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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맑은물 Mar 23. 2024

정원

리디아의 정원 (데이비드 스몰 그림, 사라 스튜어트 글 / 시공주니어)

  짐 외삼촌께

  저녁을 다 먹고 나서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우리 집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제가 외삼촌네서 살면 어떻겠냐고 하셨다면서요? 아빠가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이제는 아무도 엄마에게 옷을 지어달라고 하지 않는다는 걸요. 우리 모두 울었어요. 아버지까지도요.

  저는 작아도 힘은 세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거들어 드릴게요. 하지만 할머니는 숙제부터 끝내고 나서 다른 일을 하라고 하셨어요. 할머니가 챙겨주신 꽃씨를 가지고 갑니다. 깜빡깜빡 잠이 올 때마다 저는 꽃 가꾸는 꿈을 꿉니다.

  보고 싶은 엄마, 아빠, 할머니

  가슴이 너무 떨립니다. 이 동네는 집집마다 창 밖에 화분이 있어요. 마치 화분이 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봄이 오기만 기다릴 거예요. 할머니, 앞으로 가 지내며 일할 골목에 빛이 내리비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짐 외삼촌은 잘 웃지 않아요.

  외삼촌에게 아주 긴 시를 지어 드렸어요.  웃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외삼촌은 시를 소리 내어 읽고 나서 셔츠 주머니에 그걸 넣고는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어요.

  엄마, 아빠, 할머니께

  비밀 장소를 발견했어요. 얼마나 멋진 곳인지 상상도 못 하실 거예요. 오티스만 빼고 아무도 모릅니다. 참, 오티스는 빵 가게에서 기르는 고양이예요. 가끔 내 침대 밑에서 자기도 하지요. 사실, 요즘 굉장한 계획을 짜고 있어요. 보내 주신 꽃씨를 심느라 바빠요. 깨진 컵이나 찌그러진 케이크 팬에 꽃씨를 심고 있습니다.

  꽃씨랑 알뿌리에서 싹이 돋았어요. "4월에 단비가 내리면 5월에 꽃이 만발하지"하고 말씀하시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외삼촌은 제가 집에서 온 엄마, 아빠, 할머니 편지를 읽거나, 화분에 꽃씨를 심거나, 학교 가거나, 숙제하거나, 청소하는 건 볼 수 있지만, 비밀 장소에서 일을 꾸미는 건 절대 볼 수 없습니다.

  할머니께

  오늘 외삼촌이 희미하게 웃었어요. 빵을 사러 온  손님들로 가게가 꽉 찼거든요. 음, 꽉 찬 거나 다름없었어요. 꽃이 피고 있어요. 여기저기, 사방 온데에서요. 창 밖 화분에다 무와 양파, 상추를 기르고 있어요. 이웃 사람들이 꽃을 심을 수 있는 그릇을 주었어요. 몇몇 손님들도 자기 집 정원에서 키운 화초를 주셨고요. 이제 사람들은 저를 "리디아 그레이스'라고 부르지 않고 '원예사 아가씨"라고 부른답니다.

  외삼촌에게 비밀 장소를 보여 드릴 준비가 거의 다 되었어요. 아마 외삼촌이 웃으실 거예요.

  보고 싶은 엄마, 아빠, 할머니

  행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는 유난히 이 도시가 아름다워 보여요. 비밀 장소는 언제든지 외삼촌에게 보여 드릴 수 있게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이 독립기념일이어서 정오에는 가게를 닫을 거예요. 엄마, 아빠, 할머니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신 아름다움을 다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벌써 외삼촌 웃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가슴이 너무 쿵쿵거려서 심장 뛰는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릴 것 같아요. 짐 외삼촌은 가게 문에다 "휴업"이라는 팻말을 걸고는 지금까지 제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굉장한 케이크를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꽃으로 뒤덮인 케이크였어요.

  그리고... 그리고 외삼촌이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지요. 아빠가 취직하셨다는 소식이 담긴 편지를.


  저,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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