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해야 할

자기소개

by 이정아




야구연습장에 오는 손님들은 사진이 붙은 신분증을 맡기고 장비를 빌린다. 배트나 헬멧을 반환하면 신분증을 되돌려주지만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아 잠시 머뭇거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영락없이 “ good looking guy!” 또는 “very handsome one!” 이런다. 그중 가장 잘생긴 사람을 고르면 될 것을 뭘 망설이냐는 투이다. 여자들도 예외 없이 “most pretty one!”이러기 일쑤이다. 피부색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대개 그러니 조크라고 해도 자기 자랑은 이곳의 문화인 듯싶다.

아마도 같은 경우 한국사회에서 “제일 잘 생긴 사람이 저예요.” 한다면 재수 없는 사람으로 찍힐지도 모른다. 겸손을 예의로 생각하는 동양적인 사고에선 자신을 낮추는 것이 기본이 아닌가? 예쁘고 귀한 아이일수록’잘 생긴 놈’ 하지 않고 ‘못난이’라고 불러야 명이 길다는 속설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모임이 있었다. 등단한 지 오랜 원로 문인들을 영사관에서 식사 초대해서 모인 자리였다. 그중 젊은 나는 단체장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20명의 많지 않은 문인끼리는 서로 아는 사이였지만 모임을 주최하는 분께 자신을 소개하는 순서가 있었다. 앉은자리 순으로 하려니 말석의 내가 순서가 빨랐다. “수필을 쓰는 이정아입니다.” 하고 간단한 소개를 하고 나서 속으로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자리에서 사설 많은 이를 아주 싫어하므로, 내가 짧게 본보기 보였다고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내 뒤에 자신을 소개하는 원로들은 모두 “시를 공부하는 아무개입니다.” “소설을 배우는 아무개입니다.”하는 것이 아닌가? 40년 넘어 50년 가까운 문력을 가진 분들도 아직 ‘공부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배정웅 시인이 “시를 공부하는 배정웅입니다” 하자 그 뒤론 모두 그렇게 하시는 거다.

아차 싶었다. 가장 연소한 내가 감히 “수필을 쓰는”이라고 말하다니 민망했다. 얼굴이 화끈 거리는 한편 문인의 자존심을 생각해 보았다. 낮추는 것이 높아지는 것임을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다.

갓 등단한 이들은 세상을 다 얻은 듯 자칭 문인에 자칭 작가라고 한다. ‘문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면 그게 다 인 듯 글쓰기는 소홀히 하며 얼굴내기에 바쁘다. 늦깎이 문인이 되었으면 부단히 연습하여야 일찍 입문한 이들을 따라갈 수 있다. 이곳 문단은 이민사회의 특성상 고령 입문자가 많다. 등단 순서라는 문단의 관례를 무시한 채 나이 많다고 원로 대접을 받길 원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 가운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글을 써오신 진짜 존경할만한 어르신들이 계시다는 건 정말 든든한 일이다.

요즘 이곳의 엘에이 문단이 시끄럽고 단합이 필요한 시기여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들 모이신 것이다. 기라성 같은 원로들께서 한분도 빠짐없이 재미수필문학가협회가 가장 잘하고 있다고 칭찬들을 하신다. 후배에 대한 격려차원이었겠지만 너무 기분이 좋았다.

미주 문단은 시시해서 본국 문단과만 교류한다는 건방진 이도 있고, 남의 글은 다 우습다 폄하하는 덜 된 이들이 있는 중에 어르신들의 덕담을 들으니 이곳에서 한눈팔지 말고 그저 열심히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이제 미주에서 쓰는 문학도 본국에서 원고 청탁을 받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구색 맞추기나 양념 삼아 끼워주던 것이 이젠 재미작가 특집을 기획하는 곳이 많다. 이곳의 지금 이야기를 진솔하게 쓰다 보면 흥미로운 글이 되는지 글 주문 맞추기 바쁘다.

서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 이곳의 문인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좋은 선배로 자리매김하려면 인사말부터 바꾸어야 하리라. “수필을 배우고 있는 이정아입니다.”

수필가 이정아
퓨전 수필 2011/협회장 에세이


6월 27일 2020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