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충동적으로 반차를 냈다
“진짜지? 진짜 낸다?” “콜!” 삶이 무료하던 어느 날, 친구와 나는 충동적으로 다음 날 오후 반차를 신청했다. 고등학교 때 만나 어느덧 아이 엄마가 된 그와의 만남은 언제나 퇴근 후 두 시간 남짓이었다. 덕분에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쌓은 추억이라고는 강남역 언저리의 외식 메뉴들이 전부였다. 여느때처럼 '저녁 7시 강남역'을 약속하고 ‘내일 보자’ 메시지를 남기려던 찰나, 묘한 치기가 일었다. “반차 낼까?” 예측 가능한 일상을 비집고 나온 충동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반나절짜리 ‘델마와 루이스’가 되었다.
막상 반차를 내고 나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가끔은 미리 계획된 사나흘의 휴가보다 즉흥적인 반나절의 휴가가 더 설렐 수 있음을 새삼 되새겼다. 놀이동산에 갈까? 평일 낮의 카페? 그냥 그 시간엔 좋아하는 친구와 회사 밖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지만 무언가 특별한 ‘짓’을 하고 싶었다. 진짜 델마와 루이스처럼 멋지게 떠나고도 싶었지만 시간도 차도 없기에 아쉬운대로 남산으로 향했다. 케이블카 대신 두 발로 걸어 전망대에 도착한 우리는 낮맥(낮에 마시는 맥주)을 즐기며 눈물이 날 때까지 웃었다.
대학생 땐 ‘자체 휴강’이라는 비공식 제도(?)가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어느 날 덜컥 수업을 다 빠지고 뒹굴거리며 만화책을 보거나 어디로든 훌쩍 떠나는 것. 고등학생 땐 석식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면 종종 몰래 근처 분식집을 찾았다. 물론 그김에 아주 가끔은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기도 했다. 소소한 일탈이 있었고, 그랬기에 낭만도 있었다. 그리고 그땐 언제든 기꺼이 공범이 되어줄 친구들도 있었다. 무수한 각자의 사정을 품은 지금은 약속이 없으면 퇴근 길 소주 한 잔 함께할 이를 찾기도 망설여진다.
퇴근과 주말을 기다리는 쳇바퀴 같은 일상, 마땅히 이성적이어야 할 하고많은 이유들. 매일 매일의 책임과 의무에 충실하면서 어른이 되는 만큼 일탈과 멀어졌다. 삶이 안전해지는 만큼 오늘은 지루해졌다. 숱한 해야 할 것들 속에서 하고 싶은 일, 그것도 순전히 (장래가 아닌) 지금 (가족이 아닌) 나의 (발전이 아닌) 기분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철이 없거나 이기적인 것이었다. ‘일탈’ 보다는 ‘일상’이, ‘즉흥’ 보다는 ‘계획’이 조금 더 어른의 단어에 가까웠다.
하지만 가끔은 순간 순간의 욕구 앞에서 무력해 지는 것도 꽤 괜찮은 삶의 지혜가 아닐까. 출근을 해야 해서, 너무 일러서, 너무 늦어서와 같은 계산 대신 이따금 철모르는 낭만주의자가 되어보는 것. 간헐적인 즉흥은 삶을 기대하게 한다. 하고 싶은 것들을 상상하고 나열하게 하고, 의외성을 부여해 뻣뻣한 일상을 기름칠 한다. 돌이켜보면 적당한 무모함은 아직은 뜨겁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내일 바다 어때?” 정도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굳이 거창할 필요도 없다. 생전 사지 않던 스타일의 옷을 사보는 것도, 걷지 않던 길을 걸어보는 것도, 고작 수요일의 늦은 밤 홀로 곱창에 소주 한 잔을 하러 나서는 것도 좋겠다. 그도 아니면 지금 문득 떠오르는 친구에게 전화해 묻는 것은 어떨까. “오늘 뭐해?” 어쩌면 아주 오래 전 잊었던 그 말 말이다.
*동아일보 2019.03.20자 게재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63/3/70040100000163/20190320/946397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