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치노, 코르네토, 브리오슈, 플럼케익, 비스코티, 크로스타타...
점심이나 저녁은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아침식사만큼은 꼭 하던 대로 해야 하루를 잘 날 수 있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따듯한 밥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시간동안 정석이었을테지만, 요즘은 가볍게 스무디나 요거트 등으로 대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고 간단하게 시리얼을 먹거나 빵과 아이들로 아침을 여는 사람들도 많지요.
서양식 아침식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계란이나 팬케익이 들어가는 대표적인 브런치 메뉴가 그 중 하나일 것이고, 컨티넨탈이니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도 아마 거기에 포함이 되겠지요.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피자와 파스타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 판국에 이탈리아의 아침식사라고 뭐 크게 다르겠어 싶었는데, 처음의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아침은 달아요!
(사진출처)
이탈리아의 아침은 달아요!
독일에서 시작해서 유럽 각지에 퍼져있는 리들Lidl이라는 슈퍼마켓 체인이 있습니다. 비교적 값도 저렴하고, 그만큼 매장도 덜 정리된 모습인 경우가 많지요. 박스에서 꺼내서 진열을 해놓는 게 아니라, 박스를 쌓아놓고 물건 판매를 한다고 하면 어떤 차이인지 와닿을 것 같습니다. 자체 브랜드의 물건으로 쇼핑카트를 채우면 정말 낮은 가격에 장을 볼 수도 있고요.
각설하고, 이탈리아에 지내는 동안 다른 슈퍼마켓에 가려면 20분 이상을 열심히 걸어야 하는 리들 생활권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처음 알게 된 브랜드의 이름이 나스트레체Nastrecce 였어요. 이것도 이탈리아 리들의 저렴한 자체 브랜드인데, 잼 등으로 속을 채운 크로아상이나 작은 타르트,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오예스와 비슷한 여러 가지 제과제빵류가 주를 이루는 브랜드입니다. 항상 리들에 가면 입구에서부터 동선을 따라 똑같은 순서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초콜릿과 캔디류, 차나 아이스티 코너를 지나면 바게트, 치아바타, 크로아상 등 매장에서 오븐에 굽는 빵 종류를 마주하고 이 달디 단 과자류가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달달한 과자류를 간식으로만 먹어왔던지라 이 코너에 있는 것들도 어련히 그런 간식이겠거니 했고, 단 것을 좋아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이 과자들의 값이 초코파이나 오예스의 값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싼 것이기 때문에 하나씩 하나씩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10개씩 들어 있는 한 꾸러미가 1유로에서 1.5유로 남짓 하니 이건 심봤다 였지요. 물론 이 값에 천상의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단 맛에 하나씩 먹을만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 아모르 디 라테Amor di Latte였어요.)
아침마다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아침 댓바람부터 그 과자에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세히 읽어보니 포장에 'colazione'라는 단어가 있는 겁니다. 콜라치오네, 혹은 프리마 콜라치오네는 이탈리아어로 아침식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요. 그러니까 지금 이 말은, 이 모든 단 것들이 아침 식사용이란 말야..? 그리고 나서 페레로 사의 브랜드인 Kinder 제품들로 눈을 돌려보았더니 여긴 아예 Kinder a colazione라고 적혀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단 것들이 아침 식사용이란 말야..?
일을 하다가 알게 된, 밀라노 근처 베르가모라는 도시에서 온 쌍둥이 자매가 있습니다. 그 친구들하고 하루는 저녁을 먹는데, 일본에서 잠시 공부하기도 했고 일본어를 혼자서 공부할 정도로 관심이 있는 친구 바네사가 그러는 겁니다. "일본에서 먹는 거의 모든 음식이 맛있었고 지금도 다시 먹고 싶은데, 도저히 아침밥으로 미소 장국을 먹는 건 상상을 할 수가 없어.."
따듯하고 짠savoury 음식을 아침으로 먹는 것이 신기하고 이상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평소 이 자매를 비롯한 절대 다수 이탈리아인의 아침 식사는 카푸치노(혹은 우유 혹은 핫초코 등) 한 잔에 코르네토 - 생기기는 크로아상처럼 생겼지만 패스츄같지 않다고 할까요? 속에다 과일 잼을 채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 를 먹거나 비스킷을 마실 것에 적셔서 먹는 게 아침 식사이기 때문이지요.
조리가 필요하지 않은 아침 식사는 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토스트+누텔라 이상으로 단 것을 매일같이, 그리고 남녀노소 구분없이 먹는다는 것은 적잖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재밌는 것은 이렇게 아침으로 먹는 단 것baked goods의 종류를 대표하는 몇 가지가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가장 많고 흔한 것은 과일 잼이나 크림으로 속을 채운 코르네토, 끈적한 속을 채운 자그마한 타르트 크로스타타, 버터링같은 맛이 나기도 하는 많은 종류의 비스코티(커피 숍에서 파는, 빵을 바삭하게 한 번 더 구운 길쭉한 비스코티와는 달랐어요), 언뜻 보기에 식빵같지만 지방 함량이 높아서 훨씬 진하고 부드럽고 단 맛이 나는 브리오슈, 물기 없이 바짝 한 번 더 구운 빵인 쯔비박, 즉 러스크 정도가 아마도 대표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거기에 버터나 잼 종류, 헤이즐넛 크림을 같이 먹기도 합니다.
웹에서 검색해서 읽어보고 슈퍼마켓에서 보는 물건들을 보면서 그려왔던 이탈리아의 아침식사를 비로소 제대로 먹었던 것은 여행지의 베드&브렉퍼스트에서였습니다. 첫 번째는 너무나 그리운 포카치아 제노베제의 고향인 제노바에서였지요. 바닷가에 있는 그 B&B는 아기자기하게 꾸며져있는 모습이 정말 예뻤는데, 아침상도 마찬가지였어요. 비스코티 몇 종류와 슈퍼마켓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그 단 것들도 여러 가지 있었고, 요거트와 우유, 쥬스와 과일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부엌으로 나와 자리에 앉자 모카 포트로 만든 커피를 주인 분이 직접 가져다 주시기까지 했습니다. 보통의 가정집에서 이렇게까지 먹지는 않겠지만, 그 정석이 이런 거구나 하고 한 눈에 알 수 있었어요. 이 단 것들을 아침에 어떻게 먹어! 하던 게 겨우 몇 달 전의 일인데, 그 날은 야금야금 앉아서 잘도 먹고 왔습니다.
아침이면 아침이지, 첫 번째 아침이랄 건 또 뭐야?
콜라치오네 혹은 프리마 콜라치오네가 아침 식사라는 뜻이라고 위에서 말씀드렸었지요. 왜 첫 번째 아침이라고도 부르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위키피디아에 검색해보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밀라노와 북부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특히 호텔에서 하루 중 첫 번째 식사를 가리키는 말로 "프리마 콜라치오네"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콜라치오네"라는 단어는 정오에 먹는 식사를 뜻했기 때문이다(그리고 "프란초(점심)"은 저녁식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 a Milano e in parte del Nord Italia per il primo pasto della giornata si usava il termine "prima colazione", specie in ambito alberghiero, perché "colazione" designava il pasto di metà giornata (e "pranzo" la cena).
이렇게 사용했던 연유로 두 가지 용어 모두가 아침 식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영국의 어떤 지방에서는 dinner가 점심, tea가 저녁을 뜻하는 것처럼 같은 언어권 안에서도 밥 때를 가리키는 말이 다를 수 있나 봅니다.
휴무날이나 오전에 시간이 날 때 가끔 시내에 나가서 이렇게 커피 한 잔에 코르네토를 먹기도 했습니다. 이른 시간에 카페에서 이렇게 아침을 먹는 다른 사람들도 많았어요.
요즘 아침으로 밥을 한 술 하거나 두유, 요거트 같은 것을 마시고 나오는데, 이렇게 이탈리아의 아침에 대해서 쓰고 있자니 달달한 게 먹고 싶어지는 오전입니다. 내일 아침에는 어쩌면 모카 포트로 커피를 만들고 데운 우유에 거품을 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