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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Kim Jul 14. 2020

힙하지 않아도 괜찮아

트렌드 소외가 곧 게으름의 징표가 된 시대

왜 그거 있잖아요, 요즘 유행하는.


달에 한 번씩 참여하는 마케팅 독서모임에 가면 토론임에도 입보다 손이 더 바쁘다. ‘왜 나만 모르지?’ 요즘 핫하다는 브랜드, 인플루언서, 유행어가 노트 한바닥을 가득 채운다. 그뿐인가. 업이 업인지라, 매년 하반기에는 20대 트렌드를 주제로 하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책상 위에는 Z세대 리포트 같은 류의 책들이 잔뜩 쌓여있다. 어리지만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 서른둘. 어느덧 띠동갑이 성인이 되고 점점 ‘공부’하지 않으면 트렌드 따라잡기가 버거워지는, 트렌드 변화보다 부동산 정책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번 생이 처음이듯 이 나이도 처음이라, 문득 모두가 으레 거쳐가는 감정인 걸까 궁금해진다. 내가 하는 것이 곧 '요즈음의 것'이던 20대 초반. 각종 리포트가 뭐라 해석하건 오늘 나의 하루가 실체이고 정답이던 때, 숨만 쉬어도 트렌드의 중심이던 그땐 트렌드 채집을 위해 별도로 에너지를 할애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 정도 변두리로 밀려난 지금, 이 소외감이 낯설다 못해 조금은 멋쩍기까지 하다. 이렇게 조금씩 사회라는 스테이지에서 주인공 역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겠구나, 고작 30대 초반에도 이러면 후에는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니 씁쓸함이 인다.


트렌드, 영감 포화의 시대이다. 굳이 직접 발품을 팔지 않더라도 인사이트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창구는 넘쳐난다. 나만 해도 팔로우한 계정과 구독하는 콘텐츠만 수십, 어쩌면 수백 개. 어쩜 다들 그리도 부지런한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열심히 기록하고 공유한다. 그리고 그 양질의 콘텐츠를 이용하는 대가는 ‘구독’과 ‘좋아요’면 족하다. 접근이 쉬운 만큼 혹시나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만만치 않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수집이 가능하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트렌드 소외가 곧 게으름의 징표가 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타이핑보다 손글씨를 좋아하고, 유튜브보다 종이책을 좋아한다. ‘O리단길’의 힙한 카페도 좋지만, 칠이 벗겨진 노포에서의 소주 한 잔을 더 좋아한다. 트렌디한 것도 좋지만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는 것들에게 어쩐지 더 정감이 간다.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하면, 누구보다 세상의 변화에 민감해야 하는 마케터로서의 직무유기일까. '라떼'를 파는 고루한 세대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 세상의 중심 물결로부터 멀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익숙한 세계 안에서만 게으를지언정 안락하게 머물고 싶은 마음이 어지러이 공존한다.


굳이 답을 찾자면 '균형'이겠지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깟거 모르면 어때' 싶다가도 재미로 본 '신조어고사' 낙제점에 '옛날 사람'임을 자각하며 시무룩해 지고야 마는 것이 현실이니까. 그저 때때로 쏟아지는 트렌디함에 지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힙하지 않아도 괜찮아.’ 사회라는 스테이지 위, 트렌드라는 줄거리에서의 주인공은 못 되더라도 우리, 각자가 그린 줄거리에서만큼은 언제든 주인공일 수 있을테니. 다만 내가 오늘 할 일은, 내 몫의 줄거리를 성실하고 '줏대있게' 써나가는 것이 아닐까.




*동아일보 2020.07.14자 게재글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00714/101952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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