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살면서 못해봐서 아쉬운 일이 뭐가 있어? 핸드폰에서 눈도 들지 않고 아들이 물었다. 글쎄, 많지. 내가 말했다. 배낭여행. 젊어서 배낭여행을 못 가봤어. 이제라도 가면 되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아들에게 그게 쉽나, 라고 답하지 않았다. 왠지 처량해서. 하지만 아직 파충류같은 아들에게 티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젊을 때 클럽에도 좀 가고 원나잇도 좀 해보고 그랬어야 하는건데, 그건 좀 아쉽지.”
“우리 모친 또 시작이시네. 아빠, 엄마 좀 데리고 가요! ”
“들어봐, 너도 언제 무슨 일이 있을 지 모르잖아? 콘돔 쓰는 거부터 배우자.”
“아빠아! ”
결국 아들이 쇼파에 걸친 엄마 궁둥이를 발로 밀어내며 대화는 강제종료되었다.
이 나이가 되면 살면서 해냈다는 성취감보다 해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더 많다.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것도 아쉽고, 젊어서 운전을 시작하지 못한 것도 속상하다. 운동도 좀 했으면, 더 많은 책을 읽었으면 더 현명한 사람이 됐을까? 아니 조금만 더 일찍 글을 썼으면, 아니아니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
그걸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니. 다른 결정 다른 선택을 떠올릴 때마다 상상하고 후회한 날이 얼마나 많겠니.
어릴 때는 내가 모자라서 아쉬운 일이 많은가 의심했다. 내 성정이 차분하지 못해서, 꾸준하지 못하고 지구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라 간신히 등록한 피아노 학원은 바이엘만 끝내고 그만두었다. 아름다운 곡을 연주할 줄 알았는데 손가락연습부터 해야했다. 꼼짝앉고 자리에 앉아 손가락을 구부려가며 반복해야하는 연습은 지루했고 재미도 없었다. 막내가 다니던 유치원 원장님이 운영하는 주산학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빠르게 기능을 익혀 금방 숙달되는 듯 했지만, 이후에 정교한 계산들을 하기 힘들어했고, 슬금슬금 학원을 빼먹는 날이 늘어가면서 결국 그만두었다. 떠올려볼수록 어떤 일에 끈기있게 매진한 기억보다 내가 먼저 포기한 일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해내지 못한 것을 묻는 아들의 말에 그만둔 일들이 먼저 튀어올랐다. 인내심이 부족해서, 지구력이 없어서 끝까지 가보지 못한 수 많은 일들이.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 사회적인 제약, 제도의 한계같이 분명한 ‘남탓’도 있었다.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했다고 이유는 수십 가지, 핑계도 수십 가지. 내 탓, 네 탓, 세상 탓, 사회 탓, 탓하자면 뭐든 못할까. 그러나 분명한 건 ‘하지 않는다’는 선택은 내가 했다는 것이다. 가지 못한 길, 오르지 못한 산, 떠나지 못한 여행, 갖지 못한 사람도.
지금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14번째 이후로 달리러 나가지 않고 한 계절을 넘겼다. 신발장 구석에서 러닝화가 먼지 쌓인 채 방치중이다. 온라인 100일 글쓰기 인증 모임에 참여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60일을 간신히 채웠다. 고전을 읽고 필사하는 고전필사모임(심지어 유료였다!)에도 들었지만 완독을 못했다. 식단, 금주, 독서……성공하지 못한 일들이 여전히 얼마나 많은지.
해내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 끝난 관계에 대한 후회. 분명 살다보면 누구나 마주치는 감정이고 순간일 거다. 어찌보면 인간의 성숙에 꼭 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 부분까지 다 감당하며 사는거다. 미련 갖지않고, 뒤돌아 보지않고. 뜨거웠던 여름의 추억이 없는 미지근한 인생도 묵묵히 내 앞의 길을 완주해나갈 뿐이다.
“내가 진작 태권도를 배웠어야해, 그게 제일 후회되네. 그랬으면 그냥 발차기로 날려버릴 수 있는건데.”
황당하다는 얼굴로 웃는 아들을 보며 ‘십 년만 젊었어도’라는 말이 얼마나 불행한가 생각했다. 과거에 얽매여 현재에 집중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미련이라면 주저없이 내버려라. 지난 일만 되새기며 주저앉아 있는 사람은 십년 이 아니라 이십년을 되돌아가도 달라질 수 없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태권도를 배우지 못한 어린 날의 분함을 담아 손날로 아들의 발목을 가볍게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