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걸 좋아한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보다 조용한 공간에 있을 때 마음이 한결 평온해진다. 그렇다고 늘 조용한 사람은 아니다. 일할 때의 나, 가족 앞에서의 나, 그리고 혼자 있을 때의 나. 그 모든 다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플랫화이트 한 잔이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억지로 밝은 척은 하지 않지만 입꼬리는 슬며시 올린다. 애써 목소리를 높이진 않지만, 살짝 상냥해지는 톤. 낯선 사람과 마주치면 유난히 더 조용해진다. 그 조용함이 불편하지 않아서 괜찮다.
테이블 옆자리에 앉은 남자아이가 트름을 크게 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고 아이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대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이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그런 행동은 아주 무례한 거야.”
다시 책에 집중하려 했지만, 아이는 여섯이나 일곱 살쯤 되어 보였다.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트름을 했고 엄마는 몇 차례 더 단호하게 제지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내 쪽으로 기침을 하자 엄마는 “그건 정말 역겨운 행동이야(yuck)”라며, 입을 가리고 다른 방향으로 기침하라고 가르쳤다.
“쉬잇—” 하는 엄마의 반복되는 목소리와 단호한 눈빛에, 더는 아이에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혼자 차 안에서 읽을 때보다 집중은 잘 안 됐지만 어쩔 수 없다. 책을 펼친 건 형식적인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이런 분위기 속에 앉아 있고 싶었을 뿐이다.
옆 테이블에는 젓가락으로 드럼을 치는 아이와 쉴 새 없이 그를 말리는 엄마. 반대쪽에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 두 분. 앞쪽에는 신문을 읽는 아저씨 한 명.
집에서 고양이와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왁자지껄함과 조용함이 뒤섞인 공간에 있는 것도 좋다. 나는 여전히 조용한 걸 좋아하면서도 종종 소란한 곳에 앉는다. 그래야 오히려 나만의 조용함을 또렷하게 누릴 수 있으니까. 소란한 일상 속에서 다시 조용함을 찾아내는 일, 그게 내가 여기 뉴질랜드에서 익힌 삶의 리듬인가보다.
아침에 창 밖으로 들리는 건 자동차 소리보다 새 소리다.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고 마트 계산대에서도 서로 기다리는 시간이 익숙하다. 그 느린 호흡에 아직도 가끔씩 낯설지만 그런 나와 상관없이 항상 느린 뉴질랜드라 좋다.
어릴 때도 늘 시끄러운 곳보다는 조용한 구석을 좋아했다. 엄마 말로는 너무 조용해서 옆에 있는줄도 몰랐다고 했다. 바깥에 나가 친구들과 놀기보다 혼자 책 읽는 걸 더 좋았던 아이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옆에는 고양이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잔잔히 틀어둔 노래와 열어놓은 창문 넘어 들리는 새소리.
여전히 조용한 게 좋다. 언제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