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행과 나날>에서 발견한 일상 회복하기
적응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다. 학교 입학식날 배정된 반에 처음 들어갔 때나 첫 출근일에 정장을 차려입고 사원증을 발급받은 때는 생생히 기억할 수 있지만, 몇 년이 흐르고 등교 혹은 출근을 반복하던 중 어떤 날을 랜덤으로 찍어서 회고해보라고 하면 쉽지 않다. 권태로움은 본인이 노출된 환경에 익숙해지고 안정되면서 찾아온다. 더 이상 새로운 감각은 없고 떨림도 없다. 낯선 외부의 자극에 내 몸이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느꼈을 살아있다는 감각은 적응과 동시에 소멸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공부나 업무 같은 반복적인 작업을 하며 일상을 보내는 데에는 효율적일 지 몰라도 경험의 밀도는 압축시키고 사람을 둔감하게 만든다. 작가 존 디디온이 말했듯이, “뭐든지 처음 시작을 보는 것은 쉽지만, 끝으로 갈 수록 그렇지 않다”.
최근 개봉한 미야캐 쇼 감독의 <여행과 나날>이라는 작품에서도 이러한 익숙함이 초래하는 허무를 주제로 다룬다. 작품 속 각본가 역할인 ‘이’는 집필 활동을 하던 중 슬럼프에 빠진다. 그는 이러한 상태를 “언어에 갇힌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한국인으로써 일본에 처음 왔을 때 느낀 떨림은 자신의 일상 속의 물건들에 익숙해지고 이들이 논리정연하게 정리된 언어의 상태에 들어가면서 사라졌다고 진단을 내렸다. 나는 ‘이’의 무기력함이 가장 본인에게 안락한 공간과 물건에서 비롯된 다는 점에 깊은 공감을 했다. 이사를 자주 다니고 이 도시와 저 도시를 돌아다니는 삶을 살아왔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시점에서는 내 물건들이 꼴도 보기 싫어지게 된다. 현재의 가구를 다 버리고 흰색 벽지와 최소한의 가구만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몇번 있었다. 나의 공간과 물건에 붙여진 언어는 일상의 질서를 형성하는 역할을 넘어, 사물과 경험의 생생한 개별성을 포획하여 획일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어떤 사물의 특성이 하나의 단어로 규정되는 순간, 나의 나날 또한 균질하고 측정가능한 개념으로 전락해버린다. 이러한 획일화된 경험은 결국 우리의 뇌가 인지적 노력을 최소화하도록 유도하며, 활력을 저하시키는 '환경적 습관화'의 첫걸음이 된다.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고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대한 주관적인 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슬럼프 혹은 무기력증에 빠지면 익숙한 공간과 물건에 시간이 달라붙는 듯 멈춰 있다가 결국에는 손살같이 흘러가버린다고 체감하는 주관적 시간 인지의 왜곡이 일어나게 된다.
정체된 환경이 무기력과 슬럼프를 유발하는 현상은 ‘환경적 습관화’로 설명될 수 있다. 뇌는 꽤 경제적이어서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익숙한 자극에 대해서는 인지적인 노력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뇌가 인지적 활동을 줄이고 최소한의 에너지로 환경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둔감함과 활력의 저하가 발생하며, 이는 슬럼프와 무기력증의 형태로 외현화되는 것이다. 정체된 환경은 반복적인 자극을 제공하고→ 낮은 주의 집중도를 유발하며→ 뇌의 인지적 활동이 감소하고→ 궁극적으로 심리적 활력이 저하되는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뇌의 이러한 효율성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시스템의 활동과도 궤를 같이 한다. 도파민은 새로움(Novelty)을 추구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활성화되는 보상 시스템의 핵심이다. 뇌가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하는 순간, 도파민 시스템은 강한 쾌감과 만족감을 경험하게 한다. 그러나 익숙하고 반복적인 환경은 도파민 보상 시스템의 기능 저하로 이어진다. 새로운 정보가 없을 때 도파민 분비가 줄어들면서, 일상적인 활동 자체에서 오는 쾌감과 만족감이 저해된다. 이는 슬럼프와 무기력증을 심화시는 동시에, 주의 집중도의 저하를 유발하여 시간 인지 속도를 더욱 가속화 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근래 몇년 간 아주 작은 습관의 힘 (Atomic Habits)에 대한 책이 히트였다. 루틴으로 엄청난 성과를 내고 삶이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었고 이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서 통제하고 관리하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규격화되고 재단된 시간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습관은 증오, 경멸, 권태까지도 이겨내는 강력한 힘을 가지지만, 그 힘은 결국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은 습관이 우리의 행동에서 주체적인 '망설임(hesitation)' 을 제거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일상적인 행위를 자동화하고 익숙한 환경 속에서 어떠한 망설임이나 새로운 선택을 하지 않을 때, 시간은 진정한 의미에서 지속되지 못하고 실종된다. 따라서 우리는 하루를 끝내고 "오늘은 언제 흘러갔지?"라는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공간에서의 삶은 베르그손이 경고한 기계적 반복의 극단적인 예로, 물건들이나 환경이 어떠한 변화나 의식적 개입을 요구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시간을 측정할 뿐, 경험을 통해 창조하지 못하게 된다.
글을 쓰는 이에게 슬럼프란 곧 사유와 언어의 틀에 갇히는 고통일 것이다. <여행과 나날>에서는 주인공 각본가 '이'가 외딴 설국 마을로 여행을 떠나는데, 이는 곧 언어를 벗어던지고 모든 감각을 통해 세계와 접촉하려는 주체적인 움직임이다. 이 영화는 일본 고전영화, 특히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미니멀리즘적 문법을 따르면서도 일상에 대한 극도의 감각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슬럼프 극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보슬거리는 눈을 맨손으로 꾹꾹 눌러 모양을 내고, 강가 풍경을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바람에 모자를 쫓아 달려가는 행동,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성긴 안경을 닦아내지도 않고 카레 우동을 호호 불어 먹는 경험은 굳이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가능하다. 이것은 일시적 해방이 아니라 일상적 ‘나날’에서 의도적으로 모든 순간에 생생함과 창조적인 사유를 부여하며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감독은 1:1.37 화면 비율, 인물 중앙 배치, 낮은 카메라로 미세한 움직임을 응시하게 만드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계보를 따라간다. 이처럼 제한 속에서 극도의 미세한 디테일을 포착하듯이 짜여진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던 일상 속에서 리듬을 발견하게 하고, 삶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다.
최근 조희영 영화 감독님의 기억 아카이빙 워크숍을 들으며 나의 일상적 경험을 영화같이 거리를 두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보았다. 늘 보는 장소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거기에 나의 서사를 결합시키고 편집하고 음악을 넣어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버스 안에서 승객이 두고 내린 가방과 노선 안내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승객의 모습을 보고, 현재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은 나의 정신적 상태와 연결하여 시를 쓰고 이를 자막처럼 영상에 입히는 작업을 했다. 슬럼프 극복은 결국 무심했던 '나날'과 익숙했던 '나'를 예술적 거리 두기와 재해석의 윤리를 통해 새롭고 관능적인 탐구의 대상으로 재구성하는 행위와 다름없으며, 이는 곧 베르그손이 말한 주체적인 망설임을 일상 속에서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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