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곱 살. 손톱 자라듯 미미한 변화는 있지만 치료사 선생님만 알아챌 정도이다.
코로나 19가 심각해지자 유치원이 문을 닫았다. 12월에 시작한 첫째의 겨울방학은 해를 넘어 초여름이 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첫째가 갈 곳이 없다. 유치원만 믿고 있었던 엄마는 바보가 되었다. 눈조차 맞추지 못하는 아이와 집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째가 두 돌이 되면서 유아학습지를 샀었다. 크레파스를 잡게 해 보니 아이가 쥐고 있지를 못했다. 입으로 들어가는 걸 낚아채어 억지로 선을 긋게 하니 아이가 화를 냈다. 나는 아이를 크게 다그쳤다.
이후 첫째는 내가 책상에 앉히려고 하면 도망을 다녔다. 색연필은 흔들고 크레파스는 씹었다. 읽어주면 잘 보던 그림책도 던져버렸다. 힘들게 의자에 앉히면 번개같이 일어나 제 발치만 보며 집 안을 빙빙 돌았다.
쉬지 않고 흔들어대는 그놈의 막대기. 나는 집에 있는 펜과 막대기 모양 장난감을 쓰레기통에 모조리 쓸어 버렸다. 그리고 아이와 마주 앉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서 모범생이었고 직장에서는 일 잘하는 직원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내 의지대로 성과를 낼 수가 없었다. 목표한 바에 데려갈 수 없었다. 나는 실패한 엄마가 되었다.
실패는 우울감과 무력함을 가져왔다. 첫째와 둘이서는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 둘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유치원 등 하원과 치료실 방문 같은 일상조차 마음을 날카롭게 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나 대신 아이의 하루를 채워주던 유치원과 복지관, 치료실이 문을 닫았다. 아이와 나, 둘만 남았다.
집에 갇혀있는 아이는 제 몸만 괴롭힐 뿐 장난감에도 사람에게도 관심이 없다. 어찌할 바를 몰라 제 몸을 쉼 없이 흔들고 벽을 치고 빙빙 돌고. 저녁 즈음이 되면 포기한 듯 방구석에 주저앉아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나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한밤중에 깨어 소리를 지르며 날을 새었다.
일상이 무너져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기가 괴로웠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아이가 참여하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자. 10초만 하자. 첫째와 내가 10초만 견뎌도 성공이다.'
나는 첫째와 마주 보고 앉아 도형 넣기를 시도했다.
“이렇게 넣어보자.”
아이의 눈이 천장으로 멀리 날아간다. 큰 소리로 "여기~" 해도 바로 앞에 놓인 장난감을 바라보지 않는다.
20초가 지났을까? 아이가 앞에 놓인 장난감은 보지도 않고 흔들고 있던 손만 구멍으로 가져다 댄다. 팔랑거리는 손으로 쥐고 있는 딸랑이 도형을 구멍에 맞추려 달그락달그락 애를 쓴다. 마침내 도형이 덜커덕하고 구멍 안으로 떨어졌다.
“잘했어!”
10초만 시도하자고 시작한 첫째와 마주 앉기가 큰 소리 없이 이어져 가고 있었다.그새 거세었던 코로나 19의 확산세가 주춤하더니 치료실이 문을 열고 유치원이 원격수업을 시작했다.
유치원에서 받아온 원격수업 꾸러미를 펼쳐보았다. 사인펜과 클레이다. 펜은 쥐지 못하고 흔들기만 하고 클레이는 바로 입에 들어가는데. 그러나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방구석에 치워 두었던 아이의 책상을 꺼냈다. 이제 여기서 마주 앉자.
첫째는 얇은 사인펜은 쥐기 어려워했다. 뚱뚱한 마카펜이 길쭉한 사인펜보다, 퍽퍽한 마카펜보다 부드럽게 그어지는 파스넷이 첫째가 쥐고 끄적이기에 나았다. 어차피 안 할 거라고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재료들을 경험해보며 첫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루틴이 사라진 데다 외출마저 자유롭지 않았기에 아이의 컨디션이 고르지는 못했다. 각성이 지나치게 높거나 지나치게 낮아서 조절이 안 되니 괴로워했다. 그런데도 마주 앉아 엄마와 놀이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자기 몸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클레이를 던지고 눈물을 글썽이더라도 책상에 앉아 엄마와 눈을 맞추고 칭찬을 듣는 시간을 갖고 싶어 했다. 이런 첫째의 마음이 느껴지니 마주 앉아 놀기를 중단할 수가 없었다.
마주 앉기가 계속되자 첫째의 얼굴에 좋고 싫은 표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가 자신의 얼굴을 살피고 자신의 의사를 파악하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다시 몇 주가 지나자 나를 보고 팔을 벌리며 "으마(엄마)"라고 처음으로 불러주었다.
나는 첫째를 키우는 것이 화분에 커다란 돌을 심어 키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물을 주고 볕을 쬐어주어도 자라지 않는 아이. 이름을 불러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 아이. 잡은 나의 손을 뿌리치고 털어내는 아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아이.
마주 앉기 시작하니 엄마의 따듯한 눈길과 마음을 원하는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이제야 아이가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예뻐서 쓰다듬고 손뼉을 마주치고 꼭 안아주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의 마주 앉기는 10분이 되었다. 이제 첫째는 책상에 앉아 색연필을 쥐어 종이에 끄적이고 클레이를 떼어 굴린다. 여전히 색연필을 흔들고 클레이는 입에 넣기는 하지만. 제자리를 빙빙 돌다가도 엄마의 웃는 눈과 마주치면 부끄러운 듯 환하게 웃는다.
아이가 활짝 피어난다. 두 손에 넘치게 쏟아지는 아이의 열렬한 환영에 얼떨떨하다. 첫째는 마주 볼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겁을 먹고 숨어버린 엄마 때문에 꽃 피우기를 멈추고 기다렸나 보다. 엄마의 오랜 외면을 용서한 아이의 너그러움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이제는 알 것 같다. 우리가마주 앉은 첫날 그 순간, 첫째가 마음으로 이렇게 속삭였다는 것을.
"잘했어! 엄마."
이 글은 서울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 주관한 2020년 생활글&사진 공모전에서 생활글 부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