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비를 맞던 그 날
비가 올 때면 가끔 멍하니 선채로 비를 맞고픈 날이 있다.
어릴 적에는 두려울 것이 없어서
한 번쯤은 해봤던 일인데 지금은 그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때만 해도 세상 걱정 없고 단순히 비를 맞고
이후의 개운함이 뒤에 밀려오는 찝찝함보다 좋았다.
참 신기한 일이지.
비 오는 날은 싫어하면서 그렇게 가끔 비를 맞았다는 게.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비가 오면 무작정 나가
가만히 서있는 상상을 하는 이유가.
아무 걱정 없이, 또 더 이상 생각할 필요 없이
가만히 있다 보면 다가오는 개운함이 그리워서.
지금은 걱정거리가 늘어난 만큼 생각도 많아졌다.
당장 비가 와도 쓸려올 미세먼지, 좋지 않은 대기상태,
이후에 걸릴 감기, 빨래까지도.
눈에 걸리는 대부분의 것들이 걱정이고
이어서 생각 늘어만 간다.
나는 항상 그토록 자유를 외치고
그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많은 것들이
나를 거세게 억누르고 있었다는걸
이제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비를 맞고 난뒤의 찝찝함보다
지금의 답답함이 더 싫었을까?
그래서 비를 흠뻑 맞고픈 날이 있다.
비가 오면 한 번쯤.
그때의 개운했던 기억 때문에.
축축하고 찝찝해도
비를 맞으며 멍하니 있던 그때의 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