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영 중인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를 즐겨 보고 있다. 시즌 1부터 주목받은 두 심사위원의 심사와 이름난 셰프들의 서사, 그들의 서바이벌 이야기에 빠져 지금까지 나온 7화까지 몰아서 봤다. 특히 손종원, 임성근, 중식마녀, 최강록 셰프 등에 매료되어 그들의 유튜브 영상과 이력을 찾아보며 덕질을 하고 있다. <흑백요리사>는 무명의 흑수저 셰프가 백수저 셰프와 공평한 조건에서 경연하며 언더독의 반란이라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나를 포함한 대중은 오히려 백수저를 더 응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요리 경연을 넘어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공정성과 도덕적 기준에 관한 담론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거대한 사회적 실험장이 되었다.
김학민 PD는 한 인터뷰에서 대중이 백수저들의 유명세와 경력을 그들이 과거에 치열하게 쌓아 올린 노력의 결과로 본다고 말했다. 이는 성과에 비례하여 보상받아야 한다는 비례적 공정의 원칙을 반영한다. 따라서 대중은 백수저들의 우월함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여경래 셰프가 철가방 요리사에게 패했을 때, 후자가 존경의 의미로 큰절을 올린 장면은 높이 평가받았다. 반면 한 흑백 참가자가 백수저 셰프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을 때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백수저의 자격과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공정성의 원칙을 어긴다고 본 것이다.
또한 압도적인 실력의 백수저 대가들에게서 대중은 역설적으로 안도감을 느낀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먼치킨 캐릭터의 탁월함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권위가 정당하게 작동하는 모습을 볼 때, 사회적 질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 것이다. 손종원 셰프가 "쓰리스타에서 일했다고 해서 쓰리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명언을 내비친 후 상대를 이기는 장면에서 환호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권위를 사전에 인정했기 때문이다. 팀전에서 임성근 셰프 같은 이들이 보여준 책임감 있는 리더십과 흔들리지 않는 태도는 권위가 실종된 시대에 갈구하던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며 깊은 위안을 준다.
그렇다면 능력주의에 대한 갈망은 올바른가?
열심히 한 노력이 인정받는 것은 사회가 공정하고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주의를 숭상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가 현대 사회의 새로운 계급제로 변질되었다고 경고한다. 능력주의의 문제는 성공을 오직 개인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로만 보게 되면, 승자는 오만에 빠지고 실패자는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깊은 모멸감을 느낀다는 데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모의 경제력이나 교육 환경 같은 '운'이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은 은폐되고 해결되지 않는다. 셰프들을 존경하지만, 그들이 현재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오직 자신의 노력만으로 도달했다고 보기 어렵다. 유학을 간 셰프는 유학할 자본과 요리에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있었고, 사업이나 방송으로 성공한 셰프는 운을 잘 타고난 이들이다.
팀전 에피소드에서 한 참가자의 리더십에 대해 칭찬과 비난이 엇갈린 것은 의미심장하다. 차이는 다음과 같다: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며, 운의 영향을 인지하는 겸손과 팀원의 기여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가 하는 점이다. 예능을 위해 빌런 역할을 자처한 것이라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능력이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며, 사회적 기여를 평가하는 기준은 더 넓어져야 한다는 성찰과 함께할 때 가능하다. 이러한 성찰이 동반될 때 개인은, 그리고 공동체는 더욱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