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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에 기대어

by 조안


삼십 대가 되면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안정적인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가끔은 지난 이십 대보다 더 나 자신을 모르겠다. 절제를 추구하며 정적으로 바뀌던 과정에서 무언가를 놓친 걸까.


좋아하는 것들을 유지하려면 생각보다 노력이 필요하다. 가끔 사진을 들여다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노력의 실행은 간단하다. 단순하게 반복하기. 좋아한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 더 좋아하길 바라며.


그저 단순하게 좋아하는 일을 행할수록 행복해진다. 행복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에게 행복은 안온한 삶.

좋아하는 시간으로 가득 차 걱정과 불안을 밀어낼 수 있는 그런 안온함이다. 큰소리로 웃음이 터질 만큼의 즐거움과 벅찬 설렘은 없다. 너무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 조용하고 무탈한 상태.

그런 고요한 속에서 안정을 느낀다.


가끔은 이런 너무 절제된 감정이 재미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알기 전까지 무의식 중에 나와 비슷한 에너지를 모두에게 원했다. 남편이든 친구든 내가 원하는 대화방식이 가능한 사람들. 나 자신을 몰라서 타인을 통해 나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새로운 사람과 가까워지기까지는 일 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도 모르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감추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보여줄 무언가도 없었다.


그 안에는 ‘모두의 환심을 살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 불안은 삼십 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의 인정도 가질 수 없다. 일 년이 한 달이 될 만큼 기하학적인 변화는 아닐지어도 나를 드러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나는 나와 정반대인 사람들과도 어울린다. 다만, 그들을 닮으려 애쓰지는 않는다. 대신 나는 나대로, 서로의 다름을 통해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해본다.

여전히 소란스럽지 않을 만큼 나를 충분히 알고 난 뒤에야 비로소 상대방을 알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다름을 이해하며 관계를 맺는 시간만큼 나를 지키는 시간도 얼마나 소중한지.

아침에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리는 시간,

남편이 좋아하는 저녁메뉴를 요리하는 시간,

가끔은 말없이 고양이 옆에 누워 있는 정적.

별다를 것 없는 그 순간들이 다른 불필요한 감정들을 조용히 지워준다.


남는 시간 동안 책을 고르기만 해도 기분이 나아진다. 한 번에 다섯 권씩 담아두고 정작 읽는 건 늘 다른 책이되더라도 괜찮다.


여전히 무언가를 향해 정확히 닿지 않지만 그걸 향해 손을 뻗는 마음만으로 충분하다.



따뜻한 햇볕 아래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처럼

그저 단순하게, 무탈하게, 행복하기를.


그만큼으로도 충분한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내가 되고 나의 삶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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