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일기
나름 괜찮아.
무려 28cm 라.
퇴근.
약속이나 한 듯 동백과 절친은 지하 주차장에 나란히 주차를 한다.
집으로 걸어오는 잠깐의 실외로 비 온 뒤 풀향을 온전히 맞고 집으로 들어와 미친 듯이 보리와 하나가 된다.
동백은 부엌으로, 절친은 청소기로 기계보다 정확하게 위치한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저녁 루틴이 되어버렸다.
정교하게 칼집 낸 소시지와 냉동실 깊숙이 꽁꽁 얼린 찰옥수수 한 덩어리를 에어프라이어에 넣는 순서로 저녁이 준비된다.
계란 3알을 풀어 소금 한 꼬집에 송송 썬 파를 넣고 고지식하게 중탕으로 익혀 맛을 기다린다.
나는 흑미밥과 맛김치를, 너는 현미밥과 고구마순 김치를 각각 담고 나머지는 동일하게 나눈다.
나름 정갈하고 정성스럽게 색감까지 고려하여 담은 폼이다.
무려 28cm나 되는 덴비 헤리티지 시리즈의 디너 플레이트에는 꽤나 많은 양의 음식들이 담긴다.
평일.
부부가 먹는 저녁 밥상에 뭐 얼마나 대단한 반찬이 차려지겠는가.
큰 접시에 이것저것 모아 담고 접시 하나만 닦자 하는 다짐으로 질서 정연하게 차려낸다.
한 그릇 요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인데
하나는 담았을 때 이쁘고, 다른 하나는 설거지가 적게 나온다는 강점 때문이다.
최근.
반려 식물들 위치를 바꾸면서 6인용 긴 식탁을 부엌에서 거실로 끌어 왔다.
좀 더 가깝게 식물들을 보며 창밖 풍경도 누릴 깜냥이었다.
트레이에 담아 한 번에 세팅하면 크게 번거로운 것도 없다.
덕분에 카페라 여기는 밥상에서 의좋아 보이도록 마주 보고 앉아 이미 귀로 듣거나 눈으로 봤던 텍스트 뉴스들을 tv 화면으로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저녁밥을 집어넣는다.
가열 시간이 길었거나 물의 양이 좀 적어 견고했던 계란찜을 국 삼아 먹고,
뽀드득 찢어지는 후랑크 소시지를 입맛 돋게 음미했다.
한 여름 과일로 천도복숭아는 깔끔하고 담백하면서도 새콤 달콤하다.
재래시장에서 한 보따리 사다 놓은 찰옥수수도 여간 맛있지 않다.
접시를 싹 비운 후에는 청매실을 절임 한 감로매로 디저트까지 해결하고 집밥은 마무리되었다.
하루의 보상으로 저녁만큼은 양껏 맘껏 먹고 싶지만 사정은 늘 녹녹지 않다.
시간에 쫓기고 피곤함에 포기한다.
다만 반찬 용기에 담긴 음식들을 여러 끼니 먹으면서 따로 담지 않고 이침 저침 섞어가며 먹는 식문화는 피하고 싶다.
내가 먹는 내 밥상을 기왕이면 아름답게 가꾸는 일.
나를 돌아보는, 나 자신을 지키는 거룩한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