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일기
식당에서 삼겹살을 시작했으면 된장찌개에 밥을 먹어야 마무리 아닌가.
고추장에 들기름만 부어 양푼에 비벼 먹어도 햇반이면 맛있지 않나.
라면에 밥까지 말아먹어야 완벽한 한 끼지.
"엄마. 고기만 주세요." 고3을 이겨내느라 예민해질 때로 예민해져 어느새 내 다리보다 더 가늘어진 아들 동찬이의 단골 주문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요즘 사람들은 밥을 먹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선 나부터도 밥은 살쪄.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으니까.
우리 집도 한 달 쌀 소비는 백미 20kg을 넘기지 못한다. 밥 잘 먹는 동화 오빠는 군대에 있고 더 밥 잘 먹는 나의 절친은 절제 중이며 고기만 달라는 동찬이와 나는 식성이 거의 같다. 거기에 검정쌀이나 현미 또는 콩을 섞어 먹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절친의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복지 정책으로 1년에 4번 쌀을 비롯한 보리나 찹쌀등을 선택해서 수령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우리 집은 현미를 3번, 흰쌀을 1번의 비율로 신청해서 갖고 온다. 그 얼마나 사람 냄새나는 시스템인지.
가족 모두는 아침이든 간식이든 주말 브런치든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주방의 절대 주주인 내가 빵보다는 떡을 떡보다는 밥을 좋아하기 때문이겠다.
남은 가족 3인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주말 아침에는 반드시 집 밥을 먹는다. 솥밥을 앉히고 어제 배송받은 식재료를 간단하게 손질해서 니나 내가 좋아하는 메뉴들을 한 개씩만 채워놓으면 그럴싸한 밥상이 완성된다.
가끔은 반찬이 방해되는 듯 한 그릇 밥요리로 내 치트키를 선보일 때도 있다.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소매물도 다녀왔다. 계획 없이 우연히 들어갔다는 기억의 증거로 당시 나는 맨발에 플랫슈즈였다. 결코 만만하게 볼 산책로는 아니었는지 발가락에 물집 투성이었고 아직도 그 신발은 보기만 해도 발이 아프다. 섬 한 바퀴를 돌고 내려오는 길 마을 어신들은 바다에서 잡은 모든 것들을 말려서 파셨다. 배에서 내리고 섬에 도착한 입구 식당에서 톳 비빔밥이라는 메뉴를 처음 먹어봤다. 바다가 그대로 입안에 들어온 환상적인 맛이었다. 어르신들의 매대에는 톳도 있었다. "불려서 밥을 하면 그렇게 맛나"라는 말씀에 쓸어 담았다. 다시마도 좀 사고.
냉동실에 두고 할머님 레시피대로 불려서 한 번씩 밥을 하는데 그 맛 기가 막히다. 땡초 넣고 만든 양념장은 그저 거들뿐이다. 뭔지 모르게 건강해지는 기분도 들면서 '나 좋은 거 먹었어'가 밥상에서 저절로 나온다.
겨울에는 굴밥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은행과 콩을 넣어 색감을 보태고 식감을 즐긴다.
여행지에서 사 온 식재료 하나가 그때의 추억도 소환하고 부부의 이야깃거리도 만들어주면서 우리의 밥상은 건조하지 않았다.
불린 쌀과 다시마를 솥에 넣어 밥을 짓는다. 뜸 들이기 전에 다시마는 걷어 내고 참기름 둘러 앞뒤 살짝 구운 명란젓을 올린 후에, 지긋이 뚜껑 닫고 기다린다. 명란을 으깨가며 호호 불어 식기에 밥을 담고 고추나 쪽파로 멋스럽게 뿌려준다. 김치도 필요 없다.
다시마에서 우러난 감칠맛은 밥에 이미 배어있고 뜨거운 밥에 온몸 바친 명란젓은 확실하게 자신을 맡겼다. 땡초의 알싸함이 최고의 가치를 발휘한다.
여름이 되면 양가 어머님들의 경쟁은 더더욱 치열해진다. 감자, 옥수수, 마늘, 완두콩 택배 상자는 늘 터져온다.
'이것이 더 좋네. 내 것이 진짜네.' 농사를 짓는 분들도 아니고 지역 농협서 사다가 보내주시는데 홍보대사 활동을 하시나. 왜들 그러시는지 알 수가 없다.
좌우지간 밀려드는 농산물들은 질서 있게 냉동 보관하고 바로 먹을 두 그릇 양만큼만 솥밥을 한다. 옥수수를 털어 옥수수밥도 좋다.
앙증맞게 꽃모양 당근은 완두콩밥에 필수가 돼버렸다. 귀여운 완두콩과 왠지 맞다.
톡톡 터지는 완두콩에서는 고유의 향이 난다. 누군가의 시골집 앞마당에 앉아 있는 착각도 한다.
파프리카와 베이비 당근도 야채밥의 재료가 된다. 콩밥이나 옥수수밥을 뜸 들이는 과정에서 야채를 넣고 명란솥밥과 같은 방법으로 식기에 담는다. 봄이 되면 제 맛 내는 달래는 간장에 들기름과 함께 양념장을 만들고 쓱쓱 비빈다. 바로 무친 봄동 겉절이와 함께 먹으면 우울증 약 따위 이 세상에 없어도 된다. 다만 야채밥은 금세 배가 고파지는데 한 그릇을 다 먹은 후에도 초코파이 정도는 먹어줘야 맞다.
첫 번째 사진. 낯선 쌀자루를 넉살 좋게 설명하자면 절친이 나고 자란 옆 동네의 수확물이다.
가구점을 운영하시는 어머님은 아직도 그 인근에 계시는데,
주인이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단골 정미소. 절친의 학창 시절 친구의 어머님이기도 한 것 같다.
작년 가을 언젠가 그 해의 햅쌀이라며 어머님은 갖고 오셨고 당신의 장남이자 나의 절친 흰머리 소년 자동차 트렁크에 실어주셨다. 그렇게 우리 집 뒷 발코니에 자리 잡자 한 컷 찍어뒀다. 주문하면 배송되는 요즘 쌀과는 포장부터 다른 포대쌀이 너무나 반가워서.
해마다 12월이 되면 그동안 회사에서 받아온 현미가 제법 쌓인다. 동네 떡집으로 현미를 싣고 직접 가는 번거로움까지 감수하고 여러 해 반복하는데 뜨끈뜨끈 모락모락 배달된 현미 가래떡은 구수한 풍미가 은은하게 퍼지면서 누룽지 이상의 간식이 된다. 그 찰나를 포기하는 것은 12월의 크리스마스를 누리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결이다.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이웃과 지인과 나누고 나머지는 차곡차곡 냉동실에 넣어 둔다. 한 두 개씩 오븐에 구워 야식이나 주말에 즐길 수 있다.
국수나 빵을 먹어도 기본적으로 밥이 주식인 내 식성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우수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져 점점 더 진화하는 전기밥솥의 위상은 밥맛의 최고치를 끌어내는데 시간에 쫓기고 손쉬운 레시피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안전하다.
그러나 무슨 고집인지 특별히 맛있지도 않으면서 솥밥을 한다. 전기 코드를 꽂아 빈틈없이 완성되는 그 밥이 나는 왠지 낯설다. 닫은 뚜껑 사이로 풍성하게 뿜는 뜨거운 김으로 겨울에는 온기를 얻고 다른 계절에는 밥의
향미를 누린다. 뜸을 들이는 그 짧은 시간도 설렘이 있고 나무 주걱에 살짝 물을 발라 고슬고슬 식기에 담아내는 과정도 솥이라 더 정겹다.
간장에 비벼 먹는 한 숟가락의 끼니라도 밥을 먹어보자.
밥 먹고 빵 먹고 음료 마시고 과일 먹으니 살이 찌는 것이지 밥만 먹는데 살이 찐다는 건 거짓말이다.
회사가 싫은 날 동료들과 힘든 날 시험이 코 앞인 날 부부가 싸운 날. 그 어떤 날에도 내가 지은 밥이나 우리 집의 엄마 밥을 먹자. 서두르거나 조바심내거나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마법에 걸려 그냥 서서히 차분해진다.
나도 모르게 안정이 된다.
그게 진짜 밥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