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도 작가
[이 아침에] 여기도 문인, 저기도 작가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4/12/05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4/12/04 21:20
나만 그러는지 몰라도, 오늘처럼 비가 오거나 마음이 울적해서 무언가 자위가 필요할 때면 내가 그 동안 쓴 글들을 읽어보곤 한다. 한국문학도서관의 내 서재에는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것과 미발표 합쳐 450편의 글이 올라있다.
시인이셨던 친정아버지가 청탁을 받든지 안 받든지 매일 글쓰기를 연습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내겐 유언처럼 각인이 되어, 돌아가신 직후 2001년부터 서재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으니 만 14년 동안의 내 일기이자 삶의 자취인 셈이다.
이 조악한 자의식이 좀 궁상스러울지 몰라도 위안의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수필가가 된 후 세 권의 수필집과 한 권의 합동 문집을 출간했다. 훨씬 부지런하고 성실한 작가들도 있겠지만, 일을 하면서 가사를 돌보고 이 정도 쓴 것에 대해 나 자신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다. 대강 계산해 보면 적어도 2주에 한 편씩 쓴 셈이다. 글의 품질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쓰고 싶고, 쓰고 있다. 매일매일 쓰지 않으면 하루를 허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은 수첩에 수시로 메모는 하고 있지만 거기에 틀을 만들고 살을 붙이고 여러 번의 퇴고를 거쳐 그나마 수필의 모습을 갖추려면 내 능력으로는 더 자주 글을 올리기는 어렵다.
어떤 분은 자신은 글 한 편 쓰고 일 년 정도는 퇴고를 거쳐 발표하는 데 비해 너무 성의 없는 글을 남발 하는 게 아니냐고도 하지만, 나는 내 방법이 더 좋다. 일 년에 한 편의 글을 쓰는 이를 문인이라 할 수는 없다. 문학에 겨우 그 정도의 시간을 쏟는다면 다만 게으른 일반인일 뿐이다.
요즘 들어 많은 분들이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삶과 생각을, 관찰한 풍경을 올리는 걸 본다. 나는 그 분들의 정신이 문학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어떤 미학적 형식과 만나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문학이 되는 게 아닐까.
등단이나 라이선스보다는 매일매일의 글쓰기 연습과 나를 돌아봄이 문학을 문학답게 한다고 생각한다. 등단이나 글짓기 공모에서 상을 한 번 받은 이들 중에는 마치 대가가 된 양 그 타이틀에만 급급하여 글 연습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서 문단의 대소사에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고 단체사진에 끼어 문인임을 광고한다. 나만이 아는 나 홀로 문인인 것이다. 등단작이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 시간에 책 한 권이라도 더 읽고 글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단체마다 신인을 뽑고 문인 타이틀을 '세일'한다. 여기도 시인 저기도 수필가, 소설가 모두가 자칭 작가이다. 문인들은 주변에 타이틀 없이 글 잘 쓰는 이들이 많다는 것에 긴장했으면 좋겠다.
중국 송나라의 구양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는 삼다(三多)가 기본이라 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내게 하는 독백이기도 하고 동업자들께 드리는 말이기도 하다.