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엄마와 둘이 터키 여행을 다녀왔다
결혼 전 엄마와 둘이 터키 여행을 다녀왔다. 미혼의 딸로서는 마지막으로 오붓이 엄마와의 시간을 누려보기 위해서였다. 여행을 준비하고 다녀오고 곱씹는 일련의 과정에서 생전 ‘엄마’라는 단어 뒤에는 붙여보지 않았던 낯선 단어 몇 가지를 떠올렸다. 취향, 하루, 꿈.
여행을 준비하면서 국가를 고르는 것부터 루트, 상세 일정에 이르기까지 뭐하나 어려운(?) 것이 없었다. 가령 이런 식이었다. “엄마, 어디 가고 싶은 데 없어?” “엄만 우리 딸이랑 함께면 어디든 다 좋아.” “엄마, 이거랑 이거 중에 뭐가 더 땡겨?” “엄만 다 좋아.” 취향이 없는 혹은 있어도 쉬이 말하지 못하는 엄마가 늘 답답했다. 엄마가 좋아할만한 선물을 고르는 것도, 엄마가 하고 싶을 만한 일을 찾아 함께 하는 것도 으레 딸들의 몫이었다. 엄마 세대 엄마들은 다 그런 걸까. 형제를 위해, 가족을 위해 희생해버릇한 대가로 엄마는 욕심과 함께 취향을 잃어버린 걸까, 아니 만들 기회조차 없었던 걸까. 취향이라는 게 그렇다. 일종의 버릇이라, 내 맘 가는 대로 안 해 버릇한 이에겐 생기지조차 않는다. 그래서 엄마의 ‘다 좋아’는 나를 아프게 했다.
열흘간의 여행을 마칠 때 즈음 또 하나의 아픈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엄마의 24시간을 온전히 지켜본 적이 없었다. 항상 나는 어딘가를 가고 엄마는 그런 나를, 우리를 기다렸다. 하루 일과를 시시콜콜 궁금해하고 염려하는 쪽은 항상 엄마였지 우리가 아니었다. 딸 셋의 하루가 끝날 때 엄마의 하루가 끝났다. ‘엄마, 우리 내일은 늦잠 자자’가 갱년기로 잠을 설치는 엄마에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매번 끼니마다 약을 챙겨먹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엄마가 얼마나 자주 가족 카톡방을 들여다 보는지, 엄마가 나를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는지, 11시간의 비행과 10시간의 야간버스를 거치고 나서야 알았다. 미처 궁금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시간들이 죄스럽게 다가왔다.
여행에 다녀온 뒤에도 엄마의 마음은 한동안 터키에 머물러 있었다. 가만 있다가도 “터키가 너무 좋았어 진짜” 하시기를 수 차례. “나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어” 말씀하셨다. 마음이 덜컹였다. 낯선 경험, 낯선 설렘이 다시 마음을 간질인 것이리라. 엄마는 마흔에 등단을 했다. 열세 살이던 그땐 ‘늦은’ 나이에 참 대단하시다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와 고작 열 살 차이. 내 나이, 내 서른만 특별했지 엄마의 나이에는 무감각했다. 내 꿈만 중요했지 엄마 혹은 아빠라는 단어는 꿈이라는 뜨거운 단어와는 멀게만 느껴졌다. 엄마에게는 오랜 기간 간직해온 꿈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마흔이. 딸 셋과 씨름하느라 감수성에 젖을 시간을 줄어갔지만서도 항상 가슴 한 켠에는 피우다만 불씨가 살아있었을 것이다.
이후 부족하지만 무던히 엄마의 취향을 찾고, 하루를 알고, 꿈을 응원하고자 했다. "엄마, 다 좋아 말고 하나만 골라봐." "엄마, 오늘 하루는 어땠어?" "엄마, 이 책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 남은 그녀의 삶은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이기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디 다 좋지 말고, 아빠 퇴근, 딸들 전화, 손주들 사진만 기다리지 말고, 예순이 다 돼서까지 가슴이 뛰는 일을 포기하지 말고, 무엇보다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오래오래 행복하자, 우리.
*동아일보 2018.08.08자 게재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63/3/70040100000163/20180808/914170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