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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Kim Aug 10. 2018

엄마의 취향, 하루, 꿈

결혼 전 엄마와 둘이 터키 여행을 다녀왔다

결혼 전 엄마와 둘이 터키 여행을 다녀왔다. 미혼의 딸로서는 마지막으로 오붓이 엄마와의 시간을 누려보기 위해서였다. 여행을 준비하고 다녀오고 곱씹는 일련의 과정에서 생전 ‘엄마’라는 단어 뒤에는 붙여보지 않았던 낯선 단어 몇 가지를 떠올렸다. 취향, 하루, 꿈.


여행을 준비하면서 국가를 고르는 것부터 루트, 상세 일정에 이르기까지 뭐하나 어려운(?) 것이 없었다. 가령 이런 식이었다. “엄마, 어디 가고 싶은 데 없어?” “엄만 우리 딸이랑 함께면 어디든 다 좋아.” “엄마, 이거랑 이거 중에 뭐가 더 땡겨?” “엄만 다 좋아.” 취향이 없는 혹은 있어도 쉬이 말하지 못하는 엄마가 늘 답답했다. 엄마가 좋아할만한 선물을 고르는 것도, 엄마가 하고 싶을 만한 일을 찾아 함께 하는 것도 으레 딸들의 몫이었다. 엄마 세대 엄마들은 다 그런 걸까. 형제를 위해, 가족을 위해 희생해버릇한 대가로 엄마는 욕심과 함께 취향을 잃어버린 걸까, 아니 만들 기회조차 없었던 걸까. 취향이라는 게 그렇다. 일종의 버릇이라, 내 맘 가는 대로 안 해 버릇한 이에겐 생기지조차 않는다. 그래서 엄마의 ‘다 좋아’는 나를 아프게 했다.

  

열흘간의 여행을 마칠 때 즈음 또 하나의 아픈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엄마의 24시간을 온전히 지켜본 적이 없었다. 항상 나는 어딘가를 가고 엄마는 그런 나를, 우리를 기다렸다. 하루 일과를 시시콜콜 궁금해하고 염려하는 쪽은 항상 엄마였지 우리가 아니었다. 딸 셋의 하루가 끝날 때 엄마의 하루가 끝났다. ‘엄마, 우리 내일은 늦잠 자자’가 갱년기로 잠을 설치는 엄마에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매번 끼니마다 약을 챙겨먹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엄마가 얼마나 자주 가족 카톡방을 들여다 보는지, 엄마가 나를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는지, 11시간의 비행과 10시간의 야간버스를 거치고 나서야 알았다. 미처 궁금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시간들이 죄스럽게 다가왔다.


터키 여행 중 엄마와 마주잡은 손. 커플 팔찌


여행에 다녀온 뒤에도 엄마의 마음은 한동안 터키에 머물러 있었다. 가만 있다가도 “터키가 너무 좋았어 진짜” 하시기를 수 차례. “나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어” 말씀하셨다. 마음이 덜컹였다. 낯선 경험, 낯선 설렘이 다시 마음을 간질인 것이리라. 엄마는 마흔에 등단을 했다. 열세 살이던 그땐 ‘늦은’ 나이에 참 대단하시다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와 고작 열 살 차이. 내 나이, 내 서른만 특별했지 엄마의 나이에는 무감각했다. 내 꿈만 중요했지 엄마 혹은 아빠라는 단어는 꿈이라는 뜨거운 단어와는 멀게만 느껴졌다. 엄마에게는 오랜 기간 간직해온 꿈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마흔이. 딸 셋과 씨름하느라 감수성에 젖을 시간을 줄어갔지만서도 항상 가슴 한 켠에는 피우다만 불씨가 살아있었을 것이다.


이후 부족하지만 무던히 엄마의 취향을 찾고, 하루를 알고, 꿈을 응원하고자 했다. "엄마, 다 좋아 말고 하나만 골라봐." "엄마, 오늘 하루는 어땠어?" "엄마, 이 책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 남은 그녀의 삶은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이기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디 다 좋지 말고, 아빠 퇴근, 딸들 전화, 손주들 사진만 기다리지 말고, 예순이 다 돼서까지 가슴이 뛰는 일을 포기하지 말고, 무엇보다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오래오래 행복하자, 우리.




*동아일보 2018.08.08자 게재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63/3/70040100000163/20180808/914170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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