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모카신

넋두리

by 이정아


수필가 이정아



살아생전 온갖 루머에 싸여 살았던 마이클 잭슨을 기억한다. 자기 집에 놀러 온 어린아이를 추행했다거나, 성형중독이 되어 얼굴이 녹아내린다거나, 백인 흉내를 내려고 스킨을 하도 벗겨 흉측하다거나 하는 소문들 말이다. 옐로 페이퍼의 위력은 대단하여서 가십 기사가 한번 실리면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일면식도 없는 한국인 아줌마가 그리 믿고 살 정도였으니.

그가 죽었다니 마음이 짠 했다. 아마도 동시대를 살아온 연민을 느꼈기 때문인가? 잭슨의 특집 기사 중 이런 글이 있었다. 남을 판단할 일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상대의 모카신을 신고 두 달 이상 걸어보기 전에는 결코 그 사람을 비난하지 말라.”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단다. 자신이 하도 억울한 일을 당해서 그런 마음을 늘 품고 살았나 보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인 수우족의 기도문 중 한 구절인데, 흔한 이야기여도 마이클 잭슨의 좌우명이었다니 그가 달리 보였다. 화려함 뒤에 고독이 있었구나 비로소 생각이 드는 거였다.

그 글을 그가 살아있을 때 읽었더라면 미워하거나 적어도 오해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동안의 비호감이 무척 미안해지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거나 수용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겠다. 살수록 느끼는 거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오는 내일이 아니다. 그 내일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바로‘오늘’이 우리가 살아야 할 시간이라는 것인데, 항상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야만 깨달음이 오니 생태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람인가 싶다.

얼마 전 나의 강력 반대와 잔소리를 무릅쓰고, 남편은 Private Pilot의 라이선스를 받았다. 근 2년이 걸려서 취득한 것이다. 면허증을 슬그머니 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보란 듯 전시를 한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검정 비행 수첩에 일수 도장 찍듯 비행거리를 기록하고 사인을 받는다. 그 기록이 쌓여야 '육안 비행'에서 '계기비행'으로 등급이 업그레이드가 된다나?


지난 주일 장거리 단독 비행을 하였다. 교관 없이 그것도 아들을 대동하고서 말이다. 겁이 많은 나는 물론 따라가지 않았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방정맞은 생각이 종일 머리를 맴돌았다. 초보 조종사에게 아까운 내 목숨을 담보 잡히기 싫었다. 라스베이거스까지 두 시간 넘게 비행하여 가고, 물 쇼( O Show)를 보여준다는 미끼를 던졌건만 거절하였더니 앞길이 구만리인 아들이 덥석 간다고 나선다. 마침 저녁에 구역예배가 있어 구역원들에게 기도 요청을 하고, 통성기도를 하였다. “라스베이거스를 향하고 있는 두 사람이 무사히 살아 돌아오게 해 달라.” 는 웃기는 한편 심각한 기도를 한 것이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의 무사귀환도 아니고 쇼를 보러 간 사람의 무사귀환이라니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지만 내겐 아주 괴로운 시간이었다.

내 딴엔 기로에 선 시간이 되니 무수히 많은 생각이 스쳤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너무 허망하다. 조금 더 잘해줄 걸. 하다못해 아침이라도 든든히 먹일 걸. 정말 하잘 것 없는 후회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실소하였다. 통성기도가 끝나자 바로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기일(忌日)로 예정되었던 날이 하루 지난 셈이다. 자고 다음날 온다 했으니 하루 더 끌탕 끝에 드디어 돌아왔다. 주인 맞는 충직한 강아지처럼 세리머니를 하고 달려들어 아들과 남편을 끌어안고 입 맞추었지만, 하루 지나니 그날이 그날 다시 시들해진다.

왜 남자들은 유난히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것인지,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죽기 전에 하고 싶다는 남편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이긴 하지만 돈 들고 시간 들고 목숨까지 달린 취미에 열을 올리는 남편이 이해가 안 된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아니 손가락과 컴퓨터만 있으면 인생이 즐거운 ‘글쓰기’도 있는데 말이다.

본인은 성취감으로 사뭇 의기양양하지만 나는 피가 마른다. 비행 보험이 자동차보험보다 싼 이유가 더 안전하기 때문이라면서 자문자답에 온갖 통계를 제시해도 마뜩지 않다. 왜 두 발로 땅을 걷지 날개도 없는데 날아야만 하는지 하늘이 땅보다 그리도 매력적인지 궁금하다. 그러다가 하늘가는 일도 남보다 빨리 가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정상적으로 가고 싶다. 서둘러 가기도 싫고 사고로 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예로부터 신발을 좋아해서 신발장에 가득한 컬렉션 때문에‘임멜다여사’로 불리는 나도 남편의 모카신을 신어 보기엔 용기가 많이 필요하지 싶다. 앞으로 무수한 불안의 날들이 도래할 모양이다.

2009 년 10월 29일 기록

06252020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