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던 날

새삼스러운 감사

by 이정아

[이 아침에] 벼락치던 날의 깨달음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8.14.15 20:10

고막 터질 듯 천둥이 치고 "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지그재그 섬광이 여러 번 번쩍했다. 한참의 가뭄 끝에 오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았다. 잘못도 없는데 문을 잠그고 숨을 죽였다. 낮은 자세가 좋다고 들어서 방바닥에 엑스레이 찍듯 납작 엎드렸다. 집에 세워진 철탑 (오래전 무선통신에 심취한 남편이 세운)이 벼락을 불러들일까 오금이 저린다. 언덕 위 집의 높은 철탑은 벼락 칠 때가 가장 위험한 구조물이 아닌가 싶다. 다행인지 벼락이 피해가고 길 건너 낮은 지대에서 불이 났다고 저녁뉴스는 전한다.

대부분은 TV 안테나를 거창하게 세운 줄 알지만 길을 지나던 무선햄 회원들은 반갑게 알아 보는 탑. 너무 커서 철거도 어려운 애물단지이지만 벼락 치면 내 죄를 절로 달아 보게 하는 저울이다.

아무튼 미국에 와서 본 가장 큰 천둥 번개였다. 그 벼락 때문에 온 동네가 정전이 되었다. 오전 10시경부터 수도전력국에서 사람들이 오가더니 전신주 위의 변압기를 바꾸어야 한단다. 고가 사다리차가 오고 기술자와 전공이 오고 그거 하나 고치는데 소방차만한 큰 차 세 대가 동네 길을 다 막았다.

눈치 빠른 젊은 앞 집 내외는 차를 타고 미리 나갔는데 나는 차에 막혀 오도 가도 못 하고 마당에 의자 놓고 수리 현장을 구경했다. 한국 같으면 전신주를 기어 올라가 솜씨 좋게 고치고 내려오는데 한 시간이면 될 것을 준비만도 몇 시간이다. 집집마다 다니며 길에 주차된 차번호 적고 빼 달라 양해 받고 서명 받느라 한나절.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 전신주에 매달린 전공 그 옆 붐 리프트에서 안전을 체크하는 기술자 아래에선 무전기로 지시하는 매니저 등 7명이 분주히 움직여서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마쳤다. 답답해도 세 단계의 안전 확인을 거친 작업모습이 미국다웠다.

그 사이 배가 고파 집에 들어와 요기 거리를 찾았는데 전기 없으니 되는 게 없었다. 쿡 탑도 마이크로웨이브 오븐도 심지어 정수기의 더운 물도 맹탕이다. 인터넷도 불통 오로지 쓸 수 있는 건 휴대폰뿐이다. 인스턴트 음식이 집에 널려있어도 무용지물이고 재료는 있어도 음식이 안 되니 한심했다. 마른 빵을 씹으며 처량했다. 할 수 있는 게 이렇게나 없다니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전기 없던 옛날엔 어찌 살았을까 궁금하다. 반딧불로도 공부를 해서 형설지공이란 말도 나오지 않았던가. 호롱불을 끄고 떡도 썰고 붓글씨를 쓰던 이도 있고. 궁하면 통하게 되어있거늘 궁핍을 모르는 시대를 산 요즘엔 대책 없는 것이 난감하다. 이곳서 태어난 아들아이는 어려움을 경험하지도 못했고 더더욱 대비도 모른다. 어려우면 부모에게 보험 든 듯 청하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정전된 하루 낮을 지내고 보니 이제야 알겠다. 전기와 함께 누린 모든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었음을. 우리가 미처 감사하지 못하고 지낸 것이 전기 말고도 많다는 걸 일깨워준 고마운 벼락의 날.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을 나도 모르게 읊조렸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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