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스몰 토크

by 고미숙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친한 친구 몇몇에게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갑자기 보낸 브런치 글에 지인들이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이런 취미(?)가 있는지 몰랐다."

"왜 글을 쓰는 거냐?"

"놀랍다!"


등등 갑작스러운 나의 돌발행동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해 주시기도 하고 화이팅하며 격려도 해 주셨다.


브런치 작가 지망생들에게 브런치 합격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잘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이고, 브런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브런치 합격은 나에게 대학 합격 이상의 의미다.

게다가 보기 좋게 낙방한 이력도 있겠다 또 떨어진다 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면 언젠가는 붙는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네 하던 중 받았으니...


"작가라니!"

"내가?"

"드디어?"


유통기한이 끝나가는 혹은 끝나 버린 냉장고 음식.

찍기만 하고 정리 못한 사진..

써야 할 보고서...


글을 쓰기로 한 것은 이런 것들을 정리하는 것과 같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들만 잔뜩 쌓아두고 꺼낼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던 것을 꺼내어 정리하기로 한 것..

정리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다 어느 날 결국 찜찜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 같은 그런 기분도 들었고..

그건 내가 어떤 껍데기를 가지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저런...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네.'


비록 무엇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일단 해보자. 어차피 대단한 글쓰기 솜씨가 있는 것도 아니니.


사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해 왔지만, 감히 시도조차 해 보지 못했고 나는 그럴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서 나도 회사 다니는 동안 책 한 권 써볼까라는 책을 마주쳤는데..

"뭐야, 다른 사람들은 직장 다니면서 책까지 쓰고 있었던 거야?"

반은 호기심에, 또 반은 알 수 없는 배신감에 책을 집어 들었다.

학교 다닐 적 공부하나도 안 했어요했는데 당당히 일등 한 친구에게 느꼈던 그런 배신감 말이다.


", 바쁜 척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이지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단 말이지!"

"아니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 중 굳이 나의 취향을 꼬집으라면 우습게도 책을 사는 타입이다.

고등학교 시절 지구과학 선생님께서

'책은 지금 당장 읽지 않더라도 책장에 꽂아두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고 하신 말씀이 사는 내내 위로가 되었고, 깊이 있는 독서를 하지 못하는 나는 새로 산 책을 책장에 꽂아두고 언제 가는 저 녀석도 내가 읽어 주겠다며 바라보곤 했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에 비하면 발톱때만큼의 소질도 없고 독서량도 보잘것없지만 나라는 인간도 무언가 쓸거리가 있긴 할 것이다 싶었다. 은행 경력도 이십 년인데 말이다.


대학시절 교수님이 말씀하신

'표현하지 못하면 내 지식이 아니다'

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표현, 즉 글을 쓴다는 행위를 통해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동안 틈틈이 해오던 메모를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버스를 기다리거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거나, 지하철 환승을 기다리거나, 지하철 안에서, 커피주문하고 나오기를 기다릴 때 등등 무수한 찰나의 순간, 책을 읽기엔 부담스럽고 SNS를 하기엔 내가 하찮게 느껴질 때 보려 입력해 둔 수많은 메모에서 재테크라는 콘셉트를 잡았다.


문장이 허술하면 어떻고, 문법이 틀리면 어떤가.

전달하고 싶은 좋은 콘텐츠에 진심을 담으면 된다.

그리고 콘텐츠 즉, 좋은 아이디어를 찾으려면 발품을 팔면 된다.

많은 책을 읽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자극이 되는 장소를 가 보는 것들..


실제로 열 분의 명동 부자를 인터뷰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업무로만 뵐 때와는 다른 가르침이었다.

한 분 한 분의 경험과 습관이 소중해서 내가 글을 쓴다기보다는 잘 전달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텐츠가 없다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꿈이 없다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이 꿈을 찾아내는데 사 년이 걸렸고

쓰기 시작하는 데 삼 년이 걸렸다.

둘째 육아휴직 중 영어 스터티를 하며 읽었던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식 축사 문구에서 꿈을 찾자고 생각했고, 그 둘째가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니 합이 7년이다.

이 문구가 나를 바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keep looking, keep looking...'

이미 은행원이라는 직업이 있다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고,

갖지 못할 꿈은 없다.

이제서야 'You'll know when you find it'라는 문구가 퍽 와 닿는다.

찾기 전에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었으니 말이다.

언제까지 다른 사람이 무얼 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며, 드라마 주인공에 집착하며, 영업 실적에 목매달며 지낼 것인가.


하지만 찾으려 생각하니 더욱 찾아지지 않았고

내가 꿈이 있기나 한 건가 싶을 무렵

아이가 문득 물어본 '엄마의 꿈은 뭐예요?'라는 질문에 서슴지 않고 글을 쓰고 싶어라는 대답이 자기 어나왔다.


"그럼 엄마도 꿈을 위해서 뭐라도 해봐요.

조금씩 써본다던가"


이런 현명하고 깔끔한 대답이라니!

그러고선 메모처럼 끄적이는 습관이 시작되었다.

아날로그 방식이 아닌 핸드폰 메모장이나 에버노트, 워크플로이를 사용했고, gadget 소위 가제트류를 좋아하는 편이라 글을 쓸 때도 자잘한 도구활용을 했다. 형사 가제트 제목에도 나오는 여러 가지 작은 도구들 말이다. 예를 들면 블루투스 키보드, 무선 마우스, 충전식 마우스패드, 작은 노트북 등등.


은행원에서 은행원이자 작가

엄마에서 엄마이자 작가

작가라고 붙이기만 했는데

이렇게 멋질 수가!


혹여 은행원이라는 껍데기를 벗더라도 작가라는 플랜 B도 생긴 거니깐.


그래서 글 쓰기를 강력 추천한다.

나같이 평범한 은행원도 쓰는데 말이다.


써서 안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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