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 채우는

끝내고 나서야 깨닫는 것

by 나율


연애가 끝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연애는 처음엔 특별하고 마지막 사람일 것만 같은 환상을 심었다.

좋은 사람이었음은 지금도 틀림없기에 연애기간 중 나 역시 좋은 사람이 되려 부단히 도 애를 썼다.

하지만 노력과 애정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그들의 그래프는 그 맘대로 이리 삐죽 저리삐죽댔다.


이 사람이 과연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아냐, 이 사람은 분명 나를 사랑해!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가? 그는 왜 이렇게 변했지?!

나도 변했을 거야, 그만의 탓이 아니야! 내 착각이 분명해 그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어느 날은 그가 변했다 확신하며 그에게 분노했고

어떤 날은 그는 그대로인데 나만 감정 기복이 심한 이상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두어 번의 헤어짐을 반복했던 터라

주변 누구에게도 힘든 상황을 위로받지 못한 채

책이며 글귀며 또는 누군가의 경험담까지 읽어가며 그의 마음이 무엇일까 분석 아닌 분석을 해댔다.

우습기도 하지.


결국 이별을 고하던 날,

이별을 결심한 계기는 너무 단순했다.


그는 내게 위로받지 못하고 , 나는 그에게서 애정을 느낄 수 없다.


그가 나를 정말 사랑했다면 눈빛만으로도 말투만으로도 느껴진다는 숱한 이야기들은 틀림이 없다.

전화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그는 일에 지친 건지 내게 지친 건지 모를 정도였다.

그 순간 단편이 스쳤다.


더 힘든 시기가 온다면 또 나를 이렇게 방치하겠구나.

만일 우리가 결혼이라도 했다면 나는 벗어나기 힘든 상황에서 매일매일을 감정소비를 해가며 버텨야겠구나.


그가 아직은 나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 관계는 이미 뒤틀리고 틀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재목이 아닌 거다.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두 쏟아내었다.

사소했다.

그때그때 말을 꺼냈더라면 싸움이 되지 않았을 사소한 것들이 쏟아졌다.

참으려던 눈물도 함께 쏟아진다.

그럼에도 지친 목소리에서는 더 이상 나를 붙잡지 않는다. 붙잡아주길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악착 같이 쌓던 마음의 담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제는 명확한 답이 내려진 것이었다.


우리는 힘든 순간을 함께 극복할 수 없다는 것.

인생이 항상 순탄치않기에 힘들 때일수록 서로 잡아주고 아껴주어야 하는 날들이 더 많을 텐데

나는 그를 놓았고 그는 나를 잡지 않는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모든 고민들의 결론은 오로지 한 가지에만 도달했다.


나도 그도 이 정도까지 였다는 것.


헤어지고 난 그날 밤 , 오랜만에 잠이 쏟아졌다.

퉁퉁 부은 눈으로 희미하게 핸드폰 불빛을 쏘아보았다.


연애강의였는데 패널이 말했다.

“ 다시 재회한다면 정말 인연이지 않을까요?”

“ 인연이었다면 헤어지지 않았겠죠?”


핸드폰의 화면이 검게 돌아가고 나서 조금 마음이 아팠다.

다른 연애처럼 마냥 밉고 싫지 않아서 슬픔이 더 오래가겠구나 생각하고 나서 그도 힘들까 봐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겐 다시 되뇌었다.

우리는 여기까지인 사람들이었다고.

노력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관계는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