 권정생(1937~2007)은 "북한을 공산 괴리 집단으로 표현해야 문학을 할 수 있었던 부끄러운 현실을 동화를 쓰는 한 사람인 나도 가슴 아프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제발 사람답게 살도록 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반공 의식이 반반공 의식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화를 지었다. 그의 많은 작품에서 이념 갈등으로 붙들린 의식이 해방되기를 바라는 진심을 만날 수 있다.
역사가 저버렸지만, 개개인의 삶은 죽지 않고 살아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지성과 감성 그리고 애정으로 삶을 버리지 않고 애를 썼던 인물이 우리 몽실언니다. 놀라운 상황과 어려움을 이겨낸 우리 조상이 몽실언니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권정생의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 권정생은 그의 시에서 애국이라는 낱말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를 역설한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쟁하고 이념이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고 또 가족이 헤어지는 세상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세상이 아니다. 애국자가 된다는 것은 애국자가 아닌 자와 진영으로 나뉜다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다. 이념 대립으로 귀중한 삶이 유폐되는 일이 어찌 당연한 일이겠는가. 과연 애국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애국자가 된단 말인가. 우리는 우리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애국이 아닐까.
절망적인 상황을 모아놓은 보따리일지라도, 그 보따리에 압축된 절망이 가득할지라도 여러 날과 여러 달, 여러 해가 지나면서 그 농도는 옅어진다. 절망에도 평화와 전쟁,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사랑과 미움이 혼재한 가운데 삶을 다독이는 힘이 살아난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혼백을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살아서 사라진 넋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생존하는 묘한 힘은 죽음을 마음에 묻는다. 앞선 세대를 살았던 몽실언니가 읊조리는 주문이 들리는 듯하다. 삶이라는 꾸러미에 압축할 것을 모으는 생의 이면을 직시하는 지금, 몽실언니가 그리운 이유다.
기이하고 기가 막히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이다. 추하고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이기에 되돌릴 수 없는 상태를 만들지 않기 위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자기 안위를 걱정한다. 이타적인 것보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우선한다. 이기적인 생각 뿌리는 타인과의 공존에서 시작한다. 그렇지 않다면, 피와 눈물과 아픔도 모르는 괴물이 될 것이다. 이기심은 이타심과 다르지 않은 동병상련 마음이다. 나를 생각하고 가족을 생각하며 이웃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인간적이란, 역사가 우리를 저버렸지만, 상관하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삶을 살아가는 것. 역사적 재앙에 맞선 개개인 이야기가 역사다. 역사는 무수한 상황에서 경계인으로 살아간 절절한 인생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탄생의 울음이 울부짖음으로 들린다 해도 그 소리는 살아있다는 신호다. 살아야겠기에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 몽실언니다.
날마다 짓뭉개지는 자존이 거리를 헤매고 매 순간 차별하는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생존이 아우성치며 짓눌러오는 삶이라는 중압감으로 방향을 잃어버린 분별이 난무한 세상이지만, 무고한 생명이 얼마나 신성한지를 증명하고 보전하기 위해 많은 이가 무언가를 한다. 악행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기를 공모하며 이런저런 두려운 일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잊을 수 없는 공포는 무수한 강박증으로 평온한 세계를 무너트릴 괴력이 되기도 하지만, 평온한 세계를 무너트릴 수 없는 자존하는 뿌리이기도 하다. 이런 역설이 가능한 세상이 몽실언니가 겪었던 일을 잊을 수 없기에 기억한다. 몽실언니 삶은 고독했지만, 외로울 수는 없다. 삶의 조각상을 어루만지듯, 고독했던 몽실언니 삶을 외로울 수 없는 마음으로 어루만진다.
일본이 전쟁으로 망하고 한국은 해방이 되었지만 아버지를 버리고 엄마, 밀양댁과 도망가던 몽실이. 새아버지 김 씨 억센 손에 떼밀려 다리병신이 된 몽실이. 새어머니 북촌댁 아이, 난남이를 책임져야 했던 몽실이. 죽이고 죽이는 것이 목적인 전쟁에서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할 수 없었던 몽실이. 전쟁에서 돌아온 병든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구걸해야 했던 몽실이. 밀양댁 아이들, 영득이와 영순이 누나가 되고 언니가 된 몽실이. 엄마도 떠나고 새엄마도 떠나고 아버지도 떠나 동생들 보호자가 된 몽실이. 곱사등이 구두 수선장이 아내가 된 몽실이. 기덕이와 기복이 엄마가 된 몽실이.
똘배문학회에서 「몽실언니」 작품 탄생 40주년을 기념한다. 15년 전 ‘어린이도서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권정생 선생님 동화 주인공, 몽실언니를 기념한다. 어린이였던 몽실언니가 어머니가 되면서 동화는 끝난다. 몽실언니가 어머니가 된 후 그다음 이야기를,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되었을 이야기를 듣고자 모인다. 여전히 역사가 돌보지 않은 한 여성 삶을 주목하며 회억한다. 몽실언니를 기념하는 날, 그들은 몽실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누구든지 느낄 수 있는 이야기는 누구일 것 없이 기적 소리처럼 들려오는 한 사람이 외치는 진정성에서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진동하는 삶이기에 귀를 틀어막을 수 없는 말이다. 진정성으로 진동하는 삶은 변기 물 내리는 소리처럼 시시때때로 들려오는 생활음성 되어 귀를 기울이게 한다. 맨 정신이라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듣는다.
몽실언니는 말한다. 절뚝거리는 걸음처럼 뚝 뚝, 끊어지듯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그 말이 제각각 사정으로 들린다. 삶이라는 고갯길을 넘고 넘은 숨소리로 들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떡갈나무잎 속삭임으로 들린다. 발화되지 않은 입속말이 기도처럼 들린다. 기우뚱기우뚱 흔들리는 이야기가 신화처럼 들린다.
오랫동안 잊고 잊어도 삭제할 수 없는 몽실언니가 하는 말. 그것은 암울하고 비극적인 이야기가 따뜻한 온기로 전해지는 몽실이의 신성한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